“언어의 마술사다. 탁월한 대중 강연자다.” 사람들이 내게 하는 소리다. 난 그 말을 100%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말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수만 명의 군중도 두렵지 않다. 그런데도 왜 나는 아버지 앞에만 서면 그렇게 작아질까. 아버지에게만 다가서면 준비된 말조차 안개처럼 사라진다. 침만 꿀꺽 삼킨다. 아버지는 넘기 어려운 산이다.어느 날, 아버지에게 휴대전화가 하나 생겼다. 휴대전화가 개통되자마자 정보통신부 장관실에서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정보통신부 장관실입니다.” 아버지는 놀라셨다. 고작해야 시 교육위원회 교육장이나 교육감 전화 정도였을 텐데…. 당황한 아버지는 연신 “아, 예, 예, 어떻게?”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장관님께서 전화 개통했다고 축하 전화 드리라고 해서….”“아, 예 감사합니다.”“저 장관님께서 전화 좀 바꾸라는데요.”“아, 예, 예.”“아버지, 저 길원입니다.”그제야 아들이 장난 전화를 건 줄 알고 웃기 시작하는데 난 아버지에게도 웃음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나도 마음껏 웃었다. 아버지를 무너뜨렸다는 게 여간 통쾌하지 않아서다. 아버지의 웃음은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웃으셨다는 게 신기했다. 그날부터 오후 전화가 시작됐다. 아침에는 평소에 하던 대로 일반 전화로. 오후에는 휴대전화로. 문제는 할 말이 없다는 거였다. 오전에 안부를 다 물었는데 나올 말이 뭐가 있겠는가. 겨우 한다는 말이 “감은 좋습니까? 잘 들립니까?” 기막힌 노릇이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화가 꺼져 있었다. 순간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아버지가 들으시는 것처럼 말을 건넸다.“아버지, 평소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마디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모르시죠.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 아들입니다.”말을 마치자 눈에서는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마치 숙제를 풀지 못한 아이가 숙제를 풀어내고 넘지 못할 장벽을 넘어선 아이처럼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다음날이 너무 너무 기다려졌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아버지의 ‘나도 내 아들 사랑한다’는 말이 그리웠다. 다음날이었다. 아침 문안 전화를 드렸다.“아버지 저… 어제… 녹음 화-확인하셨습니까?”순간 나를 좌절시키던 한마디.“나는 녹음 기능 그런 거 몰라.”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도리를 다 한 것이었으니까. 마음에 앙금이 사라졌다. 아버지가 전혀 새로운 분으로 다가왔다.그리고는 아이들과 해외에 머무르고 있을 때 마침 아버지 생신이 다가왔고 전화를 드렸다. 그때는 말할 수 있었다.“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 아버지. 사랑합니다.”그때 멀리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목소리.“오냐, 나도 내 아들 사랑한다.”그때 멍한 내 표정이란…. 두 녀석에게 할아버지 생신 축하하라고 전화를 건네주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 말았다.“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해요.”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길고 어려웠던 것일까.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아버지 사랑합니다.”그리고 난 아직도 아버지의 한마디에 목마르다.“내 아들, 사랑한다.”‘나를 딛고 세상을 향해 뛰어 올라라’의 저자. 고신대와 동 대학원, 고려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미국 RTS에서 가정사역(Family Ministry)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가정목회 기관 하이패밀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하이패밀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행복발전소가 되어줌으로써 2004년 기관 최초로 대통령상을, 2005년 국민포장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