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본제철

일본은 환경 선진국이다. 에너지 효율,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억제 등 환경 분야에 관한 한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선다. 환경 기술을 무기로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국가 전략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런 일본에 있는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제철소의 환경 경영 수준은 어떨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철강 제품 1톤을 생산하는데 쓰이는 에너지소비량(원유 톤)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0.59로 앞서 있다.일본의 간판 철강 회사인 신일본제철은 연간 에너지 사용량이 일본 전체의 약 3%를 차지할 정도로 환경에 영향력이 큰 회사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경영진과 사원 전체가 ‘환경 경영’을 기업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원료와 자재 구입, 제조·기술 개발, 제품 수송·사용·리사이클, 폐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 걸쳐 환경 부하를 줄이기 위한 경영을 지향한다.신일철의 환경 경영은 크게 세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환경 부담을 적게 하는 제철소의 철강 제조 공정인 에코 프로세스, 환경 친화적 철강 제품인 에코 프로덕트, 에너지 절약과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에코 솔루션 등이다. 이 세 분야를 기둥으로 신일철은 환경 경영에 올인(다 걸기)하고 있다.지구적인 환경 규제 아래 환경 경영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일철의 환경 경영은 21세기 녹색 성장을 위한 최대 전략인 셈이다.= 신일철의 환경 경영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제철소의 에너지 효율과 자원 재활용이다. 제철소는 철광석과 석탄, 고철 등을 주원료로 철강 제품을 생산한다. 문제는 생산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가스와 부산물 등이 나온다는 것. 신일철은 그런 가스와 부산물을 버리지 않고 대부분 재활용한다.신일철은 석탄으로 코크스(cokes)를 제조하거나 고로에서 쇳물을 끓이면서 발생하는 가스를 강재의 가열용 연료가스나 제철소 구내의 발전소 연료로 100% 활용하고 있다. 또 배기열을 회수해 전기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신일철 제철소 전체의 에너지 효율은 60%에 달한다. 철강 업종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제품이나 제조 설비의 냉각이나 세정에 사용하는 물도 90% 이상 순환시켜 다시 사용하고 있다.철 1톤을 생산할 때 약 600kg의 슬러그(slug)와 더스트(dust) 등 부산물이 발생한다. 이런 부산물은 신일철 사내에서 연료로 재활용하거나 시멘트 원료 등으로 재활용된다. 이런 노력으로 신일철의 원료 재활용률은 98%에 달한다. 또 고온 고압을 이용하는 제철 프로세스를 활용해 사회나 다른 산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산물도 재활용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이나 폐타이어를 고로의 연료 등으로 적극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신일철이 에너지 효율 향상과 폐플라스틱·폐타이어의 재활용 등에 노력한 결과 2007년 신일철그룹의 에너지 소비량은 1990년에 비해 6.2% 줄었다. 에너지원단위(energy basic unit)로 환산하면 12.9%가 절약된 것이다. 그동안 고기능 철강 제품 제조 등 에너지 사용이 늘어날 요인이 많았지만 에너지 효율을 그만큼 높여 사용량을 줄인 것이다.신일철은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인 CO₂를 저감하는 데도 발군이다. 신일철은 1970년대 1차 오일 쇼크 이후 1990년까지 공정 연속화와 배출 에너지 회수 등을 철저히 추진해 20%가 넘는 에너지를 절약했다. 신일철을 포함한 일본 철강 업체들은 2010년엔 1990년 대비 에너지 소비량을 10% 줄이자는 ‘자주행동계획’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신일철의 CO₂ 배출 실력을 보여주는 원단위(CO₂ 배출량을 조강 생산량으로 나눈 수치)는 2007년 수치가 1990년에 비해 13.7% 낮아졌다. 2007년 CO₂ 배출량은 약 6950만 톤으로 전년 대비 7.1% 줄었다. 같은 기간 조강 생산량은 7.6% 증가했지만 CO₂ 배출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그만큼 철강 생산과정에서 CO₂ 배출을 억제했다는 얘기다.= 신일철은 외국 기업들의 CO₂ 배출 억제를 지원하는 사업도 적극 펼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추진된 중국 허베이성의 샤오강제철소 프로젝트다. 신일철은 신일철엔지니어링이란 자회사를 설립, 샤오강제철소에 CO₂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을 지원했다. 2007년 상반기 유엔에서 청정개발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 프로젝트로 인정받아 총 1100만 톤의 탄소배출권(CER: 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이 CER는 신일철 본사가 전량 사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그만큼의 CER는 작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연간 220만 톤씩 신일철의 CO₂ 감축 실적으로 인정된다. 신일철 전체 감축 목표의 5~10%에 해당하는 규모다.신일철이 CDM 사업에서 맹활약할 수 있게 된 데는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지원이 큰 몫을 했다. 국제협력은행은 CDM 사업을 벌이는 기업에 대출을 지원하고 2007년 11월부터는 온라인 탄소배출권거래소(CCTP)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과거엔 CER 수요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생했지만 최근엔 중소기업과 금융회사의 수요가 커지고 있어 거래가 활발하다. CCTP는 세계 최초의 프로젝트 기반 거래소다.신일철 환경부의 노세 히로노부 매니저는 “CDM 사업으로 얻은 배출권으로 자체 감축 실적을 모두 충당하고 남는 것은 다른 회사에 판매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CDM 사업은 CO₂ 감축 실적을 달성하기 위한 보충 수단이자 보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신일철은 제철소 내 에너지 효율을 높여 CDM을 통하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CO₂ 감축 목표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이미 2003년 이후 탄소 배출량을 매년 9~10%씩 줄여오고 있다.= 신일철은 경쟁 관계이자 전략적 제휴사인 한국의 포스코와도 손잡고 자원 재활용 사업에 나서고 있다. 신일철은 제철 공정에서 발생하는 슬러지와 더스트에 함유돼 있는 철 성분을 회수해 원료로 재활용하는 RHF(Rotary Hearth Furnace) 합작법인을 포스코와 공동으로 작년 초 설립했다. RHF는 철강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의 철 성분을 회수해 고로 원료인 환원철을 생산하는 친환경 설비다. 자본금 390억 원으로 설립된 이 회사엔 포스코가 70%,신일철이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1302억 원을 투자해 올 9월까지 포항,12월까지 광양에 각각 연간 20만 톤 규모의 RHF 설비를 건설할 계획이다. 생산된 환원철은 포스코와 신일철에 공급된다.신일철의 녹색 성장 전략에서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에코 프로덕트다. CO₂ 배출 등을 줄일 수 있는 소위 환경 친화적 철강 제품이다. 대표적인 게 신일철이 개발한 자동차용 경량 소재인 하이텐(High Tensile Strength Steel Sheets)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안전성 강화와 경량화를 위해 하이텐이란 고강도 강판을 자동차에 사용한다. 하이텐은 탄소를 포함하는 보통강에 니켈 실리콘 망간 등의 성분을 첨가해 강도를 높인 첨단 소재다. 강도는 높지만 가벼워 연료를 덜 소모한다. 그만큼 CO₂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철강은 원래 공해산업이기 때문에 창업하면서부터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1970년대 오일 쇼크와 1980년대 지구온난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환경 경영을 발전시켜 왔다. ‘환경 경영’은 신일본제철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봐도 된다.”신일철의 오카자키 테루오 환경부 부장(지구환경대책그룹 리더·사진)은 “환경 경영은 신일철에선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신일철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부분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를 저감하는 것”이라며 “특히 1997년 CO₂ 배출 억제를 위한 선진국 간 협정인 ‘교토의정서’가 맺어지면서 환경 경영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부산물 등을 재활용하는 철강 생산 방식이 대표적이다. 폐타이어와 폐플라스틱 등을 연료로 재활용하는 기술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생산기술들은 주요 철강 회사들이 제휴해 공동 개발한 것이다. 여기에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단계에선 CO₂ 분리와 수소연료화 기술 등을 연구·개발 중이다.개별 철강 회사들의 자원 재활용률 등은 계산 범위나 기준을 어디까지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범위와 기준을 최근 국제기구 등이 만들어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은 회사 간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다만 나라별 철강 산업의 에너지 효율이나 재활용률 등을 비교하면 일본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론 신일철은 톱 클래스에 들어간다고 자부한다. 포스코 등 한국 철강 회사들도 상당히 앞서 나가고 있다.하이텐은 자동차의 무게를 더 가볍게 할 수 있는 고강도 경량박형 철판이다. 자동차 무게가 가벼워지면 자동차의 가솔린 소비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CO₂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하이텐은 원래 자동차 회사들의 연비 향상을 위한 수요에 맞춰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철강 회사들이 CO₂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CO₂ 배출 억제는 산업 부문에선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 반면 일반 가정 등 민생 부문에선 CO₂ 배출이 계속 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이 같은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여 신일철은 사원들 개개인이 가정에서 CO₂를 줄일 수 있도록 ‘환경 가계부’ 제도를 도입했다.‘환경 가계부’란 자기 가정의 전기료와 가스료 등 몇 가지 항목을 입력하면 한달간의 CO₂ 배출량을 산출해 주는 것이다. 이를 부서별로, 공장별로 합산해 관리하고 있다. 사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CO₂ 배출량을 눈으로 확인하면 조금이라도 전기와 가스를 절약하게 된다. 사원들 스스로 저감 목표를 정해 줄이기도 한다. 그것이 환경가계부가 노리는 효과다.사실 교토의정서상의 목표만 하더라도 일본에는 엄격한 기준이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는데, 추가적인 규제가 나온다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만 특정 국가나 산업에만 부담을 집중시키는 규제가 만들어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모든 나라와 산업이 공평하게 부담을 나눠야 한다. 예컨대 중국과 일본에 똑같은 비율의 CO₂ 배출 저감을 요구하는 건 불공평하다. 50점짜리 학생이 60점 맞기는 쉽지만 90점짜리 학생이 100점 맞기는 힘들기 때문이다.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은 같은 기능의 제품을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기초 소재인 철강은 철광석과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 만약 철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철강은 현재의 자원으로 가장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다. 앞으로 50~100년간은 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철강 생산방식에서 CO₂ 배출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