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종류를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2차 오일 쇼크와 같은 ‘생산 요소의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황’, 일본의 구조적 장기 불황과 같은 ‘수요 부족으로 인한 불황’, 섬유산업 등 ‘산업 수명 주기로 인한 불황’, 그리고 주기적으로 도래하는 ‘경기 순환으로 인한 불황’이 있다. 현재 전 세계는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불황이란 열병을 한 번 앓을 때마다 산업계 전체에서 기초 체력이 완비되지 않은 기업들은 도태되고 만다. 자연히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다.불황을 겪는 소비자들은 소득이 줄고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면서 씀씀이를 대폭 잘라낸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비용을 줄이면서 가치가 큰 제품을 찾는 ‘똑똑한 지갑족’으로 변화한다. 한마디로 불황은 소비자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홍익대 경영학과 전인수 교수에 따르면 소비자는 감성적 소비에서 불황 때 이성적 소비로 변화한다. 호황 때는 보다 잘 살기 위해, 그리고 보다 더 벌기 위한 ‘향상 동기(promotion motive)’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는 데 비해 불황 때는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동기(prevention motive)’에 의해 ‘정신 회계(mental accounting)’를 하게 된다. 즉, 불황 때는 생활에 꼭 필요한 아이템만 구입하고 같은 물건 중에서는 더 싸면서도 품질이 좋은 제품을 찾는다는 것이다.기업은 소비자들의 소비 행동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그들의 니즈를 파악해 충족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리를 갖고 있다.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느는 제품과 서비스는 이러한 기본적 원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불황을 함께 겪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는 이른바 ‘불황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며 알뜰 구매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불황 때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다”며 “하지만 불황 마케팅은 정반대로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황 때는 특히 가격 책정에 있어 원가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해 가격을 낮추려고 시도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실제로 일본에서는 ‘뺄셈 마케팅’이 불황에도 잘 팔리는 제품들의 공통점이다. 뺄셈 마케팅은 과잉 기능이나 서비스를 제거해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핵심 기능만 추출해 제공하므로 만족도가 높다. 예를 들어 2008년 일본 소프트뱅크사가 내놓은 830P 단말기의 경우 전화를 걸고 받는 기본 기능 외에 블루투스 등 추가 기능들을 제거한 휴대전화다. 일본 휴대전화 시장이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단말기들이 고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는 것과는 반대 전략이다. 소프트뱅크사는 2008년 순증가 수가 약 239만 건으로 시장 전체 신장 대수의 절반을 차지하며 2위인 NTT도코모와도 2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그리고 꼬치구이 외식 체인인 토리키조쿠(鳥貴族)의 경우 메뉴를 줄이고 조리 방법을 바꿔 손님 회전율을 높임으로써 가격을 낮췄다. 대부분 꼬치구이 전문점은 메뉴가 80~90종이지만 토리키조쿠는 55개 품목으로, 여러 가지 메뉴 때문에 조리가 번잡해 소요되는 시간을 줄였다. 또한 10분 소요되는 직화구이 대신 5분 걸리는 전기 그릴로 대체했다. 이에 따라 손님 회전수를 다른 꼬치구이 집보다 2배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그 덕분에 가격을 꼬치구이에서 맥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뉴당 280엔(약 3700원)으로 균일화했다. 매혹적인 가격을 제안하는 토리키조쿠는 주머니가 가벼워진 고객들로 언제나 붐빈다.우리나라에도 불황기에 호황을 경험하는 사례가 꽤 있다. 특히 인터넷 쇼핑몰을 중심으로 최근 사장님들이 부쩍 늘었다. 이 중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감각, 그리고 저가 공략 등 차별화된 전략으로 연매출 수억 원에 달하며 대박을 터뜨린 개인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중고장터에는 방문객이 불황 이후 크게 늘어 거래량이 몇배 증가하고 있고, 실업난에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자 수험서만 전문으로 사고파는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돼 대박 행진에 동참했다. 한편, 기존에 있던 상품과 서비스라도 중간 과정이나 거품을 제거해 새로운 저가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도 있다. 가구 업체들은 매장이 아닌 인터넷 판매 브랜드를 만들어 가격 파괴를 이뤘고, 피부관리실도 고객 스스로 장비와 화장품을 이용할 수 있는 셀프서비스를 채택해 점포를 늘려나가고 있다.불황으로 위축된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가가 올랐다고, 아니면 새 기능을 넣어 제품 가격을 올리는 ‘덧셈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쉽다. 불황기에는 큰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실속있고 안정적인 소자본 사업이 각광을 받는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최근 가격파괴점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온라인 상점이 여러 업종에 걸쳐 확장되고 있다”며 “독특한 사업 기획으로 ‘1인 지식 창업’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인 지식 창업은 실직자나 전문 교육을 받은 청년 실업자들이 자기만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다. 컴퓨터 관련 서비스, 번역, 파티 행사 대행, 가정용 의료기, 운동 레저 등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