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성장 택한 인도

7억 명의 인도 유권자들은 ‘안정’과 ‘성장’을 택했다. 지난 5월 17일까지 한달간 진행된 인도 총선에서 집권 국민회의당이 이끄는 통일진보연합(UPA)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압승을 거뒀다.외신들에 따르면 UPA는 전체 543개 선거구 가운데 261석을 얻었다. 중소 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11석만 더 확보하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다. 국민회의당 단독으로도 205석을 얻어 최대 정당의 자리를 지켰다. 반면 제1야당 인도국민당(BJP)이 이끄는 전국민주연합(NDA)은 159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번 총선 결과로 국민회의당의 총리 후보인 만모한 싱(76) 현 총리는 사실상 연임을 확정지었다. 그는 자와할랄 네루, 인디라 간디, 아탈 비하리바지파이에 이어 인도 역사상 연임에 성공한 4번째 총리가 됐다. 싱 총리는 총선 결과가 발표된 후 “국민이 우리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며 “국민회의는 안정되고 강력한 정부를 구성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냐 간디 집권연정 의장(국민회의당 당수)도 “국민은 올바른 선택을 했으며 그들은 이 선택이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집권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인도는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가능해졌다. 특히 그동안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았던 좌파 정당의 퇴조가 뚜렷해짐에 따라 그동안 인도 정부가 추진해 온 각종 경제 개혁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좌파연대 4개 정당은 이번 총선에서 24개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이는 2004년 총선에서 확보한 60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도공산당(CPM)은 30년 아성이던 웨스트벵갈 주에서 여당 연합에 완패했다. UPA가 43석 중 23석을 얻었고, 공산당은 29석에서 13석으로 밀려났다. 공산당 집권 지역인 케랄라에서도 UPA가 20석 중 16석을 휩쓸었다. 좌파연대는 그동안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어 산업계와 국민의 지탄을 받아 왔다. 좌파는 공기업 민영화는 물론 정부가 극심한 전력 부족을 해소하려고 추진한 미국과의 민간 핵 협정에도 반대했다. 뉴욕타임스는 “인도 국민들이 좌파에 등을 돌린 것은 좌파가 정부 개혁 작업의 발목을 잡아 온 것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은 인도 경제에 큰 축복”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거대 유통시장 개방 등 외국인 투자 규제가 새 정부 출범 이후 폐지 또는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비카스 케마니 에델바이스증권 공동 대표는 “경제 개혁이 속도를 내게 되면 정부의 재정 적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총선 결과로 경제개발과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인도 증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선거 결과가 인도 증시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룬 케지리왈 케지리왈리서치 대표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호재는 좌파가 뒤로 물러나게 됐다는 것”이라며 “이는 시장에 큰 호재이며, 해외 자금 유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거 결과 발표 다음날인 5월 18일엔 인도 뭄바이 증시의 선섹스 지수가 ‘총선 호재’로 17%나 폭등,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UPA는 총선이 끝난 후 곧바로 내각 인선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회의당의 일부 지도자들은 개별 정당들과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당은 대형 정당보다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정 파트너를 물색할 방침이다. 국민회의당 지도자인 라지브 슈클라는 “우리는 과반인 272석에 근접해 있어 (연정 파트너로) 큰 정당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한편 이번 총선을 통해 가장 크게 부각된 인물은 인도 최대 정치 가문인 ‘네루-간디 가(家)’의 황태자인 라훌 간디(39) 국민회의당 사무총장이다. 소냐 간디 당수의 아들인 그는 이번 총선에서 8만8000km 유세 대장정으로 UPA의 압승을 이끌어 내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네루-간디 가문에 대한 향수에 젖은 대중들은 젊은 라훌의 연설에 환호했고, 싱 총리는 선거 유세 도중 “라훌이 총리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는 이번 새 정부 구성 때 입각이 유력하며, 싱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감으로 점쳐지고 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