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호 유니온금속공업 대표

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 주의 케이프커내버럴 기지. 세계인의 이목은 이곳에 집중돼 있었다. 7명의 승무원을 태운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되는 광경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를 향해 날아가던 챌린저호는 발사된 지 70여 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 승무원들을 일거에 삼켜버렸다.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설치된 대통령조사위원회는 몇 달 뒤 ‘오른쪽 고체연료 로켓 이음새 부분의 결함’이 폭발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조그만 이음새의 불량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이음새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부품이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내부에 흐르는 유체가 폭발성이 있는 화학물질이거나 반도체 공장에서 쓰는 유독가스일 경우 이음새의 불량은 치명적일 수 있다.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유니온금속공업주식회사(대표 유명호, www.unilok.com)는 이런 초정밀 관 이음새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업체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튜브 피팅(Tube Fitting)과 밸브(Valve)다. 튜브 피팅은 튜브와 튜브를 연결하는 부품으로 높은 정밀도가 요구되는 제품이다. 이 회사는 재질 형태 크기별로 총 6000여 가지를 생산한다.이 회사는 지난 1984년 창업해 25년 동안 피팅류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왔다. 유명호(52) 대표는 “스테인리스 스틸 튜브 피팅류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 왔으나 이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했다”고 설명한다.공장 안에 들어서면 다양한 재질 및 종류의 원재료를 국제 규격에 맞춰 정밀하게 가공하는 공정이 나타난다. 컴퓨터로 작동되는 로봇 기계들이 즐비하다. 공정마다 각종 게이지를 통해 정밀도를 측정한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특히 반도체용 피팅의 후처리 공정은 초청정 공간인 클린룸에서 이뤄진다. 피팅에 붙은 먼지 한 개가 중형 승용차 한 대 값에 해당하는 반도체 웨이퍼를 불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유니온금속은 미국 유럽 아시아 중동 남미 등지의 40여 개국에 수출한다. 이 회사 제품은 석유, 가스, 석유화학 플랜트, 발전소, 조선소뿐만 아니라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라인에 사용된다. 이들 제품에는 이 회사의 고유 브랜드인 ‘Uni-Lok’이나 일본의 클린 피팅 전문 업체인 프리메트(Primet)와 기술 제휴한 브랜드인 ‘Uni-Primet’가 붙어 있다. 창업 이후 자기 상표를 고집하고 있어 국제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유니온금속은 로이드 미국선급협회 등의 각종 인증을 받은 것은 물론 이란국영가스공사를 비롯한 산유국의 석유 업체와 주요 반도체 회사의 납품 업체(Vendor)로 등록돼 있다. 연간 수출액은 500만~600만 달러에 달하며 그동안의 국산화 수출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회사 1층 로비에는 철탑산업훈장을 비롯한 각종 훈장과 표창장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상고 야간과정을 나온 유 대표가 이렇다 할 자본금도 없이 창업해 어떻게 월드클래스의 강소기업을 키울 수 있었을까. 유 대표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자면 잤지 결코 먹지 않는 농부의 심정이랄까.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광화문에 있던 보인상고의 야간과정에 다니면서 낮에는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일했다. 학교 졸업 후 청계천에 있는 피팅류와 밸브류를 생산하는 기업에 입사해 영업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 영업의 필요성을 절감해 제품의 특성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는 아예 기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1984년 서울 구로공구상가 뒤쪽 뚝방(방죽) 근처에서 창업했다. 당시 직원은 기술자 1명과 여직원 1명이 전부였다. 유 대표는 제품 개발과 영업 등을 총괄하고 자금관리 등 내부 살림은 여직원에게 맡겼다. 당시 스테인리스 스틸 피팅은 가공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S사가 특허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이 특허가 만료돼 전 직장에서 습득한 기술을 토대로 곧바로 제품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하지만 제품이 개발됐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규격에 맞춰 제품을 생산했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창업한 지 몇 년 뒤 위기를 맞게 된다. 태국의 국영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공급한 피팅류에서 하자가 발생해 전체를 교체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온 것이다. 좀 더 개선된 제품을 공급하려고 부분적으로 열처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표면에 카본이 형성돼 튜브에서 녹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이를 제대로 보수하지 못할 경우 전체 프로젝트의 안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자칫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 공장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고 유 대표는 회고한다.연락을 받자마자 태국으로 날아갔다. 3일 동안 현장에서 직접 애프터서비스에 나섰다. 발주자는 “애프터서비스고 뭐고 필요 없으니 전부 교체하라”고 요구했지만 어렵게 설득한 뒤 며칠 만에 이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유니온금속 제품을 쓴다는 확인서까지 받아들고 귀국했다.이 일을 계기로 거래처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한편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만 더욱 몰두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수억 원대에 달하는 일본 기계 대신에 핵심 가공에 필요한 로봇 설비와 컴퓨터 지원 시스템을 국내 설비 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훨씬 저렴하고 기능이 우수한 국산 자동화 설비를 갖춘 것이다. 회사 내에 다양한 규격으로 제작된 피팅 및 밸브류 수십만 개를 재고로 확보해 주문을 받는 즉시 납품할 수 있는 체제도 갖췄다.이제는 반도체 생산 공정의 가스 라인에 사용되는 용접용 피팅 및 다이어프램 밸브 등의 초정밀 제품도 양산하고 있다. 유 대표는 이 제품을 미래에 대한 성장의 토대로 인식하고 기술 확보를 위해 수년간 많은 노력과 투자를 쏟아 부었다.수출이 늘면서 여유 자금이 생기자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대한 유혹이 많았다. “하지만 제조업은 어디까지나 첨단기술과 앞선 설비로 승부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이를 뿌리쳤다”고 유 대표는 설명한다.유 대표는 특히 제품 내면의 가공에 더 신경을 쓴다. 제품 교차 부위의 굴곡을 없애고 정밀도를 높였다. 이 부분이 거칠면 유체가 원활하게 흐르는데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교차 부위 바닥에 남아 있는 유체와 새로운 유체가 합쳐질 경우 뜻하지 않은 위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같은 품질에 대한 집념이 바이어들을 사로잡고 있다.전류를 이용해 내면 가공면의 조도(거칠기)를 향상시키는 ‘전해연마(EP: Electric Polishing)’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노사 화합도 기술 개발에 큰 힘이 됐다. 정기적인 노사협의회를 개최해 노사 간의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최근 국내외 경기가 침체되면서 일시적으로 주문이 줄자 유 대표는 직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일찌감치 “구조조정은 없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일감이 줄면 야간작업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그는 우수한 생산직 인력과 연구·개발 인력으로 경기 회복 시를 대비한 기술혁신특별팀을 구성해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 대표는 “피팅류나 밸브류는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 10년간 개발할 수 있는 아이템도 이미 확정해 놓은 상태”라고 밝힌다.유 대표는 “중동 6개국의 석유 및 가스 관련 프로젝트가 1000개가 넘으며 이 중 700개 정도가 현재 진행 중일 정도로 피팅 및 밸브 시장이 크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국내 건설사를 통한 간접 납품에 주력해 왔지만 점차 직접 납품에 나서고 있다”며 “이를 통해 현재 매출의 40% 수준인 수출 비중을 더욱 높여나갈 생각”이라고 밝힌다.약력: 1957년생. 76년 보인상고 졸업. 84년 유니온금속공업(주) 창업 및 대표(현). 수상;철탑산업훈장 등.창업: 1984년본사 및 공장: 인천 남동공단생산 제품: 튜브 피팅 및 밸브수출 국가: 아시아 미주 유럽 중동 등 40여 개국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