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표 부천시장

홍건표(64) 부천시장은 ‘고졸 면서기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시골 빈농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막노동을 전전하다 1970년 당시 부천군 소래면에서 9급 지방행정 서기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아는 것이 부족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재선 시장에까지 올랐다. 삭막하던 부천에 문화 도시의 옷을 입힌 것도 홍 시장이다. 1990년대 초 도시 이미지 형성계획(CIP)을 맡아 문화 도시의 기틀을 마련했고, 부천을 대표하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성공시켰다. 홍 시장은 지난해부터 무형문화엑스포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좋은 문화만 있으면 사람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간다”며 “그게 바로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다.‘시민의 일꾼’을 자임하며 30년 넘게 현장을 뛴 홍 시장은 ‘정치인 지자체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그는 “당리당략과 재선에만 눈이 먼 정치인 지자체장들이 도시를 망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지자체가 수천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선거용으로 추진하다 떠나면 그만”이라며 “이래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 계획과 행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일부 시민단체에도 날을 세웠다. 최근 논란이 뜨거운 부천운하, 추모공원 문제 등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경인운하와 연결해 부천운하를 만들면 바닷물이 왔다 갔다 해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한다”며 “그게 맞는다면 섬이나 한강 생태계는 벌써 망가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시장은 “시민단체가 반대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4일 부천시청에서 홍 시장을 만났다.부천은 1990년대 초부터 문화 도시를 지향해 왔지요. 당시 부천은 문화 시설도 거의 없는 전형적인 베드타운이었어요. 잠깐 와서 잠만 자고 일은 서울이나 인천으로 나가서 하는 형태였죠. 외지인들이 많아 정주의식이나 애향심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때 앞으로 부천을 어떤 도시로 만들 것인지고민했고 문화 도시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1988년 창단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전국 최고를 목표로 키워나갔고, 복사골 예술제도 종합 예술제로 확대했어요. 그 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세계 만화축제, 학생 애니메이션축제 등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어요. 이제는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복사골예술제가 부천의 5대 문화사업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어요.시장에 부임하고 나서 문화 도시로서의 부천에 대해 재점검하게 됐지요. 5대 문화 사업이 뿌리를 잘 내렸지만 모두 ‘그때’ 뿐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제가 열리는 1주일 동안은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러 부천을 찾지만, 영화제가 끝나면 그만이라는 거죠. 365일 찾아와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고, 그걸 산업화로 연결해야 해요. 과연 어떤 게 있을까 고민했지요. 하다못해 부천은 전설 속 지명도 없어요. 그래서 무형문화에 주목하게 된 겁니다. 무형문화는 얼마든지 부천에 가져와 정착시키고 키우면 됩니다. 부천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인 것이죠. 그래서 무형문화재 선생님들, 전문가들과 포럼을 만들어 나갔어요. 무형문화재 3호(남사당)와 57호(경기민요)는 벌써 전수관을 짓고 부천으로 왔어요. 또 부천 영상문화단지에 ‘경기문화마을’을 만들고 있지요. 작년에 한옥 9동을 지어 무형문화재 일곱 분을 모셨어요. 내년까지 한옥 50여 동을 더 지어 무형문화재 60여 분을 문화마을에 모실 계획이에요. 거기에 거주하면서 공방도 운영합니다.준비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의회와 예산 논란으로 시간을 많이 허비해 개장 당일까지도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을 정도였어요. 설명을 제대로 듣고 봐야 알 수 있는데, 그런 준비가 부족했어요. 하지만 해외 10여 개국 예술단이 와서 세계적인 공연을 했고 26만 명이 전시장을 다녀갔지요. 무형문화는 가짜가 없어요. 모두 진품이고, 한 분 한 분이 최고의 고수죠. 그래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감동이 있어요.올해도 9월 초 무형문화엑스포를 개최해요. 지난해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 더 큰 규모로 준비할 계획이었는데, 의회 예산을 삭감해 어려움이 있어요. 애초 95억 원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었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10억 원이 줄어든 40억 원 규모가 될 것 같습니다.최근 홍은옥 명지대 교수에게 나전칠기 작품 221점을 기증 받았어요. 이를 토대로 칠기박물관을 만들려고 해요. 그러면 국내 첫 칠기박물관이 됩니다. 우리에게 나전칠기를 배워간 일본은 많은 투자를 해 발전시키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는 아직 칠기박물관 하나 없어요. 나전칠기박물관은 무형문화엑스포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사업이에요. 칠기박물관은 칠기공예 명품의 장, 무형문화재 전수의 장, 칠기공예 체험의 장, 칠기문화 활용의 장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에요.어렸을 때는 모두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문화라는 걸 모르고 자랐어요. 그러다 계장 때쯤 문화예술 방면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다 우연히 사진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슬라이드에 쓸 사진을 멋지게 찍으려고 했죠. 국산 카메라 1호인 코비카를 당시 6만 원에 월부로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작품 사진도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또 문화예술과장으로 부천필을 맡다 보니 자연히 음악도 자주 듣게 됐어요. 이젠 선율을 들으면 웬만큼은 어떤 작품인지 떠오릅니다. 좋은 문화만 있으면 사람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갑니다. 그게 바로 문화의 힘이죠. 그런데 문화는 최고가 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요. 그래서 무형문화재가 중요해요.과거 중동신도시가 만들어질 때 경인운하 발표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때 이미 부천운하 계획을 만들었어요. 부천과 인천 경계 지역에 폭이 80~100m나 되는 굴포천이 있어요. 운하를 만들기 위해 따로 땅을 살 필요가 없는 겁니다. 5~6m만 파면 바로 경인운하와 연결돼요. 그때 ‘운하도시 부천’, ‘운하도시 중동’ 이런 말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경인운하 중단으로 없던 일이 됐는데, 그게 다시 살아나니까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지금 굴포천은 물이 다 썩어 있어요. 운하로 물을 깨끗하게 살리고, 부천 물류단지와도 연결하는 거죠.반대하는 시민단체 발표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많아요. 굴포천은 비가 많이 오면 물을 빼는 방수로인데, 거기다 물을 채우면 큰일 난다고 해요. 하지만 거기다 그냥 물을 채우는 게 아니라 5~6m를 파서 채우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마치 비가 오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이야기해요. 또 바닷물이 왔다 갔다 해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말해요. 그 말이 맞으면 섬이나 한강 생태계는 벌써 망가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민단체는 반대를 위해 이런 식으로 거짓말까지 해서는 안 돼요. 추모공원도 마찬가지에요. ‘뼛가루가 날린다’, ‘다이옥신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다 근거 없는 말이죠. 하도 화가 나 거짓말하는 시민단체에는 지원을 중단하라고 했어요.공직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일을 하나 맡으면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 일을 꼭 해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앞서 가던 많은 친구들이 하나도 없더군요. 사실 시장 선거에 나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2000년 구청장이 됐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보름 만에 대부도 직업전문학교장으로 좌천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시장 선거까지 나가게 됐지요. 우리나라는 당리당략과 재선에만 눈이 먼 정치인 지차체장들이 도시를 망치고 있어요. 지자체가 수천 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선거용으로 추진하다 떠나면 그만이에요. 이래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계획과 행정이 불가능하지요. 7호선 연장 문제만 하더라도 부천시가 3200억 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전임 시장 때 돼 있었지요. 그걸 무슨 수로 합니까. 도장 찍은 사람은 떠나고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요. 그런 문제를 한번은 정리하고 도시의 새로운 꿈을 만들 수 있는 터를 닦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선 거죠.1945년 경기도 부천 출생. 63년 인천고 졸업. 2008년 가톨릭대 행정학과 졸업. 70년 지방행정 서기보. 98년 부천시 복지환경국장. 2000년 부천시 소사구청장. 2001년 경기도 직업전문학교장. 2002년 부천시정발전연구소장. 2004년 부천시장(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