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기초를 다진 제임스 1세는 1709년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술에 중과세를 부과했다. 상당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정부에 대항, 산속으로 증류기를 옮겨 밀주를 제작한다. 1746년 영국 정부는 밀주 생산을 빌미로 스코틀랜드에서 대대적인 전투(컬로든 전투)를 벌인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마지막 장면으로 유명한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는 대패했다. 스코틀랜드인 알렉산더 그랜트는 이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가족들과 평생 산속에서 숨어 지내며 스카치위스키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 최고 싱글 몰트위스키인 글렌피딕이다.증손자 윌리엄 그랜트에 의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 오늘날 세계 3대 주류 업체로 성장한 윌리엄 그랜트 앤드 선즈(William Grant & Sons)사는 지금도 가족 전원이 주조, 마케팅 등 경영 전반에 참여하는 ‘가족 회사(Family company)’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윌리엄 그랜트 앤드 선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는 하나같이 가족 구성원 전체가 제품 생산, 판매에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이른바 가족형 창업이 모태가 된 것이다.가족형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족형 창업은 말 그대로 가족 전체가 운영에 나서는 창업 방식을 말한다. 개념만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로운 스타일은 아니다. 부모가 가게나 회사를 열면 자녀들이 일손을 거들며 동고동락하던 보편적인 한국형 창업 방식이다.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업 스타일이다. 농경사회였던 우리 정서에는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이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시계를 50~60년 전으로 돌려보자. 현대 삼성 SK LG 등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 기업들도 시작은 창업주 가족들이 경영 전반에 나서는 가족형에서 비롯됐다.소규모 잡화상 등에서 출발한 이들은 오늘날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 초일류를 꿈꾸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그 원동력은 바로 가족애였다. 가족애로 똘똘 뭉친 이들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가족이 하나로 뭉쳐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자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새삼 가족형 창업이 요즘와서 주목받는 이유는 창업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커진데서 비롯됐다. 불황으로 ‘실직자 100만 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찾으려는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 여기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창업 수요에 불을 댕긴 이유로 풀이된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은퇴 연령대가 앞당겨진 것도 창업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다.이른바 인생 2모작에서 창업은 후반전에 한 골을 터뜨릴 비장의 카드다. 평생 몸담는 직장이 사라진 마당에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쉼 없이 내달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작용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이비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 대열에 합류할 경우 형제, 자매 간 공동 창업은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진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남성의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업 형식으로 시작한 것이 발전해 대박을 터뜨린 예를 찾아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물론 주판알을 튀겨 봐도 꽤 쏠쏠하다. 가족형 창업은 업무를 가족 구성원 전체가 공통적으로 분담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요즘과 같은 불황에는 인건비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것이 시쳇말로 ‘장땡’이다. 3D 업종일 수록 인건비, 구인난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가족 전체가 합심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장기근속을 요하는 서비스 업종일수록 필요성은 더욱 크다. 창업 시장에서 ‘사람 쓰는 일’은 만사(萬事)라고 봐야 한다. 서비스 업종일수록 더 그렇다.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만고의 진리도 예비 가족형 창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이유다. 맥주 전문점 ‘와바’를 만들어 코스닥 상장을 눈앞에 둔 이효복 인토외식산업 사장과 ‘해리피아’, ‘비어캐빈’ 등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운영 중인 김철윤 해리코리아 대표 등 국내 프랜차이즈 대표 주자들도 가족형 창업에서 노하우를 다져 오늘의 성공을 만들었다.올 초 농협경제연구소는 2009년 10대 소비 트렌드를 4S로 함축해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4S란 △기존 소비 수준을 포기(Surrender)하고 △패턴이 전환(Switch)되며 △가격에 민감(Sensitive)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Stress)를 받는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이와 함께 이 보고서는 경기 침체로 외식비용을 줄이고 실속형 소비와 가족,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식비 등 소비를 줄인다는 예비 창업자들에겐 매우 우울한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알뜰형 창업을 생각하는 예비 창업자들에겐 어찌 보면 기회일 수 있다.고정비용을 최대한 줄여 달라진 소비 패턴에 잘 맞춘다면 불황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불황이라는 위기 속에서 가족애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