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한국인식기술 대표

은행잎이 황금빛으로 물들던 지난 2002년 11월 초. 초등학교 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던 송은숙 씨의 인생에 거센 파도가 몰아닥쳤다. 남편인 이인동 박사가 가슴을 움켜쥔 채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대덕밸리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의 연구원으로 있다가 1993년 이 지역에서 창업해 기업가로서 대성하겠다는 부푼 꿈에 젖어 있던 이 박사는 이날 거실에서 쓰러진 뒤 송 씨와 3명의 딸을 남겨둔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이 박사는 세계 최초로 다국어 문서 인식 및 편집 소프트웨어인 ‘글눈’을 개발해 벤처기업대상(대통령상)을 받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사람이었다. 글눈은 문서에 인쇄된 글자를 인식해 텍스트 파일로 전환할 수 있는 문서 편집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한글은 물론 영어 일본어 아랍어 등 무려 17개국의 언어를 인식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었다.송 씨는 앞이 캄캄했다. ‘아~~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사업을 이끌어 갈 것인가. 한국인식기술은 이 박사의 기술과 마케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회사였지 않은가. 게다가 벌어 놓은 돈도 없었다. 남편은 창업 이후 9년 동안 열심히 사업을 해 왔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따내 납품도 했지만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느라 돈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무려 34억 원이나 되는 상속세가 부과됐다. 장외에서 일부 거래되던 한국인식기술의 주식 가격에 대주주 프리미엄까지 가산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세금이 부과된 것이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고 회사 부지를 팔았다. 적금마저 해약한 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을 주식으로 대납하니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더욱 큰 문제는 한국인식기술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남편 작고 후 기업은 극심한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주위에서는 이 박사의 별세로 ‘스타 벤처기업으로 발돋움하려던 한국인식기술이 이제는 끝났다’는 얘기까지 서슴지 않았다.몇몇 거래처 관계자는 “이인동 박사 수준의 연구책임자를 모셔다 놓지 않으면 더 이상 당신네 회사와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누굴 믿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다양한 용도 개발, 그리고 후속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 박사의 빈자리는 컸다.연간 80억 원에 달하던 매출은 10분의 1 토막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직원들은 선장 없는 배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기업은 망해가는 데 어린 세 자녀는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당시 막내딸은 다섯 살에 불과했다. 몇 차례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녀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교직 경력밖에 없던 송 씨는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정보통신기기가 거의 없었다. 컴퓨터 분야에서도 문외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살리려면 결국 자신이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송 씨는 10여 년간 재직하던 교사직에서 물러나 2003년 5월 한국인식기술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남편이 개발한 기술로 뭔가 획기적인 상품을 만들어내야 할텐데’라며 고민하던 그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거래처인 모기업의 한 관계자가 자신의 수많은 명함을 보여주며 “이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온 게 명함 관리 솔루션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기존 기술에 연구원들의 후속 작업을 접목해 탄생시킨 게 바로 개인용 인맥 관리 시스템인 ‘하이네임’이었다.그 후 몇 년 동안 송 대표는 ‘하이네임’에 이어 ‘서프’, ‘인맥 정보 관리 솔루션’등 신제품을 속속 내놨다.하이네임은 개인용 명함 관리 솔루션으로 작은 스캐너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간편하게 명함을 관리할 수 있는데 주로 개인용이다. 여기엔 명함 자동 입력, 다양한 데이터 연동, 검색, 전자메일 및 문자 전송 기능, 인쇄(라벨) 기능이 갖춰져 있다. “하이네임의 문자 인식률은 한글은 95%, 한자는 91%, 영어는 95%, 숫자는 97%에 이를 정도로 우수하다”고 송 대표는 설명한다.서프(SUF)는 ‘석세스 프렌드(Success Friend)’의 약자로 하이네임에 비해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개인용 솔루션이다. 하이네임 기능에 다양한 이력(메모 메시지 개인활동 경조사) 등의 관리 기능이 들어 있고 인맥 관리자와의 친밀도, 성별 표시 등의 기능이 있다. 일정과 기념일에 대한 자동 알림 기능도 내장돼 있다. “한마디로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인맥 관리기”라고 송 대표는 설명한다.하지만 송 대표는 단순히 명함 관리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여기에 기업 내 통합적인 인맥 관리 기능을 더해 ‘인맥정보관리 솔루션(HRMS: Human Relations Managing System)’ 사업을 벌이고 있다. 문자 인식 기술을 활용한 것이지만 단순한 명함 관리에서 한걸음 나아가 사내 임직원들의 인맥을 기업 경영과 매출 확대에 활용하자는 것이다.이 시스템의 개요는 이렇다. 우선 임직원들이 갖고 오는 명함을 자동으로 저장한 뒤 기업의 그룹웨어나 인트라넷에 연동해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직원이 100명인 회사가 1인당 1000명의 인맥(1000장의 명함)을 확보하면 약 10만 명의 인맥이 구축되는 것이다. 일부 인물은 중복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인맥 지도가 만들어진다. 이를 직업별 분야별 취미별 학교별 등 다양한 군별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 여러 가지 부가기능을 넣었다. 이를 통해 많은 기업들이 인맥 관리 솔루션을 구축해 효율적인 인맥 관리에 나서고 있다.그뿐 아니라 주요 신문에 게재되는 인사와 동정을 한국인식기술이 매일 고객에게 제공한다. 그러면 고객 업체의 솔루션 화면에 이 내용이 자동으로 뜨게 된다. 예컨대 사내 인맥 10만 명 가운데 해당되는 사람의 인사 및 동정이 뜨게 된다. 그러면 관계되는 사람은 인사 및 동정 내용에 맞춰 휴대전화나 e메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이런 인맥 정보를 열심히 수집하고 축적할 수 있도록 개별 회사에서는 마일리지 제도를 통해 포상을 하거나 보너스를 주는 등 동기 부여를 할 수도 있다. 회사 고위층만이 접근해야 하는 인물들의 경우 일정 직급 이하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할 수도 있다.송 대표는 “영업부 직원이 갑자기 떠나면 후임자가 해당 직원의 인맥을 넘겨받지 못해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 게 일반적인 한국 기업의 현실”이라며 “이게 얼마나 큰 낭비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기업의 경우 효과적인 인맥 관리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송 대표는 “인맥 정보 관리 솔루션은 개인의 인맥을 회사의 인맥으로 승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인다. 그가 이같이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항상 조언을 듣는 ‘열린 귀’와 ‘낮은 자세’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송 대표는 “기업 가운데 인맥 관리를 제대로 하는 업체는 아직 5%에도 못 미친다”며 “앞으로 이 시장의 점유율을 30~40% 수준까지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2세에게 자신의 좋은 인맥을 넘겨줘야 한다”며 “2세에 대한 인맥 교육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한국인식기술은 18명의 인력 가운데 11명을 연구·개발 부서에 배치할 정도로 신제품 개발과 기능 향상을 중시한다. 이에 힘입어 대통령상 다산기술상 정보문화대상 특허청장상 과기부장관상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등의 관공서와 중소기업은행,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 금융결제원 등 금융권, 그리고 대기업과 각종 중소기업 수백 곳의 솔루션을 구축해 왔다.송 대표는 “영어 일어 아랍어 등 다양한 문자를 인식할 수 있는 만큼 글로벌 기업의 인맥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며 “우선 국내 시장 개척에 주력한 뒤 점차 해외로 눈을 돌릴 생각”이라고 밝힌다.약력: 1964년생. 84년 청주교육대 졸업 및 초등학교 교사. 88년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2003년 한국인식기술 대표(현). 2008년 국가균형발전위원(현). 2009년 여성벤처협회 대전충청지회장(현). 수상;과학기술부장관상 특허청장상 대전광역시장상 등.본사: 대전광역시 탄방동서울사무소: 용산구 서계동임직원: 18명주요 사업 내용: 기업용 인맥 정보 관리 솔루션, 개인용 명함 관리 솔루션,문자 인식 관련 기술 개발 제공 등.거래처: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은행 한국전력공사 등.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