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 경쟁력을 말한다 -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장

“경영학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제대로 된 가치관을 지닌 경영자를 길러내는 게 중요합니다.”서울대 경영대학 안태식 학장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열정이 없는 경영학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영자는 의사결정자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진리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 책무라고 덧붙인다. 그는 학생들을 단순히 경영 기술을 익힌 테크니션이 아니라 큰 틀에서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재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법대가 있을 때도 그랬지만 우리 경영대학에 들어온 학생의 지적 능력은 최고 중 최고입니다. 그래서 책임감이 큽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사회성과 관련된 훈련을 받았는지,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경험이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서울대 경영대학이 바라는 인재와 차이가 있습니다. 경영대학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인지. 만약 전자를 이유로 지원한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을 한국과 세계를 짊어질 리더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그리고 우리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영어 강의는 40%로 총 7개 과목을 듣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게 돼 있습니다. 100% 영어 강의도 고려했지만 국제화가 언어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학부에서는 50% 정도만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언어교육원 수강 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제2외국어도 권장하고 있습니다.외국어 학습 지원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일 뿐,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전문성과 인간성을 갖춘 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교과와 교과외과정에 이를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과과정 내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교양과목을 37학점 배정해 사회를 책임지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필요한 소양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정리 중입니다. 교과외과정에도 사회성, 인간애, 가슴이 따뜻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동아리 활동 장려는 물론 팀 스포츠, 글로벌 봉사활동, 중소기업 체험, 글로벌 인턴십 등을 패키지로 만들고 있습니다.한마디로 우리는 우리 겨레의 미래를 책임지는 글로벌 리더를 키우고자 합니다. 서울대 졸업생들은 한국을 이끌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국립대학으로서 국가와 겨레에 대한 소명의식이 다른 사립대보다 강조돼 왔습니다. 이는 엘리트라는 자부심으로 자연스럽게 배양돼 왔습니다. 경영학이 단지 돈 잘 버는 학문으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부류의 사람과 어울려 기업을 만들고 고용도 창출하며 한국에 도움을 주는 기업가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이자 책임입니다. 그래서 경영대학의 미션을 세계성(Globality), 창의성(Creativity), 도전(Challenge),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으로 최근 정했습니다.경영학은 응용 학문입니다. 현장에서 응용될 수 있는 학문, 그리고 현장에서 자료를 추출해 이론을 형성할 수 있는 학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산학협동은 필수적입니다. 한국의 경영 사례를 연구한 논문을 시리즈로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영대학의 책무 중 하나가 우리 기업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한국경영역사총서를 계속 발간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자 앞으로 한국 경영학 연구에 중요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것입니다. 이 자료들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기업 케이스스터디 유통 기관인 ECCH(European Case Clearing House)에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하버드 케이스(Harvard Case)에도 사례 연구를 등록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서울대 경영대학이 만든 한국 기업 사례 자료를 전 세계 경영 학도가 공유할 수 있습니다.사립대들이 분발하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고려대의 경우 동문과의 관계, 연대의 국제 교류 등은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이고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경쟁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경쟁하는 것보다 독자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경영이 무엇이고 한국 기업은 무엇을 잘해서 일류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등 한국 경영학과 기업 정보의 메카로서 서울대만의 독자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말하듯이 무조건적인 미국 모델을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잘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한국 사회와 기업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축적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습니다.세계 랭킹에 연연해 할 것은 없지만 상위에 진입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대의 교수와 학생의 우수성은 이미 아시아 정상급입니다. 경영전문대학원의 경우 세계 정상급 교수 20명을 모시고 있습니다.학부 학생 정원이 늘어난다면 규모의 경제가 달성돼 글로벌화에 더욱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현재 경영대학의 정원은 130명으로, 주요 사립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교직원의 국제화, 단과대 재정의 탄력성이 아쉽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계 상위 랭킹에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겨레와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제대로 만들어 키워내는 게 가장 큰 사회 공헌일 것입니다. 이 밖에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교수들 나름대로 부담과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 교수의 역할은 학문을 가르치는 것 이전에 선배 혹은 롤모델(본보기)의 모습도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교수 30명이 모여 실직자를 대상으로 무상 교육 프로그램을 한 달 동안 진행했고 1기생을 배출했습니다. 이런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게 쑥스러웠지만 교수들도 사회 공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경영대학 사이트에 띄워 학생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학생들의 사회 공헌을 위해 현재 구상하는 것은 중소기업 현장 실습입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학생들이 중소기업에서 경험하며 경영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경영자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경영을 배우며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잘나가는 대기업이 아니라 열악한 상황 속의 우리 중소기업들이 어떤지 체험하고,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재능으로 도울 수 있으면 도우라는 취지입니다.미국식 경영이 주주 중심의 경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주주만 생각하고 이해관계자를 등한시하는 게 아닙니다. 일부 잘못된 가치관을 지닌 경영자들이 단기 이익에 치중하다 보니 당장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그게 바로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는 게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것입니다. 모든 경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경영자들이 제대로 된 가치관이나 철학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1956년생. 80년 서울대 경영대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89년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경영학 박사. 88년 미국 텍사스대·애리조나주립대 교수. 89년 아주대 경영대 교수. 97년 서울대 경영대 교수. 2000년 한국회계학회, 중소기업학회 상임이사. 2002년 한국경영학회 상임이사. 2009년 서울대 경영대학장, 경영전문대학원장(현).정리=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대담= 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