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우주개발사
1만80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대회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 우주인 선발 대회다. 우주인 후보 2명을 뽑는 행사에 남자 3만여 명, 여자 6000여 명 등 총 3만6200여 명이 몰렸다. 우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이처럼 뜨겁다.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이소연 씨가 탄생한 후에는 항공에 관련된 학과 경쟁률이 치솟았고 우주개발 역사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한국의 우주개발 잠재력은 조선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켓의 시작은 1377년 고려 말 주화(走火: 달리는 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무선에 의해 개발된 주화 로켓은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일본의 왜구들을 물리치는데 화포 등과 함께 사용됐다. 조선시대 세종 때인 1448년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돼 귀신같은 기계 화살이라는 뜻인 ‘신기전(神機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쉽게도 이렇게 발달된 로켓 기술은 세조 때 반역의 우려로 개발·생산이 모두 금지되면서 사장돼 버렸다.본격적으로 로켓 실험이 시작된 것은 1958년부터였다. 당시 국방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은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쳐 마침내 1959년 인천 고잔동 해안에서 1단, 2단, 3단 로켓을 성공리에 발사했다. 인하공과대학은 같은 해 병기공학과 학생 및 교수들이 인하공대 최초의 로켓인 IITO-2A를 개발, 송도 앞바다에서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비록 초기 비행 중에 안정날개와 탑재부 분해로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지만 추진기관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우주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1호가 1992년 8월 11일, 남미 쿠르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때 한국은 인공위성 보유 국가로 등록하게 됐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우리별2호가 연이어 발사됐다. 우리별2호는 영국 서리(Surrey)대학에 파견된 한국과학기술원연구진이 국내에 돌아와 국내 연구진과 공동으로 개발한 위성이다. 지구 관측 카메라와 저에너지 검출기, 적외선 감지기 시험 장치, 소형 위성용 차세대 컴퓨터 등이 탑재돼 우리별1호보다 한층 진화됐다는 평을 받았다.우리별 1, 2호에 이은 무궁화 위성은 KT가 외국에서 제작한 첫 상업위성이다. 1995년 8월 5일 통신위성인 무궁화1호는 미국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 미 공군기지에서 처음 발사됐다. 하지만 완벽한 성공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자체 연료를 분사해 궤도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9개의 보조 로켓 중 1개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애초 예정된 위치까지 올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궁화2호가 개발됐다. 1996년에 성공적으로 발사된 무궁화2호로 인해 화상 회의, 위성 비디오 중계, 초고속 데이터 전송 등 첨단 방송통신 서비스가 제공됐다. 김승조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무궁화2호는 위성통신 서비스 발전의 큰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그러나 무궁화2호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수명이 짧아 대체할 위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궁화3호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해 줬다. 무궁화3호가 1999년 9월 5일 남미 프랑스령 가이아나의 쿠르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됨으로써 한반도 외에 동남아 지역에도 중계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다.통신위성 개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위성 운용에서 쌓은 노하우를 통해 2006년에는 무궁화5호가 발사됐다. 무궁화5호는 고속 데이터 통신과 영상 서비스 등 융합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명실상부한 국내 상용 위성의 입지를 강화한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재우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존 한반도 중심의 서비스 영역 한계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통신위성뿐만 아니라 다목적 실용위성이 발사된 기록도 있다. 무궁화3호가 발사되던 그 해에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발사됐다. 아리랑1호는 한반도 관측, 해양 관측, 과학 실험 등을 위한 이용 기술 기반 확보를 목표로 추진됐다. 1994년 11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약 2241억9000만 원의 개발비가 투자됐으며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의 지원 하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미국의 미국의 항공우주기기·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TRW 등이 참여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2006년 7월에는 아리랑2호가 발사됐다. 아리랑2호는 한반도 정밀 관측을 위한 고정밀 위성 개발 및 고해상도 탑재 카메라 기술 조기 확보를 목표로 착수됐다.그간 해외에 의존하던 발사체도 자체 개발이 시작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가 1993년에 발사한 1단형 과학로켓-1(KSR-1)과 1997년과 1998년에 쏜 2단형 과학로켓-2(KSR-2)가 그것이다. 1단형 과학 로켓은 고체 추진체를 시용하는 로켓으로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관측을 목표로 개발됐다. 또 길이 11.1m, 중량 2톤, 최고 고도 138.4km의 2단 분리형인 중형 과학 로켓 KSR-2는 150kg의 탑재물을 148km 상공까지 쏘아 올렸다. 하지만 고체연료는 군사용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미국 등 우주 선진국의 견제가 심했다. 이에 따라 액체 추진 로켓 3단형 과학 로켓 KSR-3을 개발, 2002년에 쏘아 올렸다. 이는 소형 위성 발사체 KSLV-Ⅰ사업 개발 계기가 됐다.장영근 한국과학재단 우주단장은 “우리나라는 고체연료 로켓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액체연료 로켓의 경우엔 기술 격차와 경험 부족으로 상당히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1990년대 말부터 액체연료 로켓 엔진을 개발했지만 추진제 공급 방식 및 구조 중량비 등의 기술적 제약으로 우주 발사체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태동한 것이 소형 위성 발사체 개발 사업”이라고 말했다.‘KSLV-Ⅰ’은 오는 7월 말께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땅에서 인공위성을 처음으로 쏘아 올리게 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여기에다가 내년 7월에는 고화질(HD) 방송 서비스 등에 이용될 우리나라의 무궁화6호 위성이 발사될 계획이어서 우주산업 시장은 앞으로 계속 커질 전망이다.북한이 지난 4월 5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기지에서 ‘은하2호(대포동2C/32호)’ 로켓을 발사한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비록 목표 도달에는 실패했지만 뛰어난 기술을 보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발사체 기술을 입증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은하2호의 1단계 로켓은 2006년 발사됐던 대포동2호보다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단계 로켓이나 고체연료 추진체로 이뤄진 3단계도 상당 부분 개량된 것으로 보고 있다.김병용 한국국방연구원 박사는 “북한이 국제해사기구(IMO)에 통보한 좌표상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로켓 추진체가 낙하한 것과 최근 2년간의 대포동 2호 엔진 연소 시험 결과 등을 보면 이번에 쏜 개량형 대포동 2호의 최대 사정거리는 7000km 이상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3000여km였던 대포동1호의 최대 사정거리에 비하면 2배 정도 늘어난 셈이다.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로켓의 2단 추진체의 낙하지점 역시 대포동1호 때와 비교된다. 대포동2호 낙하지점은 일본 동쪽에서 약 2100km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이는 무수단 발사장으로부터 3100km 이상 떨어진 거리로 애초 예고된 3600km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1998년의 대포동1호(1646km)보다는 두 배가량이나 멀리 보낸 것이다. 이에 따라 인공위성의 궤도 진입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로켓 발사 기술만큼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다.김선명 기자 kim069@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