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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 101개가 생산 활동 중이고 북한 근로자 3만8000여 명이 일하는 현장이 남북 합작의 개성공단이다. 2008년 7월까지만 해도 북측 근로자가 3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 와중에서도 개성공단만큼은 외형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얘기다. 금강산 관광길이 차단되고 로켓 발사 전후로 북쪽의 언사가 극단적으로 심해졌지만 개성공단은 서로가 쉽게 손대지 않았다. 정치·외교·군사적 관계나 사회·문화 교류와 달리 경제협력 사업은 한 번 신뢰에 금이 가면 다시 회복하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남북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런 개성공단 운영에 대해서도 북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 정부에 공을 던졌다. 현재 1인당 월 70달러 안팎인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올리고 공장부지 비용도 당초 2014년에서 4년 앞당겨 내년부터 지불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미 있는 메시지는 북도 개성공단의 폐쇄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였다는 점일 것이다.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당장 정부는 이에 맞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큰 고민이다. 이는 개성공단의 운영과 장래에 한정되는 전략이 아니다. 향후 대북 정책의 방향을 확정할 하나의 시금석이 될 상황인 까닭이다.MB 정부 출범 후 1년여간 북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그 바탕에는 새로 출범한 우리 정부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길들이기’하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빠짐없이 있었다는 게 대북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본 당국자들의 분석이다.‘햇볕 정책’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했지만 노무현 정부에 대해 자기 식의 ‘남쪽 다루기’ ‘군기 잡기’ 시도가 있었다는 경험담은 당시 정부의 핵심 인사에게서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 때는 이 같은 북의 태도 때문에 공식·비공식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조건 없는 화끈한 지원으로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지원하자 북이 태도를 바꿔 매우 적극적으로 나왔다는 것인데, 그런 전략이라면 정권의 정체성이 크게 바뀐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의 노림수는 충분히 짐작이 되고 남는다. 이처럼 큰 틀을 파악해 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외교와 대외적인 자존심을 감안할 때 남북 관계의 답이 나올 수 있다.지금 현안으로 부각된 개성공단 문제도 이 그림에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법을 마련해야만 한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주장하는 현상만 보면서 개성공단의 장래를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지금 한 번 뒷걸음질 치면 단시일 내에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따라서 현 단계에서 개성공단도 살리고 북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에서도 탈피하자면 원칙에 입각한 강한 메시지를 북에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자면 입주 기업의 입장과 이들이 제시하는 경영 계산서를 보여주는 것도 실질적 접근이 된다. 정치적 흥정이나 판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경영 실상을 보여주고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그 범위 내에서 수용할 부분이 있다면 북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재삼 중요한 사실은 개성공단의 운영이 남북의 정부 당국만에 의해 좌우되어선 안 되며, 입주 기업의 입장과 의지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대북 정책의 원칙을 다시 한 번 정립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절실하다. 그간 우왕좌왕하면서 부처 간 이견까지 그대로 노출한 것이 상대방을 더 고집스럽고 강경하게 만들어버린 측면이 분명히 있다.우리가 판단해도 경비 부담 증가가 불가피한데 입주 기업들에 여유가 없다면 국회 동의 등을 전제로 남북협력기금과 같은 재원에서 지원도 한번쯤 공론화해 볼만하다. 지금쯤은 항구적 평화 비용이 얼마나 들고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지 경제적 관점에서 한 번 냉정하게 계산해 볼 때도 됐다. 단기적으로는 평화 유지비용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통일 비용이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다. 다만 밀실 지원, 무작정 퍼주기라고 비판받았던 것과는 달라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