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쪽방촌에는 변변한 수입이 없는 80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 곳곳에 산재한 약 6600가구가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살고 있다. 5000여 가구는 비닐하우스에서 거처하고 있다.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주거 이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월세 21만~24만 원으로 살던 쪽방엔 화장실이나 취사 시설이 따로 없지만 이 사업으로 독신자에게 마련해 준 집은 건평 30㎡(9평)에 이른다. 이들은 가구당 보증금 100만 원에 월 8만 원의 임차료로 살 수 있게 됐다. 비닐하우스에 살던 가족들은 방이 1~3개 있는 50㎡의 따뜻한 집을 마련했다. 보증금 350만 원, 월 10만 원에 살 수 있게 된 것이다.정부의 소외 계층 주거 이전 사업의 재원은 바로 복권이다. 기획재정부 산하의 복권위원회가 운용하는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지난 2007년 한 해에만 119가구가 보금자리를 얻었다.복권(福券: lottery)은 공공기관 등에서 특정한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표다. 물론 당첨금이 있다. 이 복권만큼 양면성을 지닌 사업도 드물다. 한편으론 사행심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적절히 운영되기만 하면 오락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소외 이웃을 돕는 등 갖가지 사회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된다.복권은 인류 역사와 궤를 함께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인간의 심성에는 어느 정도 사행심(射倖心)을 바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복권의 효시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회에서 복권을 팔고 복금으로 노예, 집, 배 등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그러나 보다 근대적인 복권의 형태는 140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1530년대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에서 세계 처음으로 ‘로또’라고 불리는 복권이 나와 오늘날 로또의 뿌리가 됐다. 복권은 오늘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부분을 포함해 100여 국가에서 200여 기관이 발행하고 있다.한국의 복권은 조선 후기의 계(契)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지만, 광복 후에는 1948년 런던에서 열린 제14회 올림픽 경기 대회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947년 12월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올림픽후원권(100원짜리 140만 장)을 발행한 것이 공식 복권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2004년 4월 1일 ‘복권 및 복권기금법’이 시행되기 직전까지는 건설교통부 등 10개 기관이 각각 개별 법률에 근거해 온라인(로또)복권 인쇄 복권(주택복권 등) 전자(인터넷) 복권 등 총 61종의 복권 상품을 발행. 판매해 왔지만 복권위원회 출범 이후 12종 복권 상품으로 감축, 운영되고 있다.복권 발행 기관 및 유사 복권 상품의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과 사행성 조장 문제가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10개의 복권 사업 근거 법률을 통합, 1개의 법률로 일원화해 복권 사업을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복권 및 복권기금법’을 2004년 4월 1일 제정, 시행하고 있다.이 법에 따라 출범한 복권위원회는 민관 합동 복권 사업 자체 통제 기구다.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겸직하고 있다. 위원은 국토해양부 등 기존 복권 사업 운영 9개 기관 소속의 고위 공무원이 참여하는 정부 위원(9명)과 민간 위원(11명)으로 구성돼 있다.복권법이 시행된 이후 2008년 7월 10일까지 4년 3개월여 동안 복권 누적 매출액은 12조453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평균 2조9000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복권위원회 관계자는 “총판매액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6조2539억 원(50.2%)이 당첨금으로 지급됐고 9881억 원(7.9%)은 발행 관리 판매 등 운영비로 쓰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로또복권의 1등 당첨금 지급액은 총 2조5796억 원, 1등 당첨자는 1286명, 1인당 평균 당첨금은 20억여 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복권 종류별 판매액 분포도는 온라인(로또) 복권이 95%에 달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전자(인터넷) 복권이 약 3%, 인쇄 복권 약 2%에 해당한다.그러면 나머지 금액은 어느 곳에 쓰일까. 복권기금은 당해 연도 조성액을 당해 연도 지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복권위원회는 발족 이후 2008년 말까지 총 4조8518억 원의 복권기금을 조성(추산액)해 연평균 9704억 원의 복권기금사업비를 각 수요 기관에 배분하고 있다.복권기금 중 30%는 법정 배분 사업에 투입돼 ‘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정 이전의 복권 사업 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 등 10개 기관(총 160개 사업)에 분배된다. 나머지 70%는 공익사업비로서 저소득층 주거 안정, 국가유공자 복지, 소외 계층 복지, 문화 예술 진흥 및 문화재 보존 , 재난 재해 응급 조 치 등 5개 분야(총 86개 사업)에 지급된다.작년 한 해 동안 9개 기관, 30개 사업에 총 1986억 원이 지원된 법정 배분 사업비의 구체적인 예로는 근로복지공단에 의한 생활안정자금 융자 사업을 들 수 있다. 저소득 근로자가 본인 및 부양가족의 질병 등 가계 생활의 곤란을 겪고 있는 경우 생활 안정 자금을 융자해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소속 사업장에서 3개월 이상 근무 중인 근로자로 월평균 임금이 170만 원 이하인 자에 한해 의료비, 혼례비, 장례비, 노부모 요양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또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의한 정책 자금 지원 사업도 들어 있다. 중소기업의 구조 고도화, 창업 촉진, 산업 기반 구축 등을 위해 융자해 주는 사업이다. 성장 가능성이 큰 혁신형 중소기업을 중점 발굴해 세계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기도 한다. 둘째, 공익 사업이다. 복권기금 중 각종 경비와 법정 배분 사업비를 제외한 재원을 저소득층 주거 안정 국가유공자 복지, 소외 계층 복지, 문화 예술 진흥 및 문화유산 보존, 재해 재난 긴급 구호 사업 등에 쓰고 있다.작년 한 해 동안 10개 기관, 12개 공익사업에 6056억 원이 지원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는 임대주택의 건설 등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 지원, 다가구주택 매입 임대, 기존 주택 전세 임대, 쪽방 및 비닐하우스 등 거주 가구 지원 등도 들어 있다.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시설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에게 단신자용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거나 기존 주택을 전세로 임차한 뒤 재임대하는 사업이다. 2009년까지 총 4100호의 단신자용 임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을 매입, 신축하고 5200가구의 전세 임대를 지원하게 된다.이 밖에 고령의 국가유공자의 안정된 노후 생활 지원, 소외 계층(장애인 여성 노인) 복지 지원, 저소득 노인과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기초 생활 수급자에게 가사 간병 서비스 지원 사업도 들어 있다. 청소년 치료 재활 전문 센터 설치도 주요 사업 중 하나다.정부는 복권 사업 건전화 및 효율화를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복권은 사행사업이어서 정부가 직접 수행하고 있다, 사행성을 완화하고 구매 중독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강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첨금 최고 한도 규제(무당첨 이월 횟수 제한 및 복권 판매 가격 인하 등), 1인당 1회 구입 한도 및 1일 구매 한도 설정, 복권 상품 감축 등 다각적인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한국과 미국의 복권사업에 대한 비교연구’로 한국외국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윤광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복권은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이웃 지원 등 사회적으로 많은 순기능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취재= 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