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엇갈리는 경기지표

중국의 경기지표가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2월 11일 발표된 중국의 1월 수출입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17.5%, 수입은 무려 43.1% 감소했다. 서방 언론들은 예상외의 큰 폭 감소라며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글로벌 금융 위기에 얼마나 심하게 타격을 입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출은 14%, 수입은 25.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같은 날 중국의 ‘입’인 관영 신화통신은 춘제(春節: 설) 효과를 제외하면 수출은 오히려 늘었다며 추세를 더 지켜봐야 하지만 희망이 보인다고 전했다. 올해 1월은 춘제 연휴가 들어 있어 작년 1월에 비해 조업 일수가 5일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1월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6.8% 늘었고 수입은 감소 폭이 43.1%에서 26.4%로 줄어든다. 무역 규모 감소 폭도 29%에서 8.2%로 크게 줄어든다. 같은 지표를 놓고도 엇갈린 분석이 나올 만큼 중국의 경제 앞길은 시계 제로다.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양대 성장 엔진인 중국 경제가 어떻게 될 건지는 미국발 금융 위기로 휘청거리는 세계가 더블 트러블에 빠질지, 미국발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모멘텀을 제공할지 가름하는 주요 변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맞서고 있는 중국 경제 지표를 짚어본다.= 낙관론은 중국 정부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가 지난 연말에 경기 회복의 첫 신호가 엿보였으며 중국이 주요 경제권으로서는 가장 먼저 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발언은 2월 10일 관영 신문들을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사실 그의 발언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 발언의 재탕이지만 이 같은 언론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현상 분석 기준으로 지도부의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게 관례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최근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80.9%가 중국이 올해 국제 금융 위기 속에서도 눈부신 경제 발전을 꾸준히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금융 위기를 부추길 수 있는 보도를 엄격히 통제하는 중국 지도부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하지만 낙관론을 뒷받침할 각종 지표도 제시되고 있다. 춘제 연휴를 제외하면 1월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6.8%, 작년 12월보다 10.1% 증가했다는 게 관영 신화통신의 분석이다. 춘제 연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의류와 신발의 수출이 각각 5.7%, 10.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의 장옌성 대외경제연구소장은 “작년 4분기 이후 내수를 키우고 해외 수출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며 “올 1분기와 2분기에는 국내 투자와 소비가 더욱 늘면서 내수가 안정되고 수입도 덩달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수출할 때 세금을 돌려주는 비중인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률을 작년 8월 이후 4차례 올렸다. 오르기만 하던 위안화 가치도 작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별 움직임 없이 안정세를 지속해 오고 있다. 2005년 7월 21일 고정환율제를 관리형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후 3년간 위안화를 21% 절상한 게 중국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아온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지난해 11월과 12월에 이어 올해 1월의 신규 대출이 3개월 연속으로 급증했다는 소식도 낙관론을 부추긴다. 지난 1월 은행의 신규 대출 규모는 1조2000억 위안(240조 원)으로 월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당국이 잡은 올 한 해 신규 대출 목표치(4조6000억 위안)의 26%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 총통화(M₂) 공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7.82% 증가해 작년 5월을 기점으로 둔화세를 보이던 추세가 다시 확장세로 돌아섰다. 통화 정책이 긴축에서 팽창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용이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은행을 창구로 시장에 돈을 쏟아 붓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게 낙관론자들의 분석이다. 은행에 대출 압력을 넣어도 통하지 않는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들과 다른 모습이다.지난 1월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제조업의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로 50을 넘으면 확장, 50 이하면 위축을 의미)도 낙관론을 받쳐 주고 있다. 45.3으로 제조업 경기가 여전히 위축돼 있음을 보여 주지만 지난해 11월(38.8)과 12월 (42.2)을 감안하면 바닥을 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곡물 철광석 등을 운반하는 벌크선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가 최근 50% 이상 뛰어오른 것이나 철광석과 강철, 기타 금속의 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점차 살아나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이에 화답하듯 지난해 65% 폭락했던 중국 증시는 올 들어 상승세로 전환됐다. 올 들어 2월 11일까지 24.1% 급등했다. 중국 경제의 회복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 부양책이 시장에 먹히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증거들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앞으로 최소 1∼2분기는 해외 수요 위축의 역풍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 성장세가 좋아지기 전까지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지난 1월 수출과 수입이 모두 3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고 발표되자 모건스탠리의 칭왕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JP모건의 징 울리히 중국 주식담당 회장도 “중국 무역에 미치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해외에 있다”며 “외국에서도 감세 등의 경기 부양책이 나오고 있지만 소비 전망은 여전히 암울하다”고 지적했다.중국의 1월 수출은 904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7.5% 줄었다. 수입은 513억 달러로 43.1% 감소했다. 수출은 1996년 이후 13년 만에, 수입은 1993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특히 중국의 수입 격감은 중국을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삼는 한국과 대만 등에 차이나리스크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 세관 기준으로 1월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46.4% 감소했다. 인도(마이너스 59.8%),러시아(마이너스 59.0%), 대만(58.0%)뿐만 아니라 일본(마이너스 43.5%)과 미국(마이너스 29.9%) EU(마이너스 21.5%)도 중국 수출이 크게 줄었다.더욱이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 우려마저 고조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보다 1% 상승에 그치고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3%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증권보는 전문가들을 인용, 소비자물가지수가 2월에는 0%에 근접하고 3월에는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특히 중국 은행들의 신규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도 사실상 투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위한 단기 대출이 늘어난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도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기보다는 지난 연말에 크게 축소한 재고를 다시 쌓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비록 춘제 연휴가 끼어 있었지만 올해 1월의 전력 생산이 13%나 줄어들었다는 것은 산업 생산이 회복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실업 문제가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이미 2000만 명의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이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에만 도시로 새로 유입될 600만 명의 농민공을 감안하면 2600만 명의 농민공에게 일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여기에 매년 600만 명이 쏟아져 나오는 대학 졸업자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도 생존을 위한 감원 행렬에서 예외가 아니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서방 소비자들이 다시 지갑을 열 때까지 국가 경제가 계속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마련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지표들을 보면 글로벌 경제의 침체는 당초 예상한 것보다 길어질지 모른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