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시장
‘라면(羅綿)이라고, 뭐 새로 나온 옷감인가?’어느 날 갑자기 들어보지도 못했던 라면이 출시되자 사람들은 새로운 옷감이나 실이 판매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무리 홍보해도 팔리지 않자 직원들이 직접 길가에 간이 점포를 설치하고 조리하는 방법까지 친절 지도에 나서야 했다.그러던 것이 지금은 한국의 연간 라면 소비량이 36억 개나 된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국민 1인당 소비량으로 따지면 80개에 육박해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1963년 국내 최초로 판매된 삼양라면 가격은 단돈 10원으로, 당시 30원 하던 김치찌개 백반과 견줘볼 때 라면은 허기진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식사 대용품으로 ‘딱’이었다.정부의 강력한 혼·분식 장려 정책은 라면 판매에 날개를 달아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라면은 컵라면 생면과 다른 기능성 라면 등을 합쳐 300여 가지에 달한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전체 소매 판매 시장을 분점하는 브랜드 제품은 예닐곱 가지다. 많이 판매되는 주요 라면 브랜드에 대해 대형 유통점에서 판매되는 가격 묶음 등의 조건을 똑같이 제시해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을 조사했다. 모든 라면은 5개 묶음 포장 기준이다.소비자는 신라면 40%, 안성탕면 18%, 삼양라면 11%, 오징어짬뽕 6%로 선택했다. 너구리와 수타면 등이 5%로 뒤를 이었다. 제조업체별로 보면 농심이 전체의 70%, 삼양 16%, 오뚜기 7%의 선택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농심의 실제 라면 시장점유율 71%(추정치)와 비교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대형 유통점에서는 흔히 라면 5개에 1개를 덤으로 얹어 주는 ‘원 플러스’ 행사를 연다. 만약 다른 라면은 그대로 판매되는데 신라면만 원 플러스 행사를 열면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먼저 신라면의 시장점유율은 20% 이상 높아질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제품들은 모두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한데, 안성탕면 7.0%, 삼양라면 4.5%, 너구리 2.3%, 수타면 2.2%의 하락이 예상됐다. 특정 제품의 매출 상승이 다른 경쟁 제품의 매출에 얼마나 마이너스 효과를 주게 되는지를 따지는 이른바 식인 효과(Carnivalization)의 측면에서 볼 때 농심은 신라면의 점유율이 올라 좋기는 하지만 자사의 다른 제품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기 때문에 전체적인 득실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한편 마찬가지로 다른 라면은 그대로 판매되는데 삼양라면이 혼자 원 플러스 행사를 실시하면 점유율은 약 14%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럼 가격 효과는 어떨까. 라면은 거의 공통적으로 가격이 내리거나 올려도 점유율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가격이 어느 정도까지 오르더라도 자신이 선호하는 라면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신라면의 경우 100원을 할인하면 5%의 시장점유율 상승하는 반면 100원을 인상하면 6%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탕면, 삼양라면의 경우도 엇비슷했다.경쟁 관계인 삼양라면과 안성탕면을 가지고 브랜드 가치를 따져본 결과도 흥미롭다. 두 제품의 가격을 모두 인상되기 전 가격인 2450원으로 했을 때 점유율은 안성탕면이 삼양라면보다 약 7% 높았다. 이 7%는 안성탕면이 삼양라면보다 더 강한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가격 할인과 원 플러스 제공은 어느 쪽이 더 매출 증대에 효과가 있을까. 안성탕면을 가지고 200원 할인했을 때와 원 플러스를 제공했을 때의 구매 행동을 분석해 보았다. 결과는 가격 할인으로는 판매가 약 4% 증가하지만 원 플러스 행사를 하면 증가 폭은 약 13%에 달했다.라면은 소비자들의 웰빙 의식이 높아지는 구조적 변화로 인해 최근 10년간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판매량 감소 속에서 수익을 유지하려면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혼자서 가격을 올리면 점유율 하락이 우려된다. 과연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올려 받을 수 있는 가격 폭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황경남·컨슈머초이스( thechoice.co.kr) 대표©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