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업을 하는 A기업 박 사장은 최근 영업이 너무 안 돼 당기손실이 예상되는 데다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바람에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질 것 같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현금 회수도 어렵고 당기손실에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신용은 더욱 낮게 평가될 것이고, 그러면 부담해야 될 은행 금리가 더 높아질 것이 빤하기 때문에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도 다 빠질 지경이다.이런 박 사장의 고민을 잘 알고 있는 경리부장은 신문을 읽다가 뛸 듯이 기뻐하며 박 사장에게 부채비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내용인즉 회계기준이 개정돼 2008 회계연도부터 유형자산 재평가가 허용되고, A기업의 경우 강남과 지방에 몇 개의 건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재평가하게 되면 부채비율 문제는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평가 후 총자산 규모도 현재보다 2배 정도 높게 평가될 것이다.박 사장의 지시에 따라 급하게 재평가를 진행하던 경리부장은 큰 고민을 안게 됐다. 강남에 있는 건물은 100억 원 정도의 평가차익이 발생했지만 지방에 있는 건물들은 합쳐서 50억 원 정도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것이다.개정된 회계기준을 자세히 살펴보니 재평가하더라도 평가차익과 평가손실을 상계한 순액을 기준으로 회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자산별로 회계 처리해야 하고, 평가차익은 당기이익에 반영하지 않지만 평가손실은 곧바로 당기손실에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회계 처리하면 결과적으로 회사의 당기순손실 규모가 더 커져 박 사장이 노발대발할 것이 뻔하다.게다가 회계기준 개정에 따른 재평가 제도는 예전 규정에 따라 그대로 회계 처리할지, 또는 재평가할지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선택 사항이지만 한 번 재평가 모형을 선택하면 예전 자산재평가법과 달리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도 공정가액 변동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재평가할 때마다 소요될 평가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2011년에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그때 다시 원가모형을 재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내용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경리부장은 오로지 박 사장의 화가 잔뜩 난 무서운 표정만 떠오를 뿐이다.이처럼 회계기준 개정으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금융회사 등을 포함한 모든 기업이 유형자산에 대해 재평가할 수 있게 됐다. 자산 가치를 높이고 부채비율을 완화할 수 있는 등의 긍정적인 측면만 고려한 후 재평가 모형을 선택한 회사들은 위 사례에서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자산재평가법에 의해 재평가한 적이 있었지만 회계기준에서 유형자산 재평가를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2008 회계연도에 대한 결산이 급하기 때문에 유형자산 재평가를 허용한다는 큰 방향만 알고 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재평가를 시도하는 기업이 종종 있는 것 같다.다행히 지금은 2011년에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다시 원가 모형을 재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재평가 모형에서 다시 원가 모형으로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재평가 모형 선택 시 평가이익과 평가손실을 상계하지 않고 각각 회계 처리해야 하며, 평가이익은 당기이익에 반영하지 않지만 평가손실은 당기손실에 곧바로 반영한다는 점, 일회적인 재평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정가액 변동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평가비용이 적지 않게 소요될 수 있다는 점 등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한 후 그야말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한국회계기준원 연구원약력: 1974년생.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2001년 공인회계사 합격. 2001년 삼덕회계법인. 2003년 법무법인 삼우. 2005년 E&Y 한영회계법인. 2006년 SG매니지먼트. 2007년 한국회계기준원 연구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