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간판은 경영대가 결정한다!’2009년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면서 경영대의 달라진 위상이 증명되고 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개교로 법학과가 사라지자 경영대가 각 대학의 ‘얼굴’로 부상한 것이다. 비단 입시만 그런 게 아니다. 부전공 및 복수 전공 선택, 편입, 전과에 이르기까지 경영대 편중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취업 현장도 마찬가지여서 ‘경영학과가 아니면 서류심사 통과조차 어렵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무엇이 경영대를 이렇게 밀어올리고 있는 것일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지난해 12월 치러진 각 대학의 2009학년도 정시모집에선 경영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 경영대의 경쟁률에 시선이 집중됐다. 고려대 경영대가 정시모집을 앞두고 주요 일간지에 ‘서울대보다 낫다’는 네거티브성 광고를 실은 게 도화선 역할을 했다.뚜껑을 열어 보니 전반적으로 경쟁률이 크게 올랐다. 서울대 경영대는 4.3 대 1로 전년도 3.86 대 1에 비해 크게 올랐다. 연세대 경영대도 3.34 대 1에서 올해 3.5 대 1로 높아졌다. 또 서강대 경영대는 4.9 대 1에서 6.1 대 1로, 성균관대 경영대는 3.5 대 1에서 4.6 대 1로 눈에 띄게 경쟁률이 상승했다. 고려대 경영대는 전년도와 같은 2.53 대 1을 기록했다.각 대학 문과대의 ‘간판’이 경영대로 바뀌고 있다. 로스쿨 개교로 법대가 폐지되면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다른 대학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면서까지 신문 광고를 낼 정도로 경영대 간 경쟁도 치열하다.이런 현상은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경영대’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경대 혹은 정경대에 속해 있는 하나의 학과로서 경영학과가 있었을 뿐이다.놀라운 변신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부터 경영대를 단과 대학으로 설치하는 대학이 늘기 시작했다. 하나의 학과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단과대학으로 승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 1994년 경영학과를 졸업한 윤성연(43·D건설 부장) 씨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요즘처럼 경영학이 인기가 높지 않았다”면서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 난다”고 말했다.경영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극심한 취업난에서 찾을 수 있다. 2009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경영학과를 지원한 황승훈(19) 군은 “취업이 하도 어렵다고 하니까 경영학을 전공하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부모님도 미래를 생각해 경영학과에 지원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입시생들에게 경영학이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선택’이 된 셈이다.다른 한편에선 경영학을 전공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경영대에 바로 입학하기에는 성적이 모자란 경우 비인기학과로 입학한 후 경영대로 전과하는 방법을 찾는다. ‘일단 대학부터 간 다음 해결하자’는 식이다. ‘대학에 상관없이 경영학만 전공하면 된다’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황승훈 군은 “대학을 낮춰 가더라도 무조건 경영대에 입학하겠다는 친구가 꽤 많다”고 밝혔다.기존 대학생 사이에서도 이런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경영학은 당연히 밟아야 하는 절차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복수 전공, 전과, 편입 등의 통로를 거쳐 경영학과에 도달하는 것이다.경희대의 2008학년도 복수 전공자 현황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학과가 10명 이하의 복수 전공자를 선발한 데 비해 경영학과는 1학기에 81명, 2학기에 44명을 선발했다. 한 해 동안 120명이 넘는 복수 전공자를 선발한 것이다. 2007년에 총 27명을 선발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고려대의 사정도 비슷하다. 2008년 1학기에 경영학과, 경제학과 복수 전공자는 각각 15명, 17명이었지만, 다른 학과는 1~7명 정도에 불과했다. 복수 전공자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서강대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강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이미영(23) 씨는 “국문학과 재학생 상당수가 취업을 위해 경영학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학생들 사이에 경쟁도 치열하다. 인하대의 올 1학기 전과 모집 결과 총 205명이 지원한 가운데 경영학과, 경제학과에 각각 43명, 36명이 지원했다. 전체 지원자 중 40%가 경영대에 지원한 것이다. 반면 순수 학문인 철학과, 사학과로의 전입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편입 시험에서도 경영학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각 대학은 경영대 편입생을 10명 정도 뽑아 2~3명 정도를 뽑는 다른 과에 비해 3~5배 많은 정원을 두고 있다. 그래도 경쟁률은 평균 70 대 1로 매우 높다. 고려대 경영학과의 경우 8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성균관대는 66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일반적으로 편입은 지방대나 전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인기학과인 경영학과로 진로를 바꾸기 위해 편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편입학원 관계자는 “경영학과에 편입하기 위해 2~3년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다”면서 “경영학과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 취업 문제 때문에 학생들이 더 많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이런 경영대 편중 현상은 전국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불황 속 취업난과 함께 학생들의 실용 학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게 원인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경영학과 출신이 타 학과 학생들에 비해 취업이 잘될 것이다’는 인식은 사실일까.대학의 공시 정보를 담고 있는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는 2008년 각 대학의 학과별 취업률을 분석 발표했다. 문과대학 내의 학과를 크게 9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취업률을 계산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경영학과가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한 것이다. 경영학(87.3%), 경제학(76.32%)이 높은 취업률을 보였으며 철학과 사학은 40~50%를 나타냈다. 그 밖에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국문학 영문학의 취업률은 60~70%로 나타나고 있다. 경영학과가 ‘취업의 돌파구’라는 사회적 인식이 어느정도 증명된 셈이다.이에 따라 각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경영대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경영대 서열이 학교 서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경영대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이다.서울대 경영대를 겨냥한 광고를 냈던 고려대는 국제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체 경영대학 강의 중에 55% 이상이 영어 수업으로 이뤄지고 있고 2015년까지는 75%까지 영어 수업 비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2015년 세계 50대 경영대학 진입’이 목표다.연세대는 ‘연세 경영, 넘버1’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맞대응에 나섰다. 우선 철저한 교수 리크루팅을 통해 현장 경험이 많은 교수를 영입했다. 또한 전임교수의 수업을 늘리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전공과목 계절 학기를 많이 개설해 학생들에게 전공 수업의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 연세대 경영대 김진우 부학장은 “경영학과 법학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비즈로 트랙(Business-Law Track)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기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창조적, 국제적, 윤리적 리더십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경희대는 경영대의 국제화 및 대외 인지도 수준 향상을 모토로 내걸었다. 구체적으로 경영대학 인증 기관 중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계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SB)에 가입을 준비 중이다. AACSB 정식 인수 수료를 통해 외국의 인증 경영대와 공동 연구, 교수 초청, 복수 학위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희대 경영대학 김경만 행정실장은 “국제 세미나 개최, 학술 세미나 강화, 교수 자원의 확보, 교수 논문, 해외 인턴십 학생 수의 증가 등의 전략적 경영 방침으로 경영대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인프라 구축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서강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원을 받은 ‘서강 금호아시아나 경영관’의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한양대는 지상 8층 지하 2층 규모의 경영대학관을 지었고 경희대도 약 2만3000㎡(7000평) 규모의 경영대학관인 ‘오비스홀’을 지난해 완공했다.또 하나 눈에 띄는 흐름은 경영학과 타 학문과의 융합 시도다. 글로벌 자본시장 통합 시대에 걸맞은 전문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한양대는 국제 금융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파이낸스 경영학과를 만들었고 건국대는 경영학에 공학을 접목한 기술 경영학과를, 중앙대는 경영학과 경제학, 통계학, 수학을 융합한 금융공학과를 신설했다.“취업을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경영학을 전공하겠다고 나선다면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만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학생이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경영학을 겸비한다면 어떨까요. 훨씬 유능한 인재로 새롭게 태어날 겁니다.”고려대 경영대 부학장을 맡고 있는 김희천 교수는 “경영에 대한 수요 증가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경영학과 기타 학문의 접목으로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만들어지면 학생과 기업, 사회가 서로 윈-윈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김 부학장은 “기업의 마케팅 분야에서도 그런 인재를 더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이면서 ‘바람직한 쏠림’이라는 표현을 제시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바람직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고려대 경영대에선 수많은 복수 전공자와 경영학 전공자가 함께 모여 수업을 합니다. 수업 중 팀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그야말로 전혀 다른 분야의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가며 문제를 해결하게 되지요. 이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각자 속해 있는 학문의 특성을 보입니다. 이때 학생들은 다양성을 체득할 수 있어요.”김 교수는 “시대는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닌 인재를 필요로 한다”면서 “바람직한 쏠림 현상으로 유능한 인재를 배출해 낼 수 있다면 경영학 복수 전공을 장려해 문호를 넓히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경영학이 실용 학문으로 높은 인기를 누릴 것이라는 예상은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김홍유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경영대 편중 현상이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실용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경영대 인기가 치솟으면서 김 교수는 요즘 복수 전공자 제한 등의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을 어떻게 슬기롭게 풀 것인가가 과제다.“학교에서 경영학 복수 전공자 수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수업의 질을 위해 복수 전공자 수를 제한하면 경영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을 통제하는 결과를 낳게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복수 전공자를 선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아요.”경영학과 편중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융합과 통섭’을 강조했다. 경영학과가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경영학과를 제외한 비인기 학과는 학생 수 미달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이러한 현상을 문제점으로 보기보다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합적 지식 습득과정인 통섭을 통해 경영학과와 인문학적 요소 혹은 자연과학적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지식을 개발, 습득하는 것이죠. 바로 순수 학문과 실용 학문의 결합입니다.”김 교수가 말하는 ‘융합과 통섭’이 잘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커리큘럼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커리큘럼 개발에 대학이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대학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취재=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윤영애·이용상·이종환 인턴기자(경희대 경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