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②

최인호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어머니야말로 최고의 경영자다.’며칠 전 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무릎이 절로 쳐졌다. 그렇다. 어머니야말로 살림살이가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부도’를 내지 않고 한 달을 거뜬히 꾸려내는 최고의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콩나물 값 50원을 절약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입씨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입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내며 아들딸을 위해 돈을 아끼고 또 아낀다. 그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학원비를 내고 공과금을 낸다. 주택 대출이자를 내고 곗돈을 내고 보험금을 내고 저축을 한다. 어떻게 해서든 월급의 한도 내에서 한 달을 버텨낸다. 어머니는 결코 ‘부도’라는 말을 모른다. 불가피하게 돈을 빌릴 경우가 생기면 그동안 축적한 인간관계를 활용해 용케도 잘 빌린다. 신용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래야 다시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살림살이의 최고 비결은 다름 아닌 억척스러움과 함께 검약과 헌신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다.작가 최인호가 쓴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여백 펴냄)’를 보면 어머니야말로 최고의 경영자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최인호의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남편과 결혼해 9명의 자식을 낳았고 이 가운데 3남 3녀가 살아남았다. 그런데 30년 후 덜컥 변호사인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신산한 삶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지금의 금융 위기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마흔아홉에 홀어미가 된 어머니는 미처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 어머니가 선택한 게 하숙이었다. 흔히 하숙은 억척스러운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최인호의 어머니는 하숙을 치면서 3남 3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다. 남편과 함께 산 행복한 30년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그로부터 다시 꼬박 30년 동안 하숙을 치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최인호는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를 탄식처럼 회상한다. “남편 없는 과부가 되어 자식들을 다 대학 보내고 소위 출세라는 것도 시켰는데, 막상 늘그막에는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에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심봉사가 될 것을 생각이나 했을까.”홀어미로 3남 3녀를 키우자면 먼저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최인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시장을 보러 가는 길에 꽃이 보이면 발길을 멈추고 꽃구경을 했다. 꽃 같은 어머니는 시장에 도착하면 눈빛이 갑자기 달라졌다. 콩나물 한 줌에 장사꾼과 침이 튀도록 다투고 생선 값 깎느라고 목이 쉬도록 싸웠다. 급기야 “아주머니한테 생선 안 팔아도 좋으니 딴 데 가서 사시유”라는 핀잔까지 들을 정도였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최인호는 부끄러워 “제발 엄마, 물건 값 깎지 말고 장사꾼들하구 싸우지 좀 마세요”라고 한마디하기도 했다.= 참 그땐 즐거웠지요. 어머니, 어머니를 창피하고 부끄럽게 생각하였던 지난날을 사과드립니다.일흔을 맞은 어머니와 호텔에서 생신 파티를 할 때도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이 다시 한 번 발동된다. 최인호는 당시 어머니로 인해 난처했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갑자기 내 옆에 앉은 어머니가 주섬주섬 핸드백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무언가 열심히 보니 비닐 봉지였다. 뭐냐고 묻자 어머니는 소녀처럼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으셨다. ‘남은 게 아까워서 그런다. 여기다 남은 것 싸다가 집의 개라도 주려고 그런다.’ 어머니는 탁자 위에 남은 음식들을 미리 준비했던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넣기 시작하셨다.” 남은 음식을 가져가기 위해 비닐봉지를 미리 준비한 어머니였다. 결국 최인호는 한마디하고 말았다. “거참 왜 이러세요. 왜 그렇게 주책 부리시는 거예요?”= 어머니, 어머니의 저런 주책이 우릴 키워 오셨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우리에게 교훈처럼 말씀하셨다. “돈 주고 산 것은 남겨서는 안 되는 법이야.”남편을 사별한 여인이 억척스럽지 않으면, 주책바가지가 되지 않으면 자식들은 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식들을 살리고 그 자식들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출세를 시키려면 어머니가 먼저 억척스럽고 뻔뻔해져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자식들이 따뜻한 겨울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최인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비로소 어머니의 손을 보고 놀란다. 150cm의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손은 여자의 손이 아니라 거인의 손이었다. 두툼한 빵과 같은 그 손이 바로 평생을 자식을 위해 바친 노동자의 손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 손톱에 봉숭아 물조차 들이지 않았던 순교의 손이었던 것이다.최인호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초등학교 3학년생’이 되어 여탕에서 목욕을 해야 했다. 4학년 때부터는 목욕비를 반값이 아닌 온값을 모두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목욕탕에 가기 전에 ‘아홉 살, 3학년’임을 거듭 강조했다.= 어머니, 나이가 들수록 자꾸 옛일이 생각나요. 어머니와 함께 갔었던 어린 날의 목욕탕 장면이 자꾸 머리에 떠오릅니다.최인호는 큰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구식 어머니’가 하숙을 치며 3남 3녀를 키우며 남부럽지 않은 사회인으로 키워낸 비결을 궁금해 한다. “아들딸 셋을 키우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는데 도대체 어머니는 어떤 가정교육으로 우리들 여섯을, 남편도 없이 혼자의 몸으로 별로 비뚤어진 아이들 없이 무사히 다 키우셨는지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최인호는 그 자신도 아들이 공부를 못해 호통을 친 적이 있다. 아들 녀석이 형편없이 시험을 못 보고 등수가 훨씬 떨어진 성적표를 보여주자 화가 나서 아들 녀석을 심하게 꾸짖었다. “이 자식아, 이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못 간다구. 이 자식아, 너 이다음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도 못 가고 저 멀리 지방대학으로 유학을 갈 셈이냐. 정신 차려, 이 친구야.”그런데 최인호의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공부해라’라는 잔소리 한 번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최인호는 하숙을 치며 3남 3녀를 대학에 보낸 어머니의 자녀 교육 비결을 맹목적일 정도의 ‘믿음’이라고 결론 짓는다.=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형도, 동생도, 누이도 마찬가지였다.어머니는 단 한 번도 성적표를 보자고 한 적이 없었다. 그건 형제들 모두가 공부를 썩 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형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기하학인가 하는 수학 과목에 20점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교무실에 불려 다녀와서도 형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쉬엄쉬엄 하거라. 너무 애쓰지 마라.”= 나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어머니의 비범한 교육철학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우리들 자식은 하나의 신앙이셨다. 어머니는 우리를 그냥 맹목적으로 믿으셨다.그러나 최인호는 어머니의 믿음이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고 말한다. 중3 때 어머니가 학교에서 담임선생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담임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너는 말이야,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면서 좋은 말로 이끌어 줘야 말을 듣지, 꾸짖고 때리면 말을 더 안 듣는다고 하시던데 말이야.”어머니는 평소 아무렇게나 대하는 듯해도 제각각인 자녀들의 특성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마음으로 늘 세심하게 챙기고 보살피는 ‘모성형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을 대하는 게 이와 같다면 그 기업은 결코 부도가 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쪼개고 또 쪼개 쓰면서 결코 부도를 내지 않았던 어머니의 놀라운 살림살이의 노하우야말로 오늘날 최고경영자들이 꼭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나는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 나가 자식들 먹는 밥에 행여 돌이 섞일세라 수백 번 돌을 골라내시던 새벽마다의 거룩한 일상을 늘 기억합니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