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안철식 지식경제부 2차관이 돌연 숨을 거둬 경제 부처가 몰려 있는 과천 관가를 충격과 허탈 속으로 몰아넣었다. 고(故) 안철식 차관은 9일 전 승진한 뒤 취임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업무에 매달리다 변을 당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경찰 측도 사인을 연이은 업무에 따른 과로사로 추정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경제 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나랏일에 몸 바쳐 차관까지 승진하면 뭐하느냐. 저렇게 비명에 가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이라며 허무한 심정을 그대로 나타냈다.작년에도 과장 2명이 과로로 인해 지병이 악화돼 숨진 기억이 남아 있는 지경부는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지난주 이윤호 장관을 장례위원장으로 세우고 안 차관의 장례를 ‘지식경제부장(葬)’으로 치르고 나서도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지경부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뒤 모든 정책이 ‘속도전’식으로 추진된 데다 경제 위기까지 터져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야근에 휴일 근무를 밥 먹듯 해야 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실제 지난 1월 21일에는 전 국토해양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 양모 씨가 휴일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뒤 쓰러졌다가 45일 만에 사망했다. 전 노동부 정책기획관 박모 씨도 국정감사 예산심사 등으로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다 지난해 말 숨진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무원 301명이 과로로 숨졌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공무상 과로사로 판정해 유족 보상금을 지급한 인원이 이 정도니까 사망 원인이 분명하지 않아 딱히 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특히 안 차관은 대다수 관료들의 ‘꿈’이라는 정무직 자리에 오른 지 9일 만에 과로사로 사망해 아쉬움을 더했다. 중앙 부처의 장관과 차관은 공무원 중에서 ‘정무직’으로 분류된다.일단 정무직에 오르면 일반직 공무원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명예와 권한을 한손에 쥐게 된다. 군대로 말하자면 ‘별(장성급)’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조선시대로 치면 정승 판서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장차관이 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면 족보에 커다랗게 이름을 올려주는 게 보통이다.정무직이라고 이것저것 누리기만 하면서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위에서 내려주는 업무만 잘 집행하면 되는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직접 져야 한다. 관료들에 따르면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면서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장관 비서관을 지낸 한 공무원은 “성격 좋게 허허 웃던 전형적인 ‘호인(好人)’이 장관된 지 반년 만에 히스테리컬한 성격으로 완전히 돌변하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옛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차관급)을 지낸 유지창 전 은행연합회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은 성직(聖職)이 아닌 직업인데도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전지전능과 소명의식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업무상 받는 스트레스 이 외에도 고위 공직자라는 신분 때문에 사적으로 조심해야 할 것도 자연스레 많아진다. 자녀의 혼사에 하객이 많았다가는 당장 뒷말이 나오기 때문에 비공개로 치르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경우에도 행여 나중에 빌미가 될까 계산을 자처하는 경우도 많다. 빠듯한 공무원 월급에 빤한 업무추진비인데 이렇게 지갑을 열어 놓고 살다 보니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일도 다반사다.이처럼 정무직이 되면 공사(公私) 간에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다 보니 그만큼 과로사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경제 부처 현직 차관은 “자기가 맡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공직자를 사회적으로 예우하고 존경하는 풍토만 있다면 설령 격무에 쓰러져도 보람이 있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서…”라고 말끝을 흐렸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