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마에 겐이치
새해가 밝았지만 세계경제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누구도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미국 자동차 회사 ‘빅3’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추가적인 글로벌 금융회사의 부실 가능성은 없는지, 세계 동시 불황의 골은 도대체 얼마나 깊을지, 세계경제 곳곳이 지뢰밭과 같은 분위기다.불확실성투성이인 새해 세계경제는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일본의 대표적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66)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 학장을 만나 그 길을 물어봤다. 오마에 학장은 “새해 세계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며 “사상 초유의 세계 동시 불황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말했다.그는 “이런 불확실한 불황기엔 기업들은 사람에 투자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며 “호황에 대비해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섣부른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보다는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유능한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금년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대답할 수 없다. 이번 경제 위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2008년 9월 이후 미국의 다우평균지수의 일일 변동률을 보면 마치 지진계 그래프와 같다. 지금 세계경제엔 규모 8.0의 강진이 온 것과 마찬가지다.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세 가지를 유의해야 한다. 첫째, 미국의 자동차 회사 ‘빅3’가 어떻게 될지다. 만약 빅3가 파산하면 미국에서만 5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하는 재앙이 온다. 오바마 새 정권이 빅3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다. 둘째, 미국의 씨티그룹이다. 씨티그룹은 겉으로 나타난 대차대조표만 보고 부실 자산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씨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부외 자산이 1조1440억 달러에 달한다. 주택 론 증권화 상품(5780억 달러), 소비자 론 증권화 상품(1220억 달러), 기타 증권화 상품(4330억 달러) 등 부실 가능성이 큰 자산들이다. 이것들이 진짜 부실화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1990년대 일본의 금융 위기 때 은행들이 파산한 것도 결국 장부외 자산 때문이었다. 씨티의 자산 덩치는 빅3보다 크기 때문에 충격이 더 강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신용카드 문제다. 신용 경색이 이어져 금융회사들의 신용카드 론 등이 부실해지면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사태가 될 수도 있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양적 완화 정책까지 동원할 태세를 보이면서 달러 가치 폭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사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게 세계경제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금은 전 세계 헤지 펀드들이 고객들의 환매에 응하느라 그나마 달러 수요가 있어 달러 가치가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수요도 수개월 안에 끝난다. 게다가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약속한 구제금융 액수만 해도 1조 달러를 훨씬 넘어선다. 미국 정부는 결국 적자 국채를 발행해 달러를 조달해야 할 텐데, 불가피하게 달러 가치 하락을 부를 수밖에 없다.”“그게 문제다. 달러를 대체해 기축통화 역할을 할 만한 통화가 현재로선 마땅히 없다. 20세기 초엔 세계 패권과 함께 기축통화가 영국의 파운드화에서 달러로 순조롭게 넘어왔다. ‘준비된 미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준비된 기축통화’가 없다. 유로는 아직 단일 주권국가의 통화가 아닌 데다 유럽 경제도 깊은 불황에 빠져 있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일본의 엔화나 중국의 위안화가 대체할 만한 준비가 돼 있는 것도 아니다. 기축통화 역할을 대신할 통화가 없는 상황에서 달러가 신뢰를 상실하면 세계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실제로 신용 경색 등으로 신흥국 등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지난 1년간 대부분 국가의 통화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거의 유일하게 일본 엔화 가치만 20% 가까이 올랐다.”“세계가 일본 경제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일본 국민들의 높은 저축률이다. 일본의 개인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총 1400조 엔에 달하는데, 상당액이 안전한 은행에 있다. 예금이자가 없어도 은행에만 돈을 맡기는 게 일본 국민이다. 둘째, 일본은 1990년대 워낙 심각한 거품 붕괴를 맛봤기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부동산 등에 버블이 생기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는 바람에 버블이 없었다. 셋째, 대외 채무가 거의 없다. 미국이나 한국은 돈이 필요하면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리지만 일본은 해외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국내에서 조달했다. 이런 점들이 엔화의 안정성에 기여한 것이다.”“한국의 경우 외화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면 간단한 조치 하나로 방지할 수 있다. 일본인에게 원화 정기예금 가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한국이 외화가 아쉽다면 저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돈을 끌어가면 된다. 지금처럼 엔고일 때는 더욱 기회다. 만약 지금처럼 엔화가 비싸고 원화가 쌀 때 한국 정부가 일본인에게 원화 정기예금을 허용하면 일본인들의 개인 금융자산 1400조 엔 중 10조 엔(약 150조 원) 정도는 쉽게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입장에선 일본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받으면서 앞으로 원화 가치가 회복될 때 큰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의 정기예금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 것이다.”“현재로선 가능성이 없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일본이 더 개방돼야 한다. 또 기축통화 국가는 국제적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일본의 정치인과 관료들의 마인드로는 불가능하다. 1980년대만 해도 다른 나라의 외화보유액 중 10% 정도가 엔화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비중이 2%로 줄었다. 일본의 위상이 떨어진 것이다.”“세계경제를 정상화하려면 우선 자금 부족으로 도산하는 금융회사를 막기 위해 각국이 1000조 엔(약 10조 달러)의 돈을 모아 ‘글로벌 유동성 공급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각국의 은행들이 신용 경색으로 자금난에 몰리면 이 기구에서 자금을 지원하고 은행 스스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그 같은 작업을 나라별로 하지 말고 세계적으로 단일 창구를 만들어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국제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도 시스템적으로 해야 한다. 제각각 다른 기준으로 문제를 치유하려고 해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가 1000조 엔 정도의 자금만 조성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안정될 것이다.”“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고객이 만족할 만한 좋은 제품을 만들어 고객의 가치를 창출하는 게 기업의 기본 임무다. 또 이런 불황 때는 차입 경영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 현금 중시 경영을 하란 얘기다. 불황 때는 유동성 부족으로 파산하는 회사가 적자로 파산하는 회사보다 더 많다.”“불황기엔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최고다. 섣부른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도 위험할 수 있다. 이런 때는 유능한 인재를 모아 미래를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일본을 대표하는 경영 컨설턴트이자 경제 평론가다. 일본 와세다대 공학부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를 받은 공학도였다. 1972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사에 입사하면서부터 경영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렸다. 맥킨지에선 일본지사장과 아시아태평양지역회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말부터 국경 없는(Borderless) 경영과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주장했고 세계 유수 기업과 중국 지방정부 등을 컨설팅하면서 중국의 부상과 인터넷 비즈니스 출현 등을 예측했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현대의 사상적 리더로 미국의 피터 드러커 박사, 톰 피터스 박사와 함께 아시아에선 오마에 겐이치 박사를 들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1994년 현대 경영의 구루(Guru·정신적 지도자 또는 스승) 5명 중 한 명으로 그를 뽑기도 했다.1994년 20년 이상 몸담았던 맥킨지를 떠나 인재 양성과 교육 사업에 힘쓰고 있다.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일신숙(一新塾)’이란 교육기관을 만들기도 했고 1996년에는 기업가 양성을 위한 학교 ‘어태커즈(Attacker’s)스쿨’을 개설했다. 최근엔 인터넷을 통한 원격 강의로 경영학석사(MBA)를 주는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을 개설해 학장을 맡고 있다. 물론 경영 컨설턴트로서 각국 정부와 주요 기업의 컨설팅을 여전히 왕성히 하고 있다.약력: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1943년생). 와세다대 이공학부 졸업. 도쿄공업대학 원자핵공학 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원자력공학 박사. 히타치제작소 원자력개발부 입사. 맥킨지 일본지사장·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 역임. 미국 UCLA대학원 공공정책학부 교수.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2005년~현재).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