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원칙
마키아 벨리 ‘군주론’자본가, 군인, 노조, 시민…. 어느 시대에나 권력을 상징하는 집단들이 있다. 자본의 힘이 맹렬한 지금은 재벌 기업가들의 힘이 엄청나다. 이명박 정권이 재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이들의 지원 여부에 따라 권력의 명암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촛불시위’ 때에는 시민들을 무시하다 혼쭐이 나기도 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정치적이고 부패한 군인들에 의지했다. 절대 권력도 지지 세력을 무시하거나 ‘줄’을 잘못 설 경우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새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줄 서기를 잘해야 한다. 자칫 잘못 줄 서기를 하다 인간관계가 꼬여 치명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혼란한 시대에는 과거 혼란한 시대에서 생존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다. 잠시 로마의 시대로 돌아가 보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는 로마의 권력 기반을 이루는 3대 집단으로 귀족, 시민, 군인을 꼽았다. 로마 황제는 늘 귀족(원로원)과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때 황제는 귀족과 시민, 군인 모두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정치를 펼 수 없었다. 귀족을 만족시키면 시민이나 군인들이 반기를 들었다. 군인이나 시민에 중점을 두는 정치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군인과 시민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란 매우 힘들었다. 시민은 평화로운 삶을 좋아해 온건한 군주를 원하는 데 반해, 군인은 호전적이고 오만하고 잔인하며 탐욕스러운 황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탐욕을 충족시키려면 당연히 희생이 뒤따랐는데 대부분 시민들로부터 나왔다. 황제가 시민들을 거칠게 다룰수록 군인들의 탐욕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로마 황제들은 대부분 군사력을 지닌 군인 편을 들었다. 군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면서 시민들의 목숨까지 내팽개치면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면 황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제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는 미움을 덜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군인의 비위를 맞춘 황제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황제는 비운을 맞았다. 로마 황제들조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줄’을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군주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을 성취할 수 없으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군인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선행으로 존경받던 황제조차 비운을 맞기도 했다. 192년 코모두스가 죽은 후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페르티낙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절제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잔혹함을 피했으며 인도적이고 인자스러웠다. 그러나 군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그는 군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동시에 경멸을 받았기 때문에 193년 1월 제위에 오른 지 두 달만인 3월에 피살됐다. 코모두스 치하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던 군인들은 페르티낙스가 그들에게 부과한 규율에 따라 절제 있게 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반면 페르티낙스와 대조적으로 알렉산데르(재위 222∼235)는 청렴했지만 유약한 황제였다. 재위 14년 동안 그가 재판 없이 처형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섭정으로 통치를 하면서 원로원과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문치주의에 힘썼다. 달리 말하자면 귀족을 주축으로 하면서 시민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이는 군인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군대는 모반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피살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우(교활)와 사자(잔인)의 기질로 황제가 된 세베루스는 시민과 군인들로부터 존경받기까지 했다. 군주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모방해야 한다.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사자의 힘에만 의지하는 자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사례는 리더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역사적인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니발은 잔인하게 부하를 통솔해 배반자가 없었지만 스키피오는 자비롭게 통솔해 배반하는 부하들이 많았다는 것. 알프스 산맥을 넘어와 로마로 진격한 한니발은 용병을 거느리고 싸웠지만 내부 분란이 없었고 로마를 떨게 할 수 있었다. 장군에게는 현명한 잔인함이 자비보다 낫다는 것이다.반면 자비로웠던 스키피오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매우 훌륭한 인물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군대는 스페인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 유일한 이유는 그가 너무나 관대해 병사들에게 많은 자유를 허용했기 때문이다.마카아벨리에 따르면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협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 은혜를 베푸는 동안에는 온갖 충성을 바친다. 생명을 내줄 것처럼 말을 하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정작 궁지에 몰리게 되면 돌변해 모두 등을 돌린다. 이는 인간이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결코 강력한 세력과 자발적인 동맹을 맺지 말라. 만약 그와 함께 승리를 거두면 당신은 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군주론’에는 리더가 주위의 아첨을 피하고 경청하는 방법에 대한 덕목이 나온다.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사려 깊은 사람을 선발해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것도 자신이 요청할 때만 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허용해서는 안 된다.또 조언자가 솔직하게 말할수록 더욱 더 그들의 말이 받아들여진다고 믿도록 처신해야 한다. 누군가가 무슨 이유에서건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노여움을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관해 동요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식으로 처신하지 않으면 군주(리더)는 아첨꾼들 사이에서 몰락하거나 아니면 그가 받는 상반된 조언 때문에 결정을 자주 바꾸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된다. 현명한 군주는 항상 조언을 들어야 하지만, 남이 원할 때가 아니라 그가 원할 때 들어야 한다. 오히려 요구받지 않았는데 아무나 조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마키아벨리는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군주는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덕성보다 악덕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마키아벨리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착한’ 리더는 성공할 수 없고 ‘착하게 보이는’ 리더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판단할 때 대부분 외양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군주는 이러한 덕성을 실제 구비할 필요는 없지만,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군주가 그러한 성품(덕)을 갖추고 늘 가꾸는 것은 해로운 반면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용하다고까지 감히 장담하겠다. 군주는 호의는 자신이 베풀고 처벌은 신하가 내리도록 한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