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뉴스 - 정년제 해법 찾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66세 때였다. 그전부터 5년간 예술혼을 발휘한 결과가 오늘날 세계인의 발길을 사로잡은 이 대작이다. 그로부터 6년 뒤 그는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성베드로 대성당 공사 감독에 나선다.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가 ‘판단력 비판’을 내놓은 것도 66세였다. 이 대저작은 칸트의 3대 비판서 중 마무리 편으로, 이로써 칸트는 근대 철학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이들의 활동 시기가 각각 16세기 중반, 18세기 후반이었던 점까지 감안하면 노익장도 이런 노익장이 없다. 당시 사람들의 건강과 영양 상태,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더 놀랄 일이다.나이와 관계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들은 현대에도 많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경제 이론가로 떠오른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팔순에도 불구하고 최측근으로 활동 중이다. 오바마의 기자회견 때 바로 뒤에서 꼿꼿이 서 있던 그는 최근 미국의 자동차 산업 ‘빅3’에 대한 구제금융을 집행할 ‘자동차 차르’로 내정됐다는 소식으로 세계인들을 거듭 놀라게 했다.최근에는 에반더 홀리필드가 46세의 나이에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에 도전해 세인의 주목을 끈 적이 있다. 비록 챔피언에는 실패했지만 권투에서 이 나이에 세계 타이틀전에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 주변에서도 나이와 관계없이 자기 길을 열심히 가는 보통 이상의 보통 사람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는 옛말이 됐고 ‘삼팔선(38세가 정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정말로 정년제도는 유지해야만 하는가. 그것도 모자라 점점 정년을 당겨야만 하는가. 혹은 그나마 정년제 덕에 55세라도 보장받는가. 대안은 없나. 현대의 의료 기술은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인류 역사 수만 년 만에 최근 몇십 년 동안 인류는 기아에서 해방되면서 영양 상태도 좋아져 과잉 영양까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여기에다 이런저런 몸에 좋다는 것들까지 섭취하면서 별탈만 없다면 건강 또한 좋다. 오죽하면 ‘구구팔팔(99세까지 팔팔하게 산다)’이라는 구호까지 나왔을까. 환갑 잔치가 자취를 감출 정도로 60대 청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고 수명은 늘어나는데 정년이라는 제도로 인해 대부분 일을 놓게 된다.최근 세계적인 경제난이 가속화되면서 정년제도는 또 한 번 흔들릴 상황에 처했다. 고용주로서는 비용을 줄이고 적은 비용으로 활동적인 인력을 많이 쓰자는 전략에서 정년을 더 앞당기는 쪽으로 갈게 뻔하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성장이 둔화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저성장 경제로 진입하니 인력 구조조정에 다시 나서게 되고 소비와 투자는 살아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개인 차원에서는 직장 대신 직업에 몰두하라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임금 피크제와 일자리 나누기 정책 같은 것이다. 정년을 앞둔 몇 년 전쯤 최고 임금에 달한 뒤 그 뒤로는 임금은 낮추되 일자리를 더 보장하는 것이 임금 피크제다. 일자리 나누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성 조직원의 일자리 보호로 성장세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한편 업종별 국내 대졸 초임 격차가 심하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는 청년 백수 문제뿐만 아니라 과외 열풍 해결을 위한 출발점으로도 인식될 만하다. 이러니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며 미친 듯 과외 공부하고, 백수 백조 소리를 들어도 아무데나 취직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개탄의 해소 차원에서 말이다.정년 문제는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 여건을 감안해 정년을 뒤로 미루는 쪽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히 정년제를 완화한다면 사회적인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정부 혼자서는 못한다. 기업에만 맡길 수도 없다. 노·사·정·사회단체까지 참가하는 대협약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지금 경제 위기가 이 문제를 풀기에는 좋은 때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