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구리시장

사실 선거에 의해 뽑히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영순 구리시장과 자리를 함께했을 때 그에게선 활동적인 정치인의 첫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이보다는 학자나 관료들 특유의 학구적이고 섬세한 분위기가 더 짙게 다가왔다.하지만 열정에 가득 찬 목소리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플랜들을 설명하는 그와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런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구리시를 고구려 문화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박 시장의 의지는 너무도 강렬하게 전해져 왔다.그가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구리시는 1990년대 말까지도 수많은 제약에 의해 이른바 ‘낙후지역’으로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서울 중심가와 가깝고 환경이 좋다는 장점이 ‘재발견’되면서 수도권 내 최고의 주거지역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이 같은 인식 변화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10년여를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있으며 구리시를 이끌어 온 박영순 시장의 노력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최근 ‘ABC 구리운동’ 추진, 한강둔치 생태공원 개발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과 친환경 소각장 건설 등 지역의 장기 성장을 위한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며 구리시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가 전국의 지자체장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2008 대한민국 최고의 목민관상’에서 최고상인 종합대상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영순 구리시장을 만나봤다.2008년 1월 1일 현재 7만1000가구 19만5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면적은 33.30㎢로 경기도의 약 0.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사실 구리시는 각종 중첩된 규제로 인해 발전이 더딘 지역이었습니다. 산업 기반도 전무했어요. 실제로 개발제한구역이 전체 면적의 64.9%, 군사시설보호 구역이 33%, 문화재 보호 구역이 6.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저는 여기서 명품 도시로서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먼저 경기권의 도시 중 서울 중심가와 가장 가깝습니다. 워커힐호텔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구리시죠. 서울 강남, 여의도 모두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어요. 우리의 역사가 담긴 유적도 많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묘인 동구릉이 구리시에 있어요. 특히 아차산 주변에는 고구려가 5세기 후반 백제와 신라와의 전투를 치르기 위해 만들어 둔 보루(堡壘) 10개가 밀집돼 있습니다. 이 보루들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고구려 유적들입니다. 또 한강 상류에 있는 도시답게 자연환경도 뛰어납니다. 즉 위치, 환경, 역사 등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거죠.최근 고구려 관련 문화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박 시장께서도 예전부터 고구려에 많은 관심을 둬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는 고구려역사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한 ‘고구려는 없다’란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사실 국내에는 고구려 관련 사적지들이 별로 없어요. 역사엔 정답이라는 게 없다 보니 큰 합의가 중요한데 지금 상태로는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동북공정이라고 부르는 움직임입니다.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보면 아단성이라는 곳에서 백제의 항복을 받았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아단성이 바로 아차산입니다. 아차산은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개로왕을 참한 곳이기도 하며 우리가 잘 아는 평강과 온달의 영혼이 깃든 곳이기도 해요.그래서 저는 아차산 인근에 궁내성이나 평양성을 본뜬 가상도시(고구려유적테마공원)를 세우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역사 기념관 건립을 시작으로 이곳을 고구려 연구의 메카로 만들어 역사 속 고구려를 되살리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성하자는 것이죠.구리시는 1994년부터 시 예산을 들여 고구려 유적(보루)을 발굴하는 등 고구려 역사 복원 운동을 꾸준히 펼쳐 왔습니다. 또 지난 2002년 토평동 미관광장에 광개토대왕 동상을 세운 바 있고 올 초 이 옆에 광개토대왕릉비 복제비도 세웠습니다. 이 비는 1910년대에 만들어진 원석 정탁본을 근거로 해 중국 지리성 지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를 가장 완벽하게 복원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4월에는 국비 및 도비 22억 원을 들여 아차산 기슭에 ‘고구려 대장간마을(박물관)’도 개장했습니다. 이곳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세트장으로 활용된 바 있으며 최근에는 ‘바람의 나라’ 세트장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별달리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매일 국내외 관광객 500여 명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또 사단법인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와 함께 국민성금 330억 원을 모아 구리시 아차산 기슭의 교문동 일대 3만3000㎡에 ‘고구려역사기념관’을 2011년까지 지을 계획입니다. 장차 고구려역사기념관을 비롯해 고구려 성곽, 장수왕 광장, 역사 체험관 등을 갖춘 고구려유적테마공원을 조성할 예정입니다.특히 동구릉 일원에 조선왕조 역사 교육 특구를 장기적으로 조성할 예정입니다. 또 갈매동 도당굿 전수관 건립, 민속 공예 특산품 장려, 문화학교 운영 등의 여러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이 사업들이 시너지를 내기 시작하면 강 건너의 암사동 선사유적지와 맞물려 구리가 한민족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됩니다.송도 개발을 맡고 있는 존포트만앤어소시에이츠가 미국과 중국에서 시도해 성공시킨 기획 도시 사례를 구리시에 접목한 플랜입니다. 구리시를 중심으로 남양주, 부천 광명, 수원 군포, 하남 광주 등 5개 권역을 디자인 도시로 거점화하고, 특히 구리시에는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세계 디자인센터를 짓자는 것입니다. 33만5000㎡(100만 평) 규모인 토평지구에 한강의 지형을 잘 살린 디자인센터를 완성해 인근 문화 자연 환경과 연계, 가족형 리조트형 박람회장으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경우 동구릉과 아차산 왕숙천 등 구리시의 역사·자연환경이 어우러져 큰 산업 파급효과가 예상됩니다. 구리시는 디자인 도시 구상이 현실화되면 새로운 일자리 14만 개와 17조 원에 달하는 외자 유치, 매년 27조 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감히 제 스스로를 타 지자체장 등에 비해 ‘국제적인 안목’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외교관 생활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입니다. 또 중앙 행정에서 20년을 일했으니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능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관선 시장과 민선 시장 모두를 거치면서 구리시에 대한 애정도 그 누구보다 클 것이라고 자부합니다.조사 결과를 듣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번 선거에서 사실 659표 차로 당선됐습니다. 타 후보의 공천 문제에 잡음이 없었다면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저를 선택했던 지지자들만 따지면 결코 그렇게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없습니다. 저는 이를 저에 대한 ‘기대감’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인 버락 오바마도 사실 별로 이룬 건 없어요. 그렇지만 그라면 ‘무언가’를 해줄 것 같다는 국민들의 기대가 지금을 만들어 낸 것이죠. 민선 2기 당시 열심히 뛰었던 모습과 3기 시절 시장이 약간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지금의 저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인 게 아닌가 합니다. 사실 79%라는 높은 지지율이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니에요.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바쁘게 일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1948년생. 목포고 졸업. 공주대 영어교육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73년 하서중학교 교사. 75년 9회 외무고등고시 합격. 79년 내무부 지방행정국. 86년 청와대 정무수석실. 92년 녹조근정훈장. 94년(관선) 98년(민선2기) 2006년(4기) 경기 구리시장(현).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