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 부문 - 윤용로 기업은행장

올 한 해 중소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은 칭찬을 많이 받았다. 지난 가을 키코(KIKO)에 물린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향해 비명을 지를 때 기업은행은 비난 대신 격려를 들었다. 다른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키코 상품을 팔았지만 기업은행은 오히려 신중을 기하라며 중소기업을 설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키코 피해 기업 102개를 조사한 결과 총 265건의 계약 중 기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4.9%인 13건에 불과했다. 고객인 중소기업과 은행 스스로를 큰 위험에서 지킨 셈이다.이 일은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의 친구’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억만금과 바꿀 수 없는 이미지 상승 효과를 거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올해 실적까지도 칭찬받을 만하다. 지난해 말 124조3000억 원 수준이었던 자산은 9월 말 현재 139조7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또 이자수익자산의 증가 등에 힘입어 이자부문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한 2조3405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누적 순이자마진(NIM)이 2.52%로, 전년 말 대비 0.01%포인트 하락에 그쳐 올해 국내은행 중 가장 효과적인 마진 관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권의 뇌관으로 통하는 건설업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의 비중도 적은 편이다.최고경영자(CEO)는 성과로 말하듯 윤용로 행장의 파워는 올해 기업은행이 거둔 이 같은 성과에서 낱낱이 증명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일궈낸 것이라 더욱 빛이 난다. 이것이 바로 관료에서 CEO로 변신한 지 갓 1년 만에 금융업 부문 ‘올해의 CEO’ 자리에 오른 이유다.윤 행장은 지난해 겨울 갑작스레 타계한 강권석 전 행장의 후임이다. 처음엔 30년 공직에서만 몸담은 경력으로 정글보다 더한 경쟁의 숲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의문의 눈초리가 적지 않았다.하지만 윤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중소기업으로 달려갔다.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국 15개 지역 중소기업을 찾아 1300여 명의 CEO와 대화를 나눴다. 마을 회의를 하듯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중소기업인들의 가감 없는 쓴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로 모임 이름도 ‘타운 미팅’이라고 지었다.이 자리에서 중소기업인들은 대출 조건 완화, 가업 승계 지원, 공장 확장 및 이전에 대한 종합 금융 지원 등을 건의했다. 윤 행장도 이에 화답해 금리 감면, 대출 조건 완화, 가업 승계 기업 지원 등 중소기업 CEO들의 의견 30여 건에 대해 제도 개선을 실시했다. 이처럼 CEO 변신 1년 만에 속도감 있게 기업은행을 변신시켜 온 배경에는 금융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1978년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재무부를 시작으로 재정경제원과 금감위를 거치면서 금융과 경제 정책 전반에 정통한 금융 전문가로 이름을 높였다. 금감위 시절엔 은행 및 증권 분야 구조조정, 신용카드사 경영 정상화 등 굵직한 금융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무리 없이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재경부 은행제도과장에서 일하며 은행 정책과 감독 정책을 두루 섭렵했다.지난 1년에 대해 윤 행장은 “정말 바빴다”고 말한다. 취임 첫날부터 중소기업 현장을 뛰어다녔으니 그럴 만하다. 수시로 영업 현장과 거래 기업을 방문하고 각종 업무 협약과 행사에도 부지런히 참석하고 있다. 금융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알기 쉬운 강의를 펼쳐 청중을 압도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한 조찬회에서 “기업은행은 중소기업들에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짓은 안 한다”라고 한 말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윤 행장의 부지런함은 취임 초기 직원들이 모두 원한 것이었다. 노조가 윤 행장에게 구두를 선물하면서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뛰어달라는 청을 담은 것이다. 이후로 윤 행장은 “취임할 때 노조위원장에게 선물을 받은 은행장은 내가 유일할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또 스스로도 지점장들에게 만보기를 선물, 건강을 돌보면서 고객을 먼저 찾아가라는 당부를 담았다.최근 윤 행장의 관심은 금융 위기에 따른 환율 상승과 경기 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집중돼 있다. 이미 여신운영본부장을 중심으로 금융애로해소대책반을 조직해 흑자 도산 방지책과 수출 기업 지원 방안, 패스트 트랙(Fast-Track,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 등을 가동했다.지난 11월에는 대출 심사 등의 절차가 복잡해 적시에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지역본부장 추천 기업에 대해 ‘사전 여신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을 도입하기도 했다. 고객이 대출을 신청할 때마다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최근에는 흑자 기업의 도산을 막기 위한 자금 지원 방안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동산 가격 하락 때문에 담보 평가 금액이 하락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을 위해 정책 당국에 신용보증서 금액 및 비율 확대를 건의해 놓았다.11월 말 현재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총 대출 규모(원화)의 80.2%에 달한다. 이를 올해 안에 2조 원 추가 순증하고 내년에는 올해 목표인 8조 원 순증에서 50% 증가한 12조 원을 순증 공급하겠다는 계획에서 기업은행의 의지가 묻어난다.윤 행장은 요즘 ‘건전성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존재이므로 과거의 자료인 재무제표에만 의존해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업력이나 경영자의 경영 의지, 노하우 등을 종합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장 신용 등급이 좋지 않거나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그렇다고 위험 관리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금융 건전성을 사전에 파악,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사전 기업 점검제도(Watchlist)를 시행하고 있다.윤 행장의 좌우명은 한명회의 ‘시근종태 인지상정 신종여시(始勤終怠 人之常情 愼終如始: 시작할 때는 근면하고 끝날 무렵에는 태만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끝까지 신중하기를 처음과 같이하라)’다. 은행장으로 처음 임명장을 받을 때의 그 마음 그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다.약력 : 1955년 충남 예산 출생. 74년 중앙고 졸업. 78년 한국외대 영어과 졸업. 87년 미 미네소타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77년 행정고등고시 합격(제21회). 94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파견. 99년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장. 2000년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2002년 금융감독위원회 공보관. 2007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 겸 증권선물위원장. 2007년 12월 중소기업은행장.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