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교육과학기술부를 필두로 정부 부처 1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경제 부처가 몰려 있는 과천 관가도 연말답지 않은 싸늘함이 감돈다. 관료들에 따르면 청와대의 물갈이 기준은 이렇다. 앞에 나서서 궂은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많았던 부처나 공무원은 가급적 살려 주고 크게 한 일이 없기 때문에 문제 일으킨 적도 없는 부처나 고위급은 ‘복지부동’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몇몇 부처는 공무원들의 과거를 따져 이전 정부와 얼마나 가까운 성향인지를 따지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구현하는데 이른바 ‘좌파 성향’ 공무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오히려 솎아내야 할 공직자의 유형은 바로 ‘정책 세일즈’를 게을리 하는 관료다. 자기 업무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저 모든 일이 조용히 문제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이들이다. 새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에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하면서도(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무능력해서인지 무신경한 탓인지 자신이 하고 있는 정책의 정당성을 주지시키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경제 부처를 출입하다 보면 이런 공무원을 가끔 볼 수 있다. 대통령은 연일 ‘언론 프렌들리’를 외치지만 몇몇 국장 과장들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이다. 청와대가 언론에 신경 쓰라고 하는 이유가 단지 비판 기사가 두려워서는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정부의 정책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바뀐 정책 방향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하려면 언론을 제대로 납득시키고 설득하는 게 우선이다.참여정부는 비판 언론을 우회하는 대국민 직접 홍보를 추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대선 패배였다.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본 이 대통령과 참모들은 항상 기자들에게 충분한 정책 설명을 제공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현장 관료들 중 일부는 기자에게 거짓말을 일삼거나 정책 홍보성 보도 자료를 내놓고도 설명 요청 전화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례도 있다.문제는 이런 관료들의 행태가 기자들만 피곤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 모두를 혼란스럽게 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지난주 국토부는 강남 3구에 대한 투기지역지정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이 이를 특종 보도하자 기획재정부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 대한 ‘주택투기지역’ 해제에 관하여 검토한 사실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국토부 방침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그러나 이튿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도 부동산 가격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정책은 국토해양부 의견을 최대한 지지하겠다고 정종환 장관에게 약속했다”고 밝혔다.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 문제를 비롯해 양도세 한시 면제, 분양가 상한제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국토부의 방침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처 수장의 의중이 이런 데도 관련 공무원들은 아무 확인 없이 기자들을 상대로 “검토한 바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는 얘기다.강 장관은 이에 대해 “해명 자료가 나간 것은 실무진이 장관 사이에 있었던 얘기를 전해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내가 제대로 전해주지 않아서 생긴 일인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재정부 안팎에서는 “장관이 간부회의 등을 통해 부동산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는데도 그 정도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실무진의 ‘무신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기왕 청와대가 고위급 인사를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저 물갈이를 위한 물갈이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가 위기 극복을 위해 전투 중이다. ‘돌격 앞으로’ 해야 할 때조차 참호에 엎드려 있으면서 동료 병사의 등 뒤에 총을 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명확히 따져서 책임을 묻는 인사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