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경착륙 불안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 역할을 해 온 중국이 오히려 주변국 성장 동력의 블랙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11월 지표가 이 같은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중국의 11월 수출은 1149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 줄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 반 년 전인 2001년 6월 이후 7년 만의 첫 감소다. 감소 폭은 1999년 4월 이후 최대다. 15%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중국의 수출 감소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중국 진출 외국 기업에도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수출의 60%를 현지 진출 외국 기업이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고성장의 또 다른 동력원인 외자 유치가 11월에 53억 달러에 머물러 전년 동기보다 무려 36.5% 감소한 것은 외국 기업의 이 같은 위기감을 보여준다. 월간 기준으로 1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또 하나는 중국의 수출을 위해 필요한 기계 설비 및 원자재 등의 수입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수출 감소와 함께 중국의 부동산 시장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중국의 수입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실제 중국의 11월 수입은 749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7.9% 급감했다. 중국 수입이 감소한 것은 2005년 2월 이후 처음이지만 감소 폭은 해당 통계가 작성된 1993년 이후 가장 큰 폭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문제는 여기에 있다. 세계 각국의 성장에 기여해 온 중국의 수입 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른 회복을 할 수 있었던 뒤에는 바로 중국으로의 수출 증가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수출입이 급격히 둔화되면서 기댈 언덕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계은행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과거 선진국의 수입 수요를 상쇄할 완충재 역할을 중국 등이 해 왔는데 내년에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고 경고했다. 중국발 경착륙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물론 중국 정부는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한 경제 체제가 대외 변수에 취약하다고 보고 내수 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에 비관할 일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다. 중국 정부는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내년 경제 운용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내수 부양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 지속을 최우선 과제로 확정했다. 더욱이 소비는 수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올해 중국의 소비증가율은 2001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 증가율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가전제품 등의 시장이 포화된 대도시보다 미개척지인 농촌 소비 시장을 키우기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촌에서 가전제품을 살 때 가격이 13%를 보조금으로 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을 3개 성과 시에서 12월 1일부터 14개 지역으로 확대했으며 내년 2월부터는 4년간 중국 전역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4년간 새롭게 창출될 농촌 가전 시장만도 최소 9200억 위안(184조 원)어치에 달하는 4억80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중국 정부는 추산했다.하지만 디플레 우려가 터져 나오면서 소비 진작이 제대로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국 11월 생산자물가(PPI) 상승률은 2%로 전달의 6.6%에서 급격히 둔화됐다. 소비자물가(CPI) 상승률도 10월의 4%에서 2.4%로 둔화됐다. 지난 2월만 해도 8.7%로 치솟으며 12년래 최고 인플레를 기록했었지만 11월에는 전문가들이 예측한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2.2%는 22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BNP파리바의 이삭 멍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디플레 리스크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아예 중국의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마이너스 0.8%로 전망했다.중국의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책도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11월 초 4조 위안(8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통해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을 확대하기로 했었지만 내년 중반 이후는 돼야 이 부양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다.내년 중국 경제를 어둡게 보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 따른 것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11.9% 성장한 중국 경제가 내년에 7.5%로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1990년(3.8%) 이후 최저 수준이다. 모건스탠리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7.5%로 예상하고 5∼9%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얘기다. 무디스는 내년 중국 경제가 7∼8%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더 길어지고 심각해지면서 중국의 GDP 성장률이 내년과 내후년에 5∼7%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문제는 중국 경제의 위축이 세계 경제에 가져 올 충격이다. 메릴린치는 내년 전 세계 경제성장에서 중국이 기여하는 비중이 6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선진국 경제가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지만 식을 줄 모르는 엔진인 중국이 수출입 부문에서 고성장을 구가하면서 침체로 빠져드는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분석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수출이 한 달 사이에 갑자기 급락세로 돌변한 것은 비관적인 경제 전문가들에게조차도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수출입이 심각하게 위축되면 세계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하지만 중국 정부가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 소나기식으로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출 급감 추세를 완화하기 위해 위안화 절하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위안화 절하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수출 진작을 위한 추가 금리 인하 등 후속 부양책도 예상된다. 소비 진작에 즉효가 있는 개인소득세 면세점 상향 조정도 조정 폭 결정만을 남겨 놓은 상태다.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외화보유액이 든든한 실탄이다. 이 때문에 내년에 중국 경제가 위축되더라도 2010년에는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은행은 2010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8.5%로 전년보다 1%포인트 더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그러나 향후 1년간 중국 경제의 위축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발 경착륙 리스크를 잘 대비하는 국가 전략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는 건만은 분명해 보인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