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노후 - 숲 해설사 이일선 씨

“이 소나무를 잘 들여다보세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인 적송이에요. 나무껍질이 갑옷처럼 생겼죠. 그래서 애국가 가사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고 돼 있는 거예요. 외래 소나무들은 껍질 모양이 밋밋합니다. 저쪽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 플라타너스라고만 알고 있지만 우리말로 ‘버즘나무’라고 불려요. 나무껍질이 얼굴에 일어나는 마른버짐처럼 뚝뚝 떨어진다고 해서 그래요.”‘진달래 선생님’ 이일선 씨가 하는 일은 ‘숲 해설사’다. 숲 해설사란 말 그대로 숲에 있는 나무에 대해 설명해 주는 일을 한다. 하지만 숲 해설사라는 직업이 그리 쉽게 볼 만한 일은 아니다. 설명해야 하는 장소가 ‘전국 어디든’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험한 산속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아파트 단지 내 공원, 고궁의 산책로 등등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모든 장소가 해설의 대상이 된다.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삶의 경험, 이를 학생들에게 잘 알릴 수 있는 능력과 함께 튼튼한 체력 등 삼박자를 모두 갖춰야 좋은 숲 해설사가 될 수 있다.“물론 학생들 중 어른도 있지만 대부분은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이 대상이에요. 진달래 선생님이라고 저를 부르게 된 건 아이들이 좀 더 친숙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진달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랍니다.”올해 예순 넷인 이일선 씨가 은퇴한 건 10년 전인 지난 1998년의 일이다. 은퇴 전 그는 시화공단에 있는 ‘성안금속’이라는 도금회사의 대표이사였다. 하지만 회사가 때마침 몰아친 경제 위기로 인한 송사에 휘말리면서 대표이사 자리를 자의 반 타의 반 물러나게 됐다. 이 씨는 “당시 억울한 마음에 매일 밤잠을 못 이뤘다”라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니 몸도 나빠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그가 마음을 추스른 건 그로부터 1년 후의 일이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종로시니어클럽에서 숲 해설사 교육과정을 들으며 배움에 대한 열정을 통해 다시 일어선 것이다.“성안금속 시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때만 해도 공장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그 무엇보다 좋은 환경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에요.”이 씨는 올해로 7년째인 숲 해설사 생활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질문을 던지는 어린이들이 사랑스럽고 그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는 일이 보람차다고 강조했다. 또 그 스스로도 자연을 통해 날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가도 있다고 했다.“이 가지를 한 번 잘라보세요. 겨울이라 다 말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툼하게 감싸고 있는 마디를 잘라보면 그 속에서 아직도 새파란 어린 눈을 볼 수 있어요. 이 눈이 내년에는 새로운 가지로 자라나는 거예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우리 부모들의 모습과 꼭 같아요.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요.”사실 국내의 1세대 숲 해설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씨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주는 상도 받았고 종로시니어클럽의 숲 생태 지도자 사업단 총무를 맡고 있을 만큼 열심히 뛰고 있다. 또 그는 이 외에도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노원구청에서 여는 어린이경제교실에서 직장 경력을 살려 강사로 참여했고 신문활용교육(NIE) 선생님으로도 활동했다. 그의 집 인근 을지병원에서 치매 노인들을 돌봐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여유롭다’와 ‘돈이 많다’는 다른 말이에요. 열심히 노력해 꽤 큰돈도 벌어보고 많은 돈이 사라지면서 세상에 대한 원망도 해봤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10억, 100억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으면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친구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줄 수 있는 내 주머니 속 10만 원이 훨씬 크고 소중해요. 몸을 누일 자리만 있다면 큰 욕심보다는 작은 것에서 여유로움을 찾는 게 노년을 보람 있게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 씨에게 숲 해설사의 1회 강의로 받는 돈 2만 원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