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노후 - CF 모델 김병국 씨

“배시시~ 김치~”, “팔짱을 끼어볼까요.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는 건 어때요.” 펑펑 터지는 사진기자의 플래시 세례에도 김병국 씨는 활짝 웃으며 이런저런 포즈를 잡았다. 사실 특히나 표정이 부족한 한국인, 그것도 60대의 남성이 카메라 앞에서 여유를 잃지 않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예순 둘의 김병국 씨가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CF 모델’이기 때문이다.요즘 광고계에서는 실버 모델이 인기다. 화면이 잘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을 두드리며 ‘우린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노부부 등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하는 광고가 많아지며 모델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들이 광고계의 선배이자 스타라면 김 씨는 아직 ‘초짜’ 모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데뷔(?) 반 년 만에 공익 광고의 모델로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다. 한국생활안전연합과 경찰청이 주최한 ‘어르신 교통사고 줄이기 STOP 캠페인’이 김 씨가 메인 모델로 나선 광고다.“딸들은 아버지가 광고에 나오니 너무 재미있어 했어요. 주변에서도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아내만은 반응이 없더군요.” 김 씨는 이처럼 아내가 조용했던 것에 대해 “아마도 손을 잡고 있는 여성 모델 때문인 듯하다”며 “다음번에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아내와 같이 찍고 싶다”고 말했다.김 씨가 퇴임한 건 지난 2003년 초다. 지금은 국민은행으로 합병된 주택은행의 공채 1기로 입사해 만 28년 2개월을 은행원으로 살았다. 압구정 구반포 신반포 등 은행 지점장들이 가고 싶어 하는 1순위 지역에서 수년간의 지점장 생활도 했다. 강원도 홍천에 내려가 최하위권이던 영업실적을 전국 3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고 퇴임 직전에는 국민은행의 자회사인 KB신용정보에서 부사장 직책을 맡기도 했다.“직장인들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은행원의 삶만 살아오던 제가 퇴임을 해 보니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이 딱 들어맞더군요.” 사실 직장인들이 자신을 돌아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조직 내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맡은 일에 충실히 살다 보면 ‘미래 설계’는 그저 훗날의 일일 뿐이라고 느낀다. 김 씨도 그랬다.“4년제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갔어요. 이제까지 돌아보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라도 남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2004년의 일이다.그 후로 4년이 지나 올해 초 졸업을 앞두고 있던 그는 신문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이 모집하는 광고 모델 훈련 과정이 그것이다. 매년 두 차례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265명의 어르신들이 이 과정을 마쳤다.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은 아예 S엔터테인먼트라는 실버모델 전문 에이전시도 만들었다. 김 씨도 이 과정을 거치며 이제까지 숨겨져 있던 모델의 끼를 재발견했다. “현직에 있을 때 방송에 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모델의 ‘끼’가 있었나봐요. 그러니 이곳도 찾아왔을 테고….”김 씨는 아직 꿈이 많다. 그는 “꿈을 잃으면 진짜 ‘노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65세 이상을 뜻하는 ‘지공(지하철 공짜) 세대’가 되기 전에 모델 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다름 아닌 30년간 근무했던 ‘국민은행’의 모델로 서보는 일이다. 김 씨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직장에 대한 애정을 발산해 보고 싶다”며 “나이가 있으니 신뢰가 중요한 안정적인 연금 상품 광고 등이 좋겠다”고 했다.물론 더 큰 꿈도 있다. 모델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훗날 ‘사회공헌재단’을 운영하는 것. “제가 큰돈을 벌어 재단을 차리는 게 최선이겠죠. 그게 힘들다면 독지가가 출연한 작은 재단도 좋습니다. 그간의 경험과 대학의 전공을 살려 정말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해 보고 싶어요. 이게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