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건이 불거지면서 파장을 던져주고 있다.정권 출범 때마다 친인척 비리를 엄단하겠다며 관리를 강화했지만 정권 말 또는 차기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비리 사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런데 친인척 중에서도 집중 관리 대상인 대통령의 형제, 아들 등 ‘핵심’들이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등잔 밑이 어두워서일까, 아니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매우 높은 분들’이기 때문일까.역대 정권에서 친인척 관리는 대체로 민정수석실이 맡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가 식구들에게 매우 엄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부 친인척들이 민원을 하기 위해 청와대로 찾아오면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에 더해 사정수석실을 운영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의 형 기환 씨, 동생 경환 씨를 비롯한 여러 친인척이 5공 비리 수사 때 사법처리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처고종사촌 동생 박철언 씨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각종 사건에 연루됐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정·사정수석실을 통폐합, 강도 높은 친인척 관리를 시도했다. 정권 초반엔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됐다. 1993년 11월 초등학교 교사였던 처남 손은배 씨가 교총회장 후보로 추천됐지만 청와대가 난색을 표명해 결국 경선을 포기했다.그러나 차남 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쳤다. 아버지의 사랑도 남달랐다고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0월 대통령의 친인척 및 공직자 비리 관련 수사를 맡았던 사직동팀을 없앴다. 사직동팀은 강압적 수사 논란에 ‘옷 로비 사건’ 은폐 의혹까지 받았다. 민정수석실 산하 민원비서관실에서 친인척 관리를 했으며 4명이 친가 8촌까지, 외가와 처가 4촌까지 200여 명을 관리했다. 하지만 대통령 아들이 연루된 잇단 사건으로 차남 홍업 씨와 삼남 홍걸 씨가 기소됐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친인척 비리 등을 수집하는 특별감찰반을 설치했다. 민정수석실과 경찰 등 사정 라인을 통해 친인척 20촌까지, 총 900여 명을 관리했다는 게 참여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형 건평 씨에 대해 ‘1분1초를 감시하겠다’고 했다. 건평 씨가 살고 있는 마을 주변에 대한 감찰 활동도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현 정부의 청와대는 민정1비서관실이 대통령 8촌 이내, 외가 쪽 6촌 이내, 처가 쪽 6촌 이내 등 모두 1200명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 100여 명이 집중 관리 대상이다. 일선 관리는 경찰의 몫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근신을 당부했는데도 불구하고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의 공천 헌금 수수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친인척을 관리·감독할 직원 수를 늘렸다. 친인척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3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7, 8명으로 늘어났다. 1200명에 이르는 친인척을 이들이 체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첩보 단계에서부터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유관 기관과의 공조도 확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비리를 통제하긴 굉장히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친인척이 골치 아프다. 관리 대상이 수백 명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친척은 수십 명에 불과한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됐다고 하면 모르게 지내던 먼 친척까지 부지불식간에 나타나 친인척 행세를 하기 때문에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이나 정보기관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지만 몇 명의 직원으로는 세밀한 관리가 어렵다.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정작 핵심 통제 대상에 있는 대통령의 형제, 아들 등 핵심 인사들이 큰 ‘사고’를 친다는데 있다. 이유가 있다. 친인척 관리팀이 사고를 치는 ‘높은 분’들을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거물’ 친인척들을 가혹하게 다룰 경우 역으로 화를 입을 수 있다. 권력형 파워게임의 양상을 띠는 경우도 적지 않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노건평, 김현철, 김홍걸, 박철언…. 당대에 누가 이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있을까. 결국은 대통령밖에 없다. 대통령의 의지가 친인척 비리를 막을 마지막 보루라는 것이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g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