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뱀파이어의 제단에 바치는 감정은 대개 이중적이다. 인간의 피로 생을 연장한다는 설정은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목을 깨물어 피를 빨아 마시는 행위는 도발적이고 영원한 젊음은 경외의 대상이다. 공포를 뒤집어 보니 그곳에 이상한 마력이 도사리고 있다. 북미에서 개봉 당일 3500만 달러, 개봉 첫 주 7055만 달러를 벌어들인 메가 히트작 ‘트와일라잇’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앞에서 한숨을 짓듯 뱀파이어를 우러른다.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스테파니 메이어의 베스트셀러 소설 중 1부 만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건 뱀파이어가 아닌 로맨스다. 미국 여고생들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 현상이라고 할 만큼 맹렬한 지지와 반복 관람을 이끌어낸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17세 소녀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분)는 워싱턴 포크스에 있는 아빠의 집으로 이사 온다. 붙임성 없는 성격에도 첫 등교에서 간신히 친구를 사귄다 싶었는데, 수업 시간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 분)라는 소년이 뜻 모를 적의를 드러낸다. 이 세상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남학생과 반사 신경이 부족해 은근히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여학생. 이쯤 되면 로맨스물의 제1원칙, 과도한 반감은 강한 이끌림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떠올리지 않을까.사정거리를 가늠하듯 서로를 의식하던 가운데 벨라는 에드워드가 뱀파이어임을 눈치 채지만 첫사랑의 격정에 휩싸인 그녀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 풋풋한 커플을 위협하는 건 오히려 벨라의 피 향기에 취해 자제심을 잃은 에드워드가 아니라 그녀를 다음 희생자로 점찍은 난폭한 그의 동족이다.원작 소설의 팬들을 의식한 듯 줄거리를 충실히 짚어가고 있긴 해도 ‘트와일라잇’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당도 높은 로맨스 영화는 아니다.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던 에드워드에 대한 찬사는 감탄 어린 시선쯤으로 대체되고, 낯 뜨거운 대사도 그리 많지 않다. 졸업 무도회에 이르는 결말까지 할리퀸 로맨스 소설의 전형에 순응하는 타격점이 분명하고 욕심 없는 영화이니 의외로 만족감이 클 수도 있다는 뜻이다. q감독: 캐서린 하드윅 / 주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 분량: 121분 / 개봉: 12월11일 / 등급: 12세 관람가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호주를 그린 대서사극. 호주 출신의 감독 바즈 루어만(‘로미오와 줄리엣’ ‘물랭루즈’의 감독)과 역시 호주 출신의 두 배우 니콜 키드먼, 휴 잭맨이 한데 모였다. 완고한 영국 귀족 새라 애쉴리는 남편을 찾아 호주 땅에 발을 들여놓지만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남편의 죽음과 거대한 농장, 2000여 마리의 소떼뿐. 남편의 유산을 지키려던 그녀는 소몰이꾼 드로버를 비롯한 기인들과 기나긴 여정에 오른다.‘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신작. 전작들과 달리 사회에 비판의 메시지를 날리는 한결 어두운 색채의 법정극이다. 가네코 텟페이(카세 료 분)는 회사 면접을 보러 가려고 만원 지하철을 탔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려 체포된다. 억울하게 경찰서에 갇힌 그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경찰들은 자백을 강요할 뿐이다. 일본 사법 관례상 형사재판 기소 시 유죄를 선고받을 확률은 99.9%. 그때부터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텟페이의 끈질긴 싸움이 시작된다.벤 스틸러가 7년 만에 선보이는 코미디 영화. 액션 스타 터크 스피드맨(벤 스틸러 분), 코미디 배우 제프 포트노이(잭 블랙 분), 연기파 배우 커크 라자러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가 전쟁 블록버스터에 캐스팅된다.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기 싸움으로 촬영장은 날마다 아수라장이 되고 5일 만에 제작비를 날려버린 감독은 배우들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진짜 정글에 데려다 놓는데, 마약 밀매업자들과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장미·씨네21 기자 rosa@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