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0년 가까이 수많은 CEO들을 만났다. 때로는 인터뷰를 위해, 때로는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동안 최근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하루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요즘, 10년 이상 장수한 CEO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특별한 DNA가 바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과연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장수 CEO들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2008년 2월 현재 국내 전체 상장회사 수는 751곳이다. 각 기업들의 계열사 및 관계사, 장외 상장회사, 중소기업 등까지 모두 합하면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회사와 CEO들이 활동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10년 이상 일한 CEO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되고 그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포스코의 싱크탱크인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가 지난 2006년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CEO 평균 수명은 5.7년으로 유럽 7.5년, 미국 10.5년, 아시아 11.2년에 비해 크게 짧은 편이다. 특히 기업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있다고 생각한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의 CEO 수명(4.8년)이 코스닥(6.8년) 기업보다 더욱 짧았다.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한국 상장 기업 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4.2년으로 8.9년인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6.5년인 유럽보다 짧았다. 하지만 CEO의 재임 기간은 점차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역시 LG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상장 기업들의 CEO 교체 비율은 2000년 8.6%에서 2003년에는 15.8%로 뛰었다. 변화하는 기업 경영에 대응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한 치 앞도 알기 힘든 경제 상황에서는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그렇다면 상장 기업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 재직한 CEO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상장회사협의회가 발간한 ‘상장사 경영 인명록(2005년)’에 따르면 상장 기업의 대표이사는 1000여 명이다. 이 중에서 10년 이상 대표이사로 일한 사람들은 222명이다. 전체의 20%가 넘으니 예상외로 많은 숫자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192명이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그들의 친인척이었다. 결국 이런 관계에 있는 CEO들을 제외하면 순수한 전문 경영인으로 10년 이상 상장 기업의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장수 CEO는 겨우 30여 명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2006년 포스코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중 10년 이상 재직한 CEO로는 최병철 극동전선 회장이 26년으로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다. 2위는 23년 동안 CEO로 활동한 이금기 일동제약 회장이었다.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17년), 김선동 에쓰오일 회장(16년)의 경우 조사 당시에는 CEO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경영 일선에 물러났지만 2008년 초까지는 CEO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함시켰다. 또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재임 연수 16년으로 장수 CEO로 꼽혔다.한편 지난해 5월 서울대 조동성 교수팀이 공개한 ‘장수기업 메커니즘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는 30년 이상 된 기업 중 존속 기간의 80% 이상 동안 지속적으로 흑자를 낸 기업, 그 가운데에서도 최근 15년간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기업을 선택했다. 이렇게 고른 30개 기업의 평균 수명은 51.9년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59.3년과 45.7년이었다.장수 기업의 공통점은 CEO의 재임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30개 장수 기업의 역대 CEO 130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7.2년으로, 중소기업이 21.5년, 대기업은 11.9년이었다. 보고서는 “CEO가 단기 성과를 좇기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실제로 한국신용평가정보(기준일 2005년 8월 8일)가 국내 전체 상장 기업 1373개사의 2000∼04년의 5년간 영업이익률을 합산한 결과 CEO 재임 기간이 1년 미만인 기업은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14.5%였으나 10년 미만은 마이너스 1.2%, 20년 미만은 3.9%, 20년 이상은 5.2%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CEO의 재임 기간과 기업의 경영 성과에 대한 분명한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장수하는 CEO가 있는 기업의 성과가 점점 좋아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짐 콜린스는 “CEO가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CEO의 수명은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며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으로 도약한 기업에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뛰어난 CEO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GE, 소니, IBM, 3M, 모토롤라 등의 CEO들은 장기간 재임하면서 기업을 계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CEO의 재임 기간이 짧다는 것은 소신 있게 경영 혁신을 추진하거나 중·장기 전략을 개발하는데 제약이 될 수 있다. CEO의 잦은 교체가 주가 관리, 배당 실시 및 위기 회피 등 자칫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장수 CEO가 있기 때문에 회사가 무조건 잘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실적을 내는 기업에 장수 CEO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장수 CEO들의 특별한 DNA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크게 묶어 나누면 비전과 도전, 현장 경영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장수 CEO들의 특징은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동시에 그린다는 점이다. 큰 그림이 5년, 10년에 걸친 중·장기적인 것이라면 작은 그림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단기적인 세부 행동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CEO가 자주 바뀌는 기업일수록 큰 그림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단기적인 성과에만 급급해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잃게 마련이다. 변화하는 최근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상대적으로 힘들다.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지난 1960년 평사원으로 일동제약에 입사한 이금기 회장. 3년 뒤 그는 활성비타민제인 아로나민을 개발하고 스스로 만든 제품을 팔기 위해 생산부장 대신 영업부장을 맡았다. 덕분에 이 제품은 대표 브랜드가 됐고, 그는 이런 실적을 기본으로 1971년부터 사실상 CEO 역할을 하다가 1984년 사장직을 맡았다.1996년 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유아식 업계 최하위인 남양산업을 인수해 매출을 9배 끌어올리며 지금의 일동후디스로 키운 것도 그였다. 외환위기 이후 워크아웃 등 어려운 시기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이 과정에서 회사 지분을 많이 매입해 주요 대주주가 됐다.평범한 직원이 사실상의 오너 회장이 되었으니 ‘신화’로 불릴만한 사례다. 이 회장은 제품 개발에서부터 생산, 영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기본으로 회사의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제시했다. 그랬기 때문에 주요 고비마다 회사는 위기를 넘기고 안정적으로 설 수 있었다.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도 직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 성공한 사례다.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이 회장은 부채 비율이 600%를 넘으며 위기를 맞은 삼성물산의 유통부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회사를 살리려면 해외 유통 업체와 합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10여 개 외국 유통 업체에 합작을 타진해 영국 테스코와 50 대 50 합작을 이뤄냈다.당시 그가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회사 분위기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근무시간 중인데도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고 건물 비상계단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직을 얘기하는 일이 잦았다. 이때 이 회장은 새로운 개념의 할인점으로 업계 1위를 목표로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당시 홈플러스는 업계 12위, 지방에 있는 할인점보다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1999년 설립 이후 2008년 9월 현재 전국 매장 73곳, 직원 1만3000여 명, 연간 매출 6조2000억 원(2007년 기준)을 달성했다. 올해는 7조 원 이상의 매출 달성이 예상되고 있다.사람은 누구나 편한 것을 좋아한다. 특히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변화를 피하게 마련이다. 현재 얻은 것만으로도 애써 모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많으면 기업은 발전할 수 없다. 특히 CEO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오랫동안 살아남기 힘들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제 상황에서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어느 기업이든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이 외부 환경에 의한 것이든,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위기와 기회는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 위기 뒤에는 항상 기회가 따라오고, 반대로 기회 뒤에는 항상 위기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위기를 현명하게 넘긴 경영인이야말로 최대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높다.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을 통해 기업의 규모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을 들 수 있다. 그는 1994년 반도체 총괄사장을 시작으로, 기술총괄 겸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을 거쳐 지난 5월 삼성전자 부회장에 취임했다. 반도체 기술 1인자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품목 결정과 공장 설계에까지 참여했다. 반도체 업계의 리더 가운데 연구·개발에서부터 생산까지를 모두 알고 있는 CEO로 평가받고 있다.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삼성엔 천재급 인재는 없어도 준천재급 천재는 3명이 있다”면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황창규 사장과 함께 이윤우 부회장을 꼽았다. 삼성은 1983년 처음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년도 안 돼 256KD램을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 설립 5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이 부회장은 초기에서부터 합류해 오늘날의 반도체 사업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1MD램(1986년), 4MD램(1988년), 16MD램(1989년)을 만들고 1993년엔 세계 최초로 64MD램을, 이듬해엔 다시 256MD램을 개발해냈다. 처음 성공으로 만족하고 혁신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삼성은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국내 최장수 CEO로 꼽히는 최병철 극동전선 회장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최 회장은 1969년 한화에서 직장생활을 시작, 동양시멘트, 대우 등을 거쳐 1981년부터 극동전선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극동전선은 고도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선박과 해양 구조물용 케이블, 통신용 케이블인 LAN 케이블을 생산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가 CEO를 맡았을 당시만 해도 회사는 내수 기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글로벌 선박용 케이블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 시장의 50%, 세계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1등 기업이 됐다.최 회장은 극동전선 창업주인 이형종 전 회장의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3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회사를 프랑스 기업 넥상스로의 매각을 주도했다. 이대로는 회사가 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최 회장의 결단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전선 분야에만 집중하는 글로벌 기업 넥상스라면 회사를 더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깊은 고심 끝에 인수·합병(M&A)을 결정한 것이다.당시 노조의 반발이 심했고 최 회장 스스로도 본사의 글로벌 회의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이제 CEO를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사의 만류로 그는 회장직에 올랐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주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다.한라공조는 1986년 설립됐고 신영주 사장은 1994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고비는 역시 IMF였다. 당시 신 사장은 ‘고객과 기술 우선주의’ 신념으로, 혁신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또 분기마다 CEO가 직접 임직원을 대상으로 경영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경영 이념과 전략을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이와 함께 중·장기 경영혁신전략 HCIP-330(3년 내 경쟁력 30% 이상 혁신)을 시행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6시그마를 통해 사람, 제품, 프로세스 혁신을 추구, 2006년 한 해 동안 51억4000만 원의 혁신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현장 경영은 고객 중시 및 직원들의 상황을 살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기업이든 이론으로만 운영될 수 없고 책상 위에 군림하는 CEO일수록 단명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사례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서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직접 보고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CEO일수록 시장과 고객을 리드해 나갈 수 있다.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라 회장은 선린상고 야간을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공부했다. 1959년 농협의 전신인 농업은행에 입사해 업계에 발을 디딘 이후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당시 상무로 시작했다. 이후 1991년부터 신한은행장을 3연임했고 2001년 신한금융지주 출범 이후 계속 회장직을 맡고 있다.신한은행은 1982년 자본금 250억 원, 임직원 279명, 점포 3개로 출발했다. 외환위기 등 경쟁과 혼란 속에서 굴지의 은행들이 스러져 갔다. 하지만 신한은 2007년 4월 조흥은행과 통합하면서 총자산 168조 원, 직원 1만1400명, 점포 964개를 지닌 거대 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25년 동안 1000배의 성장을 거둔 것이다.신한은행이 처음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은행은 고객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은행 문을 들어서는 사람 가운데 일부분은 이미 주눅이 들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고객 한 명이 들어올 때마다 전 직원이 일어나 “어서 오십시오, 무얼 도와 드릴까요?”라고 외쳤다. 또한 당시의 은행원들은 모두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유독 신한의 직원들만은 동전 카트를 끌고 시장에 나가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동전을 바꿔주거나 길에서 큰 목소리로 고객들에게 인사했다. 라 회장의 고객과 현장 중시 철학이 이룬 결과였다.배종찬 풀무원건강생활 사장은 1999년부터 CEO로 일하고 있다. 배 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제일제당에 입사, 이후 25년 동안 재직했다. 1989년 부사장으로 풀무원에 합류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매달 전 직원이 일일 전화 상담체험을 하도록 해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게 했다.또 영업 현장에서 방문 판매를 전담하는 풀무원 레이디는 연간 300시간 이상의 건강 관련 교육을 수강할 정도로 전문가 집단으로 키웠다. 덕분에 회사는 10년 연속 브랜드 파워 1위를 지킬 수 있었다.1994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종헌 삼양사 사장은 과거 노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처리해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물론 지금도 사내 노조가 있지만 그의 열린 경영을 통해 ‘무분규 신화’를 만들어 냈다. 2004년 1월부터는 국내 최초 공장 현장 사원 원가 절감을 통한 수익을 노사가 공정하게 배분하는 ‘생산성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글= 진희정·CEO전문작가 jhj155@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