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상승의 전제조건

구조조정은 부실의 청산 과정이자 ‘생존자 가리기 게임’이다. 구조조정에는 필연적으로 생존자가 더욱 강해지는 효과가 따른다. 구조조정이 강하게 전개되고 난 후 강세를 보인 사례는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극복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반면 1990년대 일본의 복합불황은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된 대표적 예다.하지만 구조조정이 추진된 결과 주가가 강세를 보인 한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외환유동성 문제가 해결되고 난 이후에도 국내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본격화로 인해 외우(外憂)의 주가 저점(1997년 12월)보다 내환(內患)의 주가 저점(1998년 6~8월)이 낮았다. 이번 위기에도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주가의 저점이 한 단계 더 추락해 외우의 저점(900선)보다 크게 하락할 것인가에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IMF식 구조조정이 추진된다면 900선 이하로의 하락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 산업의 강한 구조조정은 가동률 급감, 설비 투자 축소, 보유 자산의 공격적인 매각 등으로 인해 주가순자산배율(PBR) 1배 이하가 정당화될 수 있다(필자는 기업이익과 배당의 불확실성이 큰 상태이기에 전년도 말 기준의 자본총계에 의한 PBR를 추정의 근거로 삼았다. 전년도 말 자본총계 기준 1배의 PBR는 코스피지수 1020이다).IMF식 구조조정은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다시 1990년대 수준으로 회귀시켜 10%로 떨어뜨리고 장기 기업이익 증가율도 6.6%로 낮춰 적정한 PBR를 0.6배 수준으로 제한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번 위기에 전 산업에 걸친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1999년과 달리 장기적 측면에서 기업의 ROE를 확장시키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점이다. 1999년에는 글로벌 경기의 호조를 바탕으로 한국의 전방위적 구조조정이 기업 수익 회복으로 연결됐지만 지금은 외부 경기 여건이 더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IMF식 구조조정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대 이하로 하락하고 한국의 주택 가격이 고점 대비 30% 이상 추락하고 미국 경기가 정부 개입 없이 경착륙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중국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동원해 성장률 지지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개입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주택 가격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그래도 지난 30년 동안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적은 없다. 억지로 붙들고 있는 측면이 있을지라도 금리가 안정돼 주택 매물의 급격한 출회를 억제하고 있다. 한국만의 특유한 제도인 사금융의 일종인 전세금 제도가 주택 경착륙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여기에 과거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강제적 금리 인상이나 긴축의 외압이 없는데다 금리를 인하할 만한 충분한 여력과 재정을 투입할 만한 기초 체력도 있다. 글로벌 여건이 악화돼 전방위적 구조조정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결론적으로 IMF식 구조조정 시나리오의 발생 확률은 낮아 보인다.IMF식 전방위적 구조조정은 아닐지라도 현재 부분적 구조조정은 필요하고도 유익하다. 자산 버블 시대에 공급과잉이 축적된 부분은 부동산과 건설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고성장을 겨냥해 공급이 집중된 신설 조선소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 부문에서 부분적 구조조정을 빨리 진행해야 유동성 지원이 실물과 금융시장 간 악순환을 끊는데 기여할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이 재정 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에 실패한 이유는 재정 지출 확대와 구조조정을 병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IMF식 구조조정 시나리오상의 증시 전망은 추가 하락 후 상당 기간 동안의 박스권 행보다. 반면에 건설과 부동산 및 신설 조선, 한계 금융회사 등에 대한 신속한 (부분적)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즉 자산 버블 시대의 나쁜 유산을 빨리 정리한다면 IMF 이후 선(先)구조조정한 수출 제조 부문이 글로벌 구조조정의 생존자가 되면서 전체 증시의 회복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한다.부분적 구조조정 시나리오는 지금 당장에는 증시를 일정한 박스권으로 묶어 놓을 가능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증시에 득이 된다. 2009년도 증시는 부분적 구조조정의 시각에서 적정한 PBR 1.1배를 중심으로 등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2009년 중 예상 코스피지수 밴드는 900~1450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9년 증시는 저점 대비 3배 이상의 상승 탄력을 보였다. 강한 주가 상승이어서 강력한 기업이익 회복을 수반하는 상승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기업이익은 1999년에도 적자였다. 상장기업 전체의 기업이익이 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상승했다는 사실을 단지 미국의 정보기술(IT) 호황으로만 치부할 일은 분명 아니다.당시 상장된 기업의 전체 이익은 비록 적자였지만 이것은 상장 폐지된 기업들의 실적이 반영된 결과다. 1997년 이후 계속 상장기업으로서 신분을 유지해 온, 일종의 우량 기업의 실적만 놓고 보면 1999년에 큰 폭의 흑자 반전이 있었다. 즉, 우량과 부실의 구별이 가능해지고 우량주가 부실기업이 가지고 있던 시장 지배력, 시가총액, 기업이익을 흡수하면서 주가가 상승한 결과가 1999년의 주가 상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생존자 효과가 나타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물론 1999년 주가가 상승했지만 구조조정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1999년 이후에도 대우 사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하지만 정부가 1998년 5월부터 9월 사이에 구조조정 원칙과 금융회사 퇴출을 명령하면서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에도 부분적 구조조정의 원칙 확립과 한계 금융회사의 정리가 시작되는 시점에 주가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번 구조조정이 부동산, 건설, 신설 조선, 한계 금융회사 등에서 진행되고 수출 제조 부문은 초기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유동성 및 실적 압박을 받겠지만 글로벌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나면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수출 제조주는 주요 경쟁 업체들인 일본 및 중국 기업들의 자국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악화가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에 따른 물량(Q) 감소를 가격(P) 조절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분명 구조조정과 주가 하락 여정은 아직 남아 있다. 시간과의 싸움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글로벌 플레이어 위주의 1등주 투자나 가치 투자 등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때다.김세중·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kim.se-jung@shin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