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본 확충 어떻게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후순위채 발행과 증자 등 자구 노력을 유도하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BIS 자기자본비율이 은행권의 화두로 재부상한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BIS 비율 8%’는 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기준선이 됐다.물론 지금은 10여 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한보 기아 대우 등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면서 경제 전반에 충격파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로 인해 은행들의 대출 부실이 현실화했고 BIS 비율도 급락했다. 정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에 대한 충격파가 한꺼번에 올 위험은 없다. 대기업들이 견실하게 버티고 있고 건설업이나 중소기업 대출, 일부 가계 대출 등이 문제가 되고 있을 뿐이란 분석이다.문제는 앞으로다. 10여 년 전에는 금융 위기가 아시아 지역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세계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다. 또 당시에는 대기업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지금이 바닥’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또 정부가 은행들에 주문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위해서도 자기자본 확충은 필수적이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자기자본을 대출이나 보증 등을 포함한 위험 가중 자산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한 수치다. 자기자본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늘리면 BIS 자기자본비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자기자본이 늘어나면 은행들은 그만큼 대출 여력을 갖게 되는 셈이다.은행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방안으로는 후순위채 발행, 배당 억제를 통한 내부 유보 확대, 부실 채권 매각을 통한 자산 감축 등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 은행들이 최근 잇따라 선보이는 후순위채의 경우 자기자본의 100%까지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자체 노력만으로도 BIS 자기자본비율을 15~16%선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9월 말 기준 17개 은행들의 순수 자기자본(Tier1, 기본자본)은 99조 원이다. 여기에다 보완자본(Tier2, 자본 성격의 채권)으로 분류되는 후순위채와 하이브리드채권 발행을 통해 40조 원을 조달한 상태다. 9월 말 현재 은행권의 평균 BIS 비율은 10.79%다.은행들은 연말까지 자기자본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12월 중 1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 이 중 7000억 원가량을 우리은행이 발행하는 전환우선주를 인수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일정 기간 후 보통주로 전환되는 전환우선주는 은행의 자본비율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KB금융지주는 국민은행이 보유한 지주사 주식을 전략적 투자자 지분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7500억 원어치의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은행 중 가장 먼저 자기자본비율을 12%대로 끌어올렸다.정부의 지원 방법으로는 주택금융공사가 은행이 가진 주택 담보대출 채권을 매입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주택금융공사는 이를 모기지담보증권(MBS)으로 전환해 시장에 매각하면 된다. 이럴 경우 은행들은 자산 매각을 통한 자금으로 과다한 은행채 등을 상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자본비율도 높일 수 있다. 이 밖에 한국은행도 은행 후순위채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