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 지도 바뀐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단연 꼽히는 곳이 인사동이다. 그렇지만 지금 인사동은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주점, 식당, 카페로 가득 찬 지 오래다. 옛 정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옛 물건들을 파는 골동품 가게들 뿐이다.인사동은 번화가인 종로와 유적지인 경복궁을 이어주는 문화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왔지만 상업지구이다 보니 권리금이 높아지면서 이윤이 남는 장사만이 생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와지붕 아래서 부채와 족자만 팔아서는 술과 음식을 파는 장사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옛것에 대한 관심은 다시 인사동의 북쪽인 가회동·삼청동으로 향하고 있다.경복궁의 동쪽 담과 마주한 삼청동·가회동·계동 일대(북촌)는 청와대 때문에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돼 왔던 곳이다. 1990년대 들어 겨우 최고 고도 제한이 풀려 다세대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곳이다. 한옥은 한번 허물면 다시 짓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건축법상 한옥의 ‘처마’를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건축 면적 산정 때 손해를 보게 된다. 1962년 건축법 개정 이후 전국적으로 한옥은 거의 지어지지 않았다.서울에 남은 유일한 한옥 마을인 북촌(北村)은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한옥을 보존한 경우다. 주민들이 2000년 고건 서울시장에 요청했고 이어 2001년 북촌 가꾸기 기본 계획이 시행됐다. 이때 한옥지원조례에 따라 한옥 개·보수 보조금 3000만 원을 무상으로 서울시가 지원했고 추가로 2000만 원은 무이자로 대출까지 해줬다. 한옥을 신축할 때도 마찬가지로 지원이 가능했다. 이렇게 해서 8년 동안 900여 채의 가옥 중 300여 채를 개·보수했다.북촌의 한옥 보존 사업은 주민들의 자생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존 서울시의 도시계획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시가 한 것은 전신주 지중화 사업, 도로 포장 등의 미관 관리나 개·보수할 여력이 없는 집을 직접 매입해 임대한 것이 전부다. 이렇게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토해양부가 ‘한옥진흥법’ 제정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용역을 발주해 기존 법령을 검토하고 있어 내년에 본격적으로 법 개정을 논의할 예정이다.북촌 한옥이 주목을 받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겼다. 한옥 개·보수 사업을 하는 8년 동안 지가(地價)가 10~15배나 오른 것이다. 원주민들은 집을 팔고 외부인들이 집들을 속속 매입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취지와는 달리 한옥이 ‘돈 많은 부자들의 고급스러운 취미’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북촌 일대는 아직 고풍스러운 한옥과 손으로 쓴 간판이 걸린 옛 가게들이 남아 있지만 큰길가에 접한 삼청동 일대는 이미 상업지구 못지않은 번화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현재 이 일대는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없지만, 근린생활시설 명목으로 카페, 갤러리,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던 삼청동길도 2년 전부터 급속히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또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을 리모델링하기 위한 용역을 9월 안에 발주할 예정이다. 내년 3~10월 공사가 진행되면 차도를 한 차로만 남겨 일방통행으로 만들고 인도를 넓힐 계획이다.강남구 청담동의 고즈넉한 명품 거리는 앞으로 강남의 새로운 명소로 거듭날 계획이다. 지난 8월 말 지식경제부가 ‘청담·압구정 패션특구’로 지정해 패션 테마 거리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에는 중구 영어교육특구, 노원구 국제화교육특구, 동대문구 약령시한방산업특구 등 4개의 특구가 추진되고 있다. 이 중 영어교육특구·국제화교육특구는 각 학교의 원어민 교사에 대해 체류 기간 연장 등 행정적인 편의를 제공한다.특구 지정은 2004년 제정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에 따른 것으로 특구를 원하는 지자체가 신청하면 지식경제부가 허가를 해주도록 되어 있다. 실제 사업 추진은 해당 지자체 몫이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외국인·내국인 관광객이 갈 곳이 따로 없고, 압구정동의 젊은이들이 홍대 등으로 많이 이동했고 명품 숍 등 인프라가 활성화돼 있지만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져 이들 업체들을 밖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며 특구 지정의 목적을 설명했다.청담·압구정 패션특구는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강남구청은 “단순히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만으로 명소가 될 수 없고 연관 산업이 있어야 뜰 수 있다.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명품 패션이라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조금의 지원만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동대문시장 쪽은 중저가 위주의 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고가 위주의 패션 상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이 일대는 이미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중진급 디자이너들의 대부분이 청담동·압구정동에 진출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분위기만 조성해 주면 이탈리아 명품에 맞먹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강남구청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 마련한 것이 ‘선데이 마켓’이다. 일요일마다 차도를 막고 부스를 설치해 디자이너 제품들을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명품 업체들도 참여를 유도했지만 ‘거리로 나오면 명품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참가를 고사하고 있다. 일단은 국내 디자인 육성을 목표로 하고있다.선데이 마켓은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의 풍경을 모티브로 할 계획이다. 저가에 명품을 살 수 있다 보니 먼 거리인데도 주말에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구 지정 이후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을 운영하는 신세계 관계자가 찾아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CJ도 참여할 방안이 있는지 문의하기도 했다. 명품 거리 초입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은 매상이 줄어들지, 유동인구 증가로 인해 혜택을 볼지 저울질에 한창이다.패션지원센터도 건립할 예정인데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특이하다. 강남구청은 2010년 청담 1·2동 주민센터(옛 동사무소)를 통폐합한 뒤 청담1동 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할 계획이었다. 주민들의 반대를 우려해 소극적으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오히려 주민협의회에서 “새로운 상징 건물을 만들어 달라”며 재건축을 요구해 왔다.패션산업 지원뿐만 아니라 연관 산업을 위한 7개의 테마 거리 조성도 함께 이뤄진다. 연예기획사가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연예인의 거리’가, 배용준이 운영하는 카페 ‘고릴라’와 이 일대 명물인 ‘느리게 걷기’ 카페를 중심으로 ‘카페의 거리’ 등이 조성된다.패션특구가 관 주도로 이뤄지는 반면 신사동 ‘가로수길’은 자생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신사동 현대고등학교에서 도산대로까지 이어지는 가로수길은 마치 유럽의 어느 지역에 온 것같은 운치 있는 노천카페들과 디자이너 숍으로 이어져 있다. 가로수길은 2003년 지역 축제가 열린 것을 계기로 건물주들이 연합해 업종과 인테리어를 선별해 길을 조성한 경우다. 주민자치위원이자 지역 축제 총무 역할을 했던 D부동산 대표가 주변 건물주들을 설득해 노후화된 건물을 예술적으로 리모델링하도록 유도했다. 그러자 불과 4년 사이에 거리의 풍경이 확 바뀐 것이다.가로수길이 젊음의 거리로 변모한 데는 주변에 밀집한 업종의 영향이 크다. 이 일대에는 광고회사, 엔터테인먼트, 영화사, 화랑, 댄스클럽, 패션 학교 등이 많아 이국적이고 예술적인 것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주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주름잡던 이들이 지금은 가로수길로 모두 옮겨 왔다. 특히 이들은 구매력을 갖춘 경우가 많은데 신사동 주민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주변 업체들의 오너들이 대체로 젊은 유학파들이 많다.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들의 지원으로 사무실을 내다 보니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준이 된다. 다만 당장 큰돈을 벌지 못하다 보니 끊임없이 업종이 변경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청계천 복원으로 자리를 비워주게 된 청계천 상인들이 새롭게 둥지를 트는 문정동의 동남권 유통단지가 내년 4월 첫선을 보인다. 동남권 유통단지는 물류단지, 활성화단지, 전문 상가의 3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이 중 전문 상가가 올해 말 준공된다. 나머지 두 단지는 올 연말 완료될 연구 용역 결과를 토대로 착공될 예정인데 2012년까지는 완공될 예정이다. 시행사인 서울시 SH공사는 전문 상가를 ‘가든파이브’로 이름 지었다. 가든 파이브는 코엑스몰의 6배, 63빌딩의 5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가·나·다의 3개 블록으로 이뤄져 있으며 총 6000여 상가가 입주할 예정이다.가든파이브가 첫삽을 떴지만 2015년이면 문정동 일대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동남권 유통단지 외에도 바로 앞에 4만6000가구 규모의 위례신도시, 거여·마천 지구 1만여 가구, 장지지구 5670여 가구가 들어서고 문정법조타운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벌써부터 ‘또 하나의 강남’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잠실의 3배인 30만 명의 인구에다 이곳에 직장이나 점포를 둔 유동인구까지 감안하면 강남구에 필적하는 주거·업무·상업지역으로 부상하게 된다.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가 있다면 금융 회사들이 한곳에 모여 생산성을 높이는 금융 산업단지가 연내 지정될 예정이다. 지금도 여의도에 은행, 증권사, 감독기관이 밀집해 있지만, 금융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은 물론 금융 관련 연구소와 대학까지 한곳에서 육성해 말 그대로 금융의 메카로 떠오르게 된다. 외국계 금융 회사도 함께 유치하게 된다. 현재도 준 금융단지로 볼 수 있는 여의도와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앞둔 용산이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이 금융 중심지로 선정될 것이 유력하지만 추가로 선정될 지역을 두고 인천 송도, 부산 문현, 제주도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취재=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사진=김기남 기자 doon1549@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