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휴가와 관련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세계 각국의 휴가 문화에 대한 인식을 비교한 것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의 국민일수록 휴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한편으로는 ‘유럽인은 휴가를 가기 위해 일하고 미국인은 일하기 위해 휴가를 간다’는 표현을 써서 유럽 특유의 문화적 우월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다.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연간 14일의 휴가를 사용하고 있고 유럽인들은 최소 한 달 이상(평균 6주)을 휴가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는 주 5일 35시간 근무, 연간 5주의 유급 휴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데다 연차, 공휴일, 주휴일 등을 망라해 1년 가운데 145일이 휴일이라고 한다. 이제 갓 여름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대한민국 샐러리맨들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더욱 부러운 것은 휴가를 문화 체험과 밀접히 연관시키는 그들의 휴가 스타일이다.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문화 체험은 도시 탐방, 문화유산 방문, 축제 참가, 박물관 탐방 등이라고 한다. 휴가 시기 역시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유럽인들의 휴가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1년 내내 이루어진다.그렇다면 우리의 휴가 문화는 어떠한가. 온갖 바가지 상혼과 교통 북새통에도 불구하고 휴가는 여전히 여름 한철에 국한돼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휴가 양태도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스트레스 해소형이나 볼거리 중심에서 문화 체험, 생태 탐방, 스포츠 활동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점이다.또한 일과 휴식의 조화를 꾀하는 ‘밸런스 경영’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휴가 문화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기업체마다 아이디어 휴가, 집중 휴가, 리프레시(refresh) 휴가 등 다양한 이름의 휴가를 직원들에게 권장하고 자유롭게 시기를 정하도록 하는 등의 배려도 엿볼 수 있다.강원랜드도 서로 다른 부서와 직급으로 꾸려진 여행팀을 선정해 항공료 등을 지원하는 ‘해외 이(異)문화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언제든지 ‘떠남’에 대한 로망을 실현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휴가 문화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전환되기에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휴가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게 있다.우선 유럽처럼 연중 휴가 제도를 채택해 보다 효율적인 휴가가 되도록 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또 정부, 지자체 등 공공 기관은 소비만을 염두에 둔 근시안적 관광지 개발 대신 자연친화적 관광 기반 시설을 마련하는 등 휴가 문화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시장 개방으로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도시와의 다양한 연계 방안도 모색할 만하다.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국민들이 잘 쉬고 잘 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도 선진 국가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정책 중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2007년 세계 각국의 1인당 국민소득수준’을 보면 1위를 차지한 룩셈부르크에서부터 10위까지의 국가들 중 카타르(4위)와 미국(9위)을 제외한 8개 국가가 유럽 국가들이다(한국은 33위). 휴가 문화가 그 나라의 경제적 수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삶의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일하는 것만큼 놀고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휴식은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휴식이야말로 피로에 지친 정신과 육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값진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약력: 1949년생. 74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89년 LG전자 해외투자팀장. 2001년 LG필립스디스플레이 공동대표. 2004년 TCL톰슨전자 수석집행관. 2006년 강원랜드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