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혁명의 확산
교토부 최북단 탄고반도에 있는 교탄고시. 이곳 해안가엔 동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20여 개가 서 있다. 교탄고시 시민들이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성한 ‘풍력 마을’이다. 이곳에 풍력발전기를 처음 설치한 주민 마쓰미 히로무(40) 씨는 “계절풍을 에너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5년 전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뒤 이웃에도 적극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의 권유로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집이 한 곳 두 곳 늘면서 지금은 집에서 쓰는 전기의 100%를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조달하는 주택도 생겼다.‘환경 선진국’ 일본에선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노력이 아래로부터 솟아오르고 있다. 일반 가정과 직장,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산화탄소 감축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 대상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국제적 환경 규제에 대응해 나가야 하는 일본으로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특히 개인들의 환경 중시는 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꾸는 ‘아래로부터의 저탄소 혁명’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환경’을 키워드로 성장하는 녹색 경제의 미래상이란 평가도 있다.일본의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은 2006년 기준으로 연간 1억6000만 톤. 교토의정서의 기준 연도인 1990년보다 30% 정도 증가했다. 산업계가 배출량을 소폭 줄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가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문제는 비용이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면 비용이 1기당 120만 엔(약 1150만 원) 정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의식이 높은 개인들을 중심으로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가구가 해마다 늘고 있다. 돈을 쓰더라도 ‘저탄소 생활’을 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도쿄도 스기나미구에 사는 사카모토 유키오(70) 씨도 3대의 풍력발전기와 태양광으로 임대 사업을 하고 있는 아파트 공용 시설의 사용 전력을 충당하고 있다. “정전이 되더라도 임차인들에게 불편이 없다”며 “그런 특징 때문에 아파트 임대가 더 잘된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는 부담이 되지만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운용 경비 측면에선 장래성이 있다는 설명이다.자기 자신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 만큼 브라질의 수력발전사업 등에서 나온 배출권을 사서 상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야후재팬이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카본 오프세트(carbon offset·이산화탄소 상쇄)’ 서비스는 1개월 반 만에 2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용했다. 이들은 회당 평균 300엔어치의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샀다. 이용자의 60%가 환경 의식이 높은 20~30대 젊은이들이다.도시에서의 환경보호가 지방 경제에 도움을 주는 현상도 있다. 삼림이 전체 면적의 84%를 차지하는 고치현 중부의 스사키시. 이곳에서 간벌된 나뭇가지 등은 곧바로 시멘트 공장으로 보내진다. 시멘트 공장은 이 나뭇가지를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석탄 대신 바이오 연료를 쓰면서 감축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스사키시가 모아 다른 기업에 판다. 스사키시는 거기서 나온 돈을 다시 숲을 가꾸는 데 사용한다.이 같은 지방의 온난화 대책에는 도쿄 도심의 패션 빌딩도 참여하고 있다. 스사키시로부터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사기로 최근 결정한 곳 중 하나가 도쿄 번화가 신주쿠에 있는 패션 쇼핑센터인 루미네. 이 쇼핑센터는 직원 한 명당 목표량을 정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목표에 미달한 양 만큼은 스사키시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인다.“지금까지는 설비를 가동할 때 에너지를 아끼는 것만으로 생각했던 온난화 대책을 직원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바뀐 게 큰 의미”라고 루미네의 스즈키 다케시 상무는 말했다. 이 운동을 벌이면서 지하철 두세 정거장 거리는 걸어서 출근하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스사키시 삼림조합의 기타자와 기이치 부장은 “원래 쓰레기로 버리던 간벌 나뭇가지가 돈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삭감을 매개로 도시의 돈이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환경 대책에 대한 지역사회의 참여도 활발하다. 중앙정부가 최근 선정한 ‘환경 모델 도시’에는 89개 지방자치단체가 응모했다. 지난 7월 최종 선정된 곳은 소의 배설물을 대체 연료로 이용하고 있는 홋카이도 오비히로시 등 6개 지자체. 지역의 특색을 살린 온난화 대책들이 평가를 받았다.지자체에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예컨대 대량의 전력을 사용하는 하수처리장 등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전국에 약 2000여 곳의 하수처리장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자연 에너지를 사용하면 연간 43만 가구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전력을 아낄 수 있다.도쿄도 에도가와구에 있는 가사이 하수재생센터. 하루에 40만㎥의 하수를 처리하는 이곳엔 최신형 태양광발전 시스템이 시험 가동 중이다. 침전조 위에 설치된 박막형 태양전지는 도쿄도와 샤프가 공동 개발한 것이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태양광 패널이 방향을 바꿀 수 있어 발전 효율이 높다는 게 특징이다.일본의 ‘아래로부터 혁명’은 해외로도 수출되고 있다. 가정에서 나오는 튀김용 기름으로 바이오디젤 연료를 생산해 시내버스나 쓰레기 수거차 등의 연료로 사용하는 교토시. 교토시는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시에 폐유 회수나 재생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보고르에서는 주부나 학생들이 음식점이나 가정을 돌면서 사용하고 남은 튀김 기름을 모아 연료로 재활용하는 운동이 한창이다.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의 이다 데쓰야 소장은 “지자체와 같은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 변화는 나라 전체에도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성은 배출권 거래 등에 대해 지자체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줄 방침이다. 지난 7월 중순엔 처음으로 31개 현과 요코하마 센다이 등 17개 시의 대표들이 모여 이산화탄소 배출 삭감을 위한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일반 기업에서도 ‘저탄소 혁명’은 예외가 아니다. 미쓰이화학에선 에너지 절약에 대한 관리직들의 자세나 인식이 다른 회사와 전혀 다르다. 작년부터 이익이나 경영 효율뿐만 아니라 온난화가스 삭감 등을 업무 목표에 설정한 인사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대상은 부장급 이상 모든 간부 250여 명이다. 이들의 인사고과 평가 기준엔 ‘환경’ 항목이 추가됐다. 목표 달성도는 다음해의 보너스에 반영된다.인사부 이치무라 쇼히로 부부장은 “어떻게 환경 목표를 달성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간부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새로운 인사 제도가 겨냥하는 목표 중 하나도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지난해 고과 실적을 집계할 때 평가 기준이 되는 ‘경제·환경·사회’의 3가지 요소에서 환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였다. 총무나 인사 부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치무라 부부장은 올해 목표를 ‘환경에 대한 사원 교육 프로그램 재구축’으로 정했다고 한다.마쓰시타전기는 ‘LE(Love the earth·지구를 사랑하는) 달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자연보호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원들에게 부여하는 자격이다. 30만 명이 넘는 마쓰시타그룹 임직원 중 LE 달인은 현재 17명. 마쓰시타전기의 오쓰루 히데쓰구 이사는 “에너지 절약은 비용 절감이나 기술 개발과 똑같이 중요한 경영 과제”라며 “사원들의 환경 의식을 높이는 게 기업의 경쟁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