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속칭 잘나가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딴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그 첫 수상자는 아마 고승덕(51) 한나라당 의원의 차지가 될 것이다. ‘고시 3관왕’에서부터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미국 4개주 변호사, 인기 방송인, 베스트셀러 저자, 그리고 투자 자문사 사장까지 그의 화려한 성공 이력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다. 하지만 그런 고 의원에게도 국회 입성만큼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1999년 야당인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시 장인이자 범여권의 대표였던 박태준 자민련 총재의 강한 만류로 꿈을 접어야 했다. 그 후 이혼과 투자 실패, 주식 전문가로의 재기 등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우여곡절과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999년 당선됐다면 벌써 4선의 중진 의원이 됐을 시간이다. 갓 입주한 사무실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의원회관 835호실에서 만난 고 의원은 특유의 선한 눈빛을 반짝이며 “모두 겸손해지기 위한 과정”이라며 “멀리 돌아온 만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하는 새로운 ‘타입’의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포부를 밝혔다.“투자 자문사는 당선되고 나서 폐업 처리했습니다. 금융 분야를 다루는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돼 아무래도 이해 충돌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머지는 특별한 제한은 없지만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어요. 성공학에 대한 책을 한 권 쓰고 있는데 8개월째 중단 상태이지요. 강연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가끔 나가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누구나 인생에서 성공을 원하지만 잘 안 되지요. 그래서 이런저런 탓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 성공과 실패는 적어도 IQ 탓은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IQ가 높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사람은 A, B, C, D의 4개 유형으로 나뉘고, 거기에 따라 인생의 학점이 정해지지요. 쉽게 말해 D형은 시키는 일을 마지못해 하는 스타일이에요.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상사가 지시하는 것을 마지못해 모양 갖춰 따라가고, 나중에 자기 사업을 하게 되면 고객이 요구하는 걸 마지못해 따라가 주는 식이죠. 많은 사람이 무의식중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요. 반면 A형은 시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서 합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기 전에 자기가 가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를 자꾸 스스로 설정하고 이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스타일이지요. 이런 구분은 국회의원에도 적용되지요.”“D형 국회의원은 법안을 누가 가져오면 마냥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억지로 마지못해 처리해 줍니다. 몸은 편하지요. 반면 A형 의원은 국민이 뭘 원하는지를 찾아서 일을 합니다. 소관 상임위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걸 그냥 집중해 찾아가는 거죠. 일이 굉장히 많아지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하지요. A형이냐 D형이냐에 따라 국회의원으로서의 학점은 미리 정해집니다. 앞으로 A형 국회의원의 모델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실망스럽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데 ‘100+α’라고 해두죠.(웃음) 인생의 성공은 지적 수준과는 큰 상관이 없어요. 대개 어릴 때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안주해 D형이 되지요. A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겁니다.”“투자의 기본은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겁니다. 최근 몇 년간 시장 상황이 좋았기 때문에 상당수 투자자들은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서 돈을 번 것으로 착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 분들이 최근에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더 큰 고통을 당했어요. 세상에 시장을 당할 장사는 없습니다. 저는 작년 가을부터 미리 변화를 예측하고 투자 자문사에서 운영하던 자금도 모두 현금화했어요. 그때부터 주위에도 금리 상품만 권했지요. 내년 가을 정도까지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다섯 달 하락하다 보면 한두 달 오를 수도 있지만 그건 수익을 낼 수 있는 흐름이 아닙니다.”“그때는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야당인 한나라당 공천을 받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고, 당시 장인이 범여권인 자민련 총재로 있어 여야로 갈리는 상황이 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집안의 조율도 안 돼 있었지요. 무엇보다 집안의 반대가 컸습니다. 집안이 평안하지 않으면 뭔가 열정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딱 3일 고민하다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고 좀 창피하지만 바로 포기했습니다. 증권 투자로 치면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손절매를 한 거죠. (그래도 서운한 점은 없었느냐고 묻자) 저는 일단 과거 것이라고 생각하면 철저하게 마음에서 지웁니다.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서운한 건 없습니다. 신앙을 갖고 있으니까 항상 ‘하나님이 어떤 것을 만들려고 이렇게 중간에 곡절을 주시는 걸까’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홍준표 원내대표의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송파 보궐선거였는데, 지금도 홍 대표는 ‘그때 당선됐더라면 벌써 4선인데’ 그럽니다.”“지난해 BBK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럽게 한나라당 대선 캠프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캠프에 들어가서 보니까 모두 총선 출마하려고 준비하고 있더군요. 저도 어깨너머로 지켜보다 권유를 받고 출마하게 됐어요. (2004년 재혼했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집안에서 잘 이해하고 지원해 줘서 차분하게 선거를 치렀습니다. 어떻게 보면 9년이란 시간을 돌아서 온 셈인데 오히려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의원으로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우리나라는 현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국가 주도, 규제 중심에서 자율과 창의, 경쟁과 선택으로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이런 변화가 좀 더 과감하고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진통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이념적으로 나누면 약간 우파적 사고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좌우의 구분은 옳지 않다고 봐요. 그런 구분을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 있는 것처럼 국가도 그런 식으로 ‘A형’ 국가로 가는 게 맞는다고 봐요.”“과거의 성장 모델은 정부가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고 여건을 만들어 줘 키우는 방식이었지요. 아직도 정부 내의 ‘올드 이코노미스트’들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부동산이나 어떤 분야의 거품을 만들면 성장률이 얼마 올라간다는 이런 숫자 놀이만 합니다. 이게 바로 질적 측면보다는 양적 숫자 놀이에 치중해 온 이제까지 성장 정책의 실체입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 인위적인 정책을 펴기보다 자율과 창의, 경쟁이 꽃필 수 있도록 걸림돌을 제거해 주는 게 우선입니다.”“아무도 항의한 사람이 없어요. 공기업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이익을 많이 냈다고 하면 정부에서 다른 이야기가 나올까봐 철저하게 나눠 먹기를 해요. 사실 그 돈은 자신들이 정말 잘해서 낸 성과가 아니라 국가가 사업 독점권을 줘 그냥 쉽게 벌어들인 겁니다. 그것으로 일반 직원들이 보통 근로자의 2~5배의 연봉을 받아간다는 건 부당해요. 연봉 1억 원이면 국회의원보다 낫습니다. 연봉 이외의 복지 혜택도 엄청나죠. 심지어 1가구 5주택자에게 주택 자금을 지원해 준 곳도 있어요. 공기업 전반에 민간 기업의 경쟁 원리를 도입해 합리화하고 이익이 많이 나는 곳은 민영화가 불가피하다고 봐요. 그게 대다수 국민들의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실망은 아직 이르다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힘 있게 정책을 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측면이 컸어요. 취임 후 상당 기간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황이 지속됐고, 또 총선 뒤에는 한동안 원 구성도 제대로 못했어요. 앞으로는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하던 때를 보면, 처음 2년은 공무원들이 잘 따라주지 않고 언론에서도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후반기에는 충분히 능력을 보여 줬어요. 이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정반대로, 증시로 치면 전강후약이 아니라 전약후강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인 거죠.”1957년 광주 출생. 80년 서울대 법대 졸업. 89년 미 컬럼비아대 법학박사. 78년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20회). 79년 외무고시(13회) 차석 합격, 행정고시(23회) 수석 합격. 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 95년 SBS TV ‘코미디전망대’ 출연. 2005년 이화여대 법대 겸임교수. 2006년 로드투자자문 대표. 2008년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서초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