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는 트리플 악재

금융 위기, 고유가, 주택 경기 침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얼마 전 꼽은 ‘미국 경제의 삼중고’다.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다. 자칫 한 가지에 치중하다가는 다른 두 가지로 인해 미국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정책 당국으로선 고도의 줄타기가 필요한 사안이다.버냉키 의장은 이 중 금융시장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다. 일단은 시장이 무너지는 걸 막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다. 이런 의지가 주효했을까.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나온 다음부터 금융 위기에 불안감은 눈에 띄게 가라앉고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대책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금융 회사들의 2분기 실적도 ‘기대 이상’인 덕분이다.한 가지가 풀리면 다른 것도 함께 풀린다고 했던가. 금융시장의 안정 조짐이 뚜렷해지는 것과 함께 국제 유가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정책 담당자들도 놀랄 정도다. 그런가 하면 미 의회는 강도 높은 ‘주택시장 지원법’을 제정해 주택 경기에 대해서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버냉키 의장이 말한 삼중고가 한꺼번에 해결 실마리를 찾은 듯한 양상이다. 분명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세 가지 요인 중 어느 것 하나 완전히 해결 국면에 들어섰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 없다. 언제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시장을 괴롭힐지 모른다. 그렇지만 해결 조짐을 찾았다는 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중요한 건 흐름이다. 흐름을 따라 잡는 자가 결국은 상황을 활용할 수 있다.금융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누그러뜨린 일등 공신은 금융 회사 자신들이다. 2분기 실적이 월가의 예상치를 상당 부분 웃돌았다. 그렇다고 좋았던 건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실적이 좋게 나오자 불안감은 눈에 띄게 사그라지고 있다.구체적으로 웰스파고와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은 2분기에도 흑자를 냈다. 특히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에서도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해 앞으로 닥칠 금융 회사 인수·합병(M&A)에서 주체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이들 회사도 흑자 폭이 작년 동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그렇지만 월가의 전망치를 상당 부분 웃돌았다. 주목을 끌었던 씨티그룹은 예상대로 적자를 냈다. 작년 4분기 이후 3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다. 그렇지만 적자 폭은 25억 달러로 예상보다 적었다. 다행히 씨티그룹이 최소한의 적자를 냄으로써 시장 안정에 상당히 기여했다.메릴린치와 와코비아 워싱턴뮤추얼 등은 당초 예상대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폭이 워낙 커 월가의 전망치를 훨씬 웃돌았다. 메릴린치는 80억 달러의 자산을 상각하면서 2분기에도 46억50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작년 3분기 이후 4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다. 미국 4위의 와코비아은행은 상당히 심각했다. 적자액이 무려 88억6000만 달러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와코비아에 대한 투자 의견을 경쟁적으로 하향 조정한 이유를 알게 하는 수준이다.이쯤 되면 금융시장이 휘청하며 ‘다음은 누구냐’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다른 회사의 실적이 괜찮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들 회사가 내놓은 대책도 설득력을 얻었다. 이들 회사는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부족한 자금을 채우는 방법을 피했다. 대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한 경비 절감과 우량 자산 매각으로 부족 자금을 충당하기로 했다.정부의 노력도 금융 위기 불안감을 진정시키는데 주효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양대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및 17개 금융 회사에 대한 ‘대차 거래 없는 공매도(naked short selling)’를 한시적으로 중단시켰다. 이는 상당히 주효해 최근 금융주가 오르는데 기여한 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SEC는 이와 함께 터무니없는 소문을 터뜨린 대형 투자은행과 50여 개 헤지 펀드를 소환해 불공정 거래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요즘 원유 시장은 도깨비시장이다. 등락 폭이 워낙 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한동안 깜짝 놀랄 정도로 오르더니만 7월 중·하순에 예상치 못한 낙폭을 보이기도 했다. 7월 23일 현재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 9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124.44달러. 7월 11일 기록했던 최고가인 147.27달러보다 23달러 가까이 급락했다.물론 최근의 유가 하락을 추세적인 것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렇지만 원유 시장 쪽에서도 이전과는 변화가 이는 조짐은 감지된다. 우선 투기 세력이 움츠리는 조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미 의회가 원유 투기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최근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이 상당 부분 투기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이를 제한하는 법안을 상원에 상정했다.그렇지만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은 투기 제한은 미봉책일 뿐 궁극적으로는 원유 공급을 늘려야 한다며 인근 해안 대륙붕지역의 원유 시추를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 의회에서 원유투기제한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아직 유동적이다. 그렇지만 의회 차원에서 투기를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원유 시장을 움츠러들게 해 유가를 하락세로 이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게다가 미 경기 둔화가 예상보다 길어져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유 수요가 줄 것이란 전망도 유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경험했다시피 원유 시장은 변수가 워낙 많다. 지구촌 화약고라는 중동에서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 유가는 어느 순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게 분명하다. 또 수급 불균형에 따른 유가 상승이란 분석도 상당한 만큼 투기를 제한한다고 해서 유가가 내린다는 보장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 상승세가 한풀 꺾인 것만은 분명하다.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주택 경기 침체는 최근 금융 위기의 근본 요인이다. 주택 경기 침체는 모기지 부실을 낳는다. 이는 금융 회사 손실로 연결되고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도 줄어 경기 침체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이다.따라서 주택 경기 침체가 끝나야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가 풀릴 수 있다. 현재로선 아니다. 주택 경기는 내년이나 돼야 바닥에 다다를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그렇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상당히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미 의회는 양대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지원하고 모기지 상환에 고통을 겪고 있는 주택 소유자들을 돕기 위한 ‘주택시장 지원법(housing bill)’을 통과시켰다.이에 따라 국책 모기지 회사가 모기지 시장에서 제기능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분기 실행된 모기지의 90%는 두 모기지 회사가 관여됐다. 두 모기지 회사가 잘못될 경우 모기지 시장 전체가 마비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이 방지됐으니 모기지 시장은 그나마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됐다.모기지 상환에 고통을 겪고 있는 주택 소유자들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 구체적으로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모기지 금리를 깎아주고 기간을 늘려주는 모기지 회사에 대해 연방주택국으로 하여금 30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보증을 서도록 했다. 모기지 회사로서는 15%가량의 손실을 감수하고 모기지를 재조정할 경우 나머지 금액은 떼일 염려를 덜게 된다. 그만큼 부실 증가가 줄어들게 된다. 또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총 46억 달러의 세금을 환급해 주고 지방정부가 압류 주택을 사들이는데 39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ㆍ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크레디트 한도 증액 ㆍ필요할 경우 정부가 두 모기지 회사 주식 매입 ㆍ두 회사에 대한 감독 강화 ㆍ저소득층 주택 소유를 지원하기 위한 펀드 조성(53억 달러) ㆍ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세금 환급(46억 달러) ㆍ재조정된 모기지에 대해 정부 보증(3000억 달러) ㆍ지방정부의 압류 주택 매입 지원(39억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