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디자이너 최윤희

최윤희 씨는 늘 즐겁다. 60을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리호리한 몸매에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초록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녀는 항상 ‘하하하’ 크게 웃는다. 1주일 동안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스케줄만도 수십여 개. 방송에 강의에 집필 활동까지 하느라 전국 방방곡곡을 두 발로 뛰어다니는 숨 가쁜 일정들의 연속이지만 그녀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즐기며 산다. “바쁘다고 행복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난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데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그분들과 인사하고 즐겁게 대화하고, 그 소통 속에서 행복을 느끼죠. 비록 못 생겼지만(웃음) 눈, 코, 입 제대로 다 붙어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요? 건강한 두 다리가 있으니 이 역시 행복할 수밖에요.”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까운 산에 가서 한두 시간이라도 꼭 운동을 한다. 건강한 신체에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알기에 늘 즐거운 마음으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산다.“나는 하루살이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면서 살아요. 새벽에 태어나서 하루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저녁에 잠들면서 죽어버리듯 살아가는 그런 하루살이 시스템이요. 그래서 늘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라는 생각에 늘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죠.”어렸을 때부터 아프셨던 어머니, 늘 술에 취해 사셨던 아버지, 가난한 집안 환경…. 사랑도 돈도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나오자마자 결혼했지만 남편의 거듭된 사업 실패에 이르기까지 허리 한 번 펼 날이 없이 늘 고달프게 살았던 그녀였다.“하지만 그때도 내 안엔 행복이 꿈틀대고 있었어요. 비록 현실은 암담했지만 상상 속에서는 늘 행복할 수 있었죠. 그 상상이 날 행복하게 만들어 줬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현실이 밑바닥까지 내려가도 그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죠.”남편의 사업 실패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바로 그녀가 서른여덟 살 되던 해였다. 먹고 살기 위해 주부 사원 공채에 응모했고 카피라이터로 합격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두려웠죠. 정말 다행스럽게도 말과 글에는 소질이 있었던지 카피라이터로 취직이 되긴 했지만 과연 내가 직장에서 한 달을 채울 수 있을까 싶어 적금도 넣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공상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집에서 기발한 이야기를 하거나 특이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항상 “언제 저 환상에서 벗어날까”하며 비웃기 일쑤였다.“그런데 회사에서는 다르더군요. 카피라이터라는 게 말을 안 하면 안 되는 직업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웃어주고 맞받아주고 재미있어 해 주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위축되고 소심하던 내가 점점 더 활달해지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죠.”물론 늦깎이 신입사원이 그것도 나이 먹은 아줌마 신입사원의 활약이 달갑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맹순이, 얼꽝이, 푼수로 일관했다.“난 정말 잘난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인정하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요?(웃음) 대신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직장 일뿐만 아니라 친구, 누나, 언니가 되어서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곤 했죠.”부당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일이 아니라도 나서서 항의하는 것도 늘 그녀의 몫이었다. 그렇게 함께 이야기하고 슬픈 얘기엔 함께 울고 즐거운 이야기엔 함께 웃는 그녀의 진심은 사람들에게 쉬이 받아들여졌고 늘 앞장서서 행동하는 그녀의 과감한 추진력은 그녀를 국장까지 승진하게 할 수 있었다.“그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을 때 사직했지요. 나 하나 그만두면 젊은 사람 3명이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이후 자신이 겪고 자신이 생각한 ‘행복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그리고 그녀의 남다른 인생사는 곧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책 내고 텔레비전 몇 번 출연했더니 강의 요청이 쇄도했어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죠.”게다가 그녀 특유의 넉살 좋은 화법과 진솔한 삶의 태도, 그리고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대하는 친화력은 그녀를 대한민국 특급 강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소년소녀가장들, 공무원,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시민, 주부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강의 활동에 나선 지도 어언 십년이 훌쩍 넘었다. 청와대 경호실, 특수경찰대에 가서도 강의했고 영등포 교도소에서 300명의 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도 있다.“게다가 의정부 청소년 수련원에서는 룸살롱 여종업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기도 하고 목사님들, 스님들, 신부님들, 수녀님들 연수 모임에 가서도 강의했으니 대한민국 강사 중 가장 다양한 사람들에게 강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웃음)”그녀의 강의 주제는 대부분 ‘유쾌한 성공비법’, ‘일상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행복 비법’이다. 하지만 그 비법은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그녀가 생활 속에서 체득한 행복과 성공의 조건은 정말 단순하다. “일류 대학 나오고 일류 회사 다니고 연봉 많이 받고 넓은 집에 좋은 차 몰면서 사는 것, 그게 성공은 아니에요. 별것 아닌 일에도 흔쾌히 웃을 수 있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진짜 성공한 사람이죠.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치인데도 그걸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죠.”행복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행복에는 그에 따른 환경이나 조건이 수반돼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돈이 많다고 재벌들이 행복한가요? 꽃등심을 먹고도 징징 짜면 불행한 거고 돼지껍질을 먹고도 하하 웃고 살면 행복이죠. 그처럼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그녀는 ‘행복=셀프’라고 생각한단다. 행복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제작 생산품이라는 얘기다. “하루 종일 셀프 전문점에 가서 살펴보세요. 누가 물 한 잔 가져다 주나요? 행복도 마찬가지죠. 어느 날 딩동댕! 여기 행복 배달 왔습니다. 초인종 누르고 배달해 주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만들고 내가 찾는 것이랍니다. 전 그 행복을 무료로 분양해 주는 것일 뿐이고요.” 앞으로 나이 80이 넘어서도 쌩얼로 TV에 나가 유쾌한 인생 상담을 하는 것이 최고 소망이라는 그녀, 최윤희. 명품 대신 만 원짜리 옷 한 벌이 주는 자유에 더욱 행복함을 느끼는 그녀의 행복 분양은 앞으로도 쭉 지속될 예정이다.약력: 1947년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금강기획 부국장(카피라이터). 현대방송 홍보국장. KBS-TV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등 5개 프로에 출연. 저서: ‘유쾌한 성공사전’, ‘너의 인생에 태극기를 꽂아라’, ‘행복이 뭐 별건가요?’ 등 18권.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