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모델 전성시대
“피부가 너무 좋으시네요~”, “실물이 훨씬 멋진데요?”(주)한화 대전 공장에 근무하는 최진수 씨는 최근 여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이유는 올해 그가 그룹 창립 최초로 벌인 전사적 이벤트를 통해 한화그룹의 ‘얼굴’이 됐기 때문이다.올해 초 한화그룹은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자신의 꿈을 담은 사연 공모 이벤트를 벌였다. 총 3편을 제작하는 ‘한화인의 꿈’이라는 포스터의 사내모델을 뽑기 위해서였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포스터의 기획 의도에 대해 “꿈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한화인의 모습에서 젊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그룹의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이미 해발 6119m의 쿰부 히말라야 로부체봉에 한화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꽂은 바 있는 최 씨는 게시판에 “이번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한화기를 꽂는 것이 나의 꿈”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런 그의 사연은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 씨 외에도 한화갤러리아 사원 이예림 씨, 대한생명 신당브랜치 남궁훈 대리 등 3명의 임직원들이 통해 한화그룹의 얼굴로 선정됐다. 이들 한화인의 포스터는 7월 2일부터 한화그룹 전 사업장에 배포됐다.한화그룹이 이 같은 이벤트를 실시하는 이유는 그룹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내 구성원부터 그 가치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사내 모델의 경우 메시지 전달의 파급효과가 외부인에 비해 크다”며 “적어도 같은 회사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전에 선발 과정 이벤트를 거치면서 임직원들 스스로 꿈을 위해 노력하는 한화인들이 곳곳에 있음을 피부로 느껴 모두가 분발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한화그룹처럼 대규모 선발 이벤트를 벌이는 건 아니더라도, 사내 모델 제도는 여러 기업에 꽤 활성화돼 있다. 특히 사내 모델 활동이 가장 활발한 업종은 금융권이다. 정이용 농협중앙회 차장은 “금융 회사들은 첫째로 수많은 지점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으니 독특한 개성을 가진 직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 회사는 타 업종보다 예금 펀드 등 다양한 상품들이 빠르게 출시된다”며 “이를 홍보하기 위해 일일이 모델을 기용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실제로 농협은 사내 모델 제도가 매우 활성화돼 있다. 작년에 벌써 4회째 선발 대회를 가졌다. 이를 통해 여성 10명, 남성 2명의 사내 모델이 선발됐다. 선발된 이들은 농협에서 출시되는 상품 대다수의 홍보 모델로 활용된다.정 차장은 “일반적으로 20대 후반 미모의 여사원들이 가장 많이 선발되지만 특색 있는 상품들도 출시되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 꼭 ‘예쁜 여성’만 뽑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일반적인 홍보용 사진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남자 모델들의 경우엔 ‘군인대상상품’ 등에 활용된다는 것.국민은행 역시 2005년부터 사내 모델 선발 대회를 시작해 작년에 두 번째 대회를 열었다. 두 번의 대회를 통해 10여 명의 사내 모델이 선발됐다. 김진영 국민은행 차장은 “이들은 사내 포스터 제작이나 옥외 광고 촬영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대다수의 사내 모델들이 상품 사진이나 사내 포스터 촬영 일을 하는데 반해 국민은행의 경우 이례적으로 지하철 등 옥외 광고에도 사내 모델이 등장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지하철 광고물에서 본 모델에 반한 한 고객이 모델이 근무하는 충주의 지점까지 찾아가 애정 공세를 펼친 것.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충주지점 박모 대리는 광고 촬영 후 방송 섭외는 물론 몰려드는 팬레터에 ‘전국구 스타’ 대열에 올라서기도 했다고 한다.114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이드(KOID)의 정희진 대리 역시 사내 모델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올라선 사람 중 하나다. 2005년 사내 모델 선발 대회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그는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여러 매체에 등장했다. 사내 포스터와 블로그는 물론이고 대외홍보 인쇄물과 회사 홈페이지 등에까지 그의 모습이 실렸다. 코이드 정현주 대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114 전화 안내원의 이미지가 바로 정희진 대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사실 사내 모델 활동에 관심이 있는 사원들이라면 지루한 회사 생활에 대한 활력소 차원에서 사내 모델 일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광고 등을 통해 언론에 모습이 실려 가문의 영광(?)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내의 유명인으로 자리 잡게 돼 업무 협조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정희진 대리는 “사원들에게 친절을 가르치는 CS(고객관계관리)강사를 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져 있는 게 득이 된다”라면서 “잘 모르던 직원들도 ‘실물은 좀 다르다’며 조크를 날리는 등 쉽게 친해진다”며 웃었다. 그는 “사내 모델이 새로운 경험이어서 즐거웠고 활동을 통해 애사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또 일부 회사의 경우 컷당 3만~10만 원 정도의 현금이나 이에 준하는 상품권 등으로 모델료를 지급하기도 하니 쏠쏠한 용돈 벌이도 된다.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보면 사내 모델을 뽑는 일이 그리 재미있기만 한 일은 아니다. 이들이 곧 회사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김진영 국민은행 차장은 “사실 조직원들에게 사내의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그들과 같은 모습의 조직원이 가장 잘 통할 것”이라면서 “특히 금융사 같은 경우 외부의 고객에게 ‘전문가’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도 사내 모델이 좋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같은 이유로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기로 유명한 오리온 담철곤 회장이 TV 광고에 출연한다거나 현대산업개발 이방주 고문이 직접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인쇄 광고를 찍기도 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회사의 자존심 대결도 후끈 달아오르기도 한다. 타 회사 사내 모델, 특히 경쟁사 사내 모델보다 매력이든 경력이든 더 나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래서 선발 대회처럼 공식적인 과정이 있는 경우 웬만한 연예인 오디션 뺨칠 만큼 치열한 경쟁이 사내 모델 지망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코이드의 경우 대다수의 직원들이 20대 중·후반 여성들인 만큼 같은 또래인 사내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크고 위상도 높다. 이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다. 먼저 전국 각지의 7개 지역본부에서 선발해 본사로 사진과 이력서를 보낸다. 이후 7~8명선인 최종 선발자인 두 배수를 1차 합격자로 선정한 뒤 프로 사진가들이 와서 그들을 테스트한다. 정현주 대리는 “가끔 1차 합격자를 내지 못한 지역본부에서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도 하지만 회사의 일이니 공정함이 가장 큰 기준”이라고 말했다.또 농협의 경우 지난 선발 대회에서 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후보들은 1차 기본 사진 심사와 2차 촬영 심사를 거쳐야 했다.지난 국민은행 모델 선발 대회의 경쟁률은 무려 30 대 1에 육박한다. 6명 선발에 160명가량이 신청했다. 과정도 3차에 나뉘어 진행된다.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 3차 카메라 테스트를 실시한다. 김진영 국민은행 차장은 “비주얼이 되더라도 혹시 회사에 누를 끼칠 수 있는 경력이 있는 지원자가 있을 수 있어 면접 과정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이처럼 대다수의 기업에서는 사내 모델이 ‘알음알음’으로 선발되는 편이다. 공모 절차가 없는 기업에서는 홍보실 직원이 직접 ‘헌팅’에 나서기도 한다. 황준경 LG전자 과장은 “제품별로 콘셉트에 따라 직원을 홍보 모델로 쓰기도 한다”며 “평소 비주얼이 좋은 직원은 명함을 받아두거나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리스트화해 둔다”고 말했다. 그는 “10명 정도에게 다가가면 1명 정도만 거절하니 성공률이 높은 편”이라며 웃었다.취재=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