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충격으로 글로벌 금융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성장 모멘텀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특히 서브프라임 충격의 진앙지 미국에서는 주택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인해 연체 및 차압이 급증하면서 가계 부문의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될 태세다.또 그동안 서브프라임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디커플링 테마를 기반으로 각광을 받아 왔던 중국 등 신흥 경제국에서도 점차 불안감이 부상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세계 경제는 지난 수년간 ‘골디락스(Goldilocks)’라고 불리는 이상 현상을 누려 왔다. 골디락스라는 것은 글로벌 전반의 견실한 성장과 저물가, 그리고 유동성 붐과 자산 가격 상승이 결합된 극히 이례적인 호시절을 의미하는 표현이다.보다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1970년대 오일 쇼크와 대인플레(the Great Inflation)의 충격 이후 1980년대 디스인플레(disinflation)와 안정화(stabilization) 시기를 거치면서 1990년대 정착된 ‘대완화(the Great Moderation)’의 수혜를 구가해 왔다. 대완화 역시 견실한 성장과 물가 안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플레와 성장 등 거시경제적 변동성의 완화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거시경제적 변동성의 완화는 결국 유동성 붐과 자산 가격 상승의 중요한 원천으로 작용했다.하지만 이제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이 가시화되면서 이러한 호시절이 막을 내리고 있다. 지금을 1970년대의 오일 쇼크와 비교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그동안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변화하면서 거시경제적 변동성의 심화, 또 금융 환경의 격변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국제 유가 급등이라는 공급 충격은 국내 교역 조건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및 물가 환경에도 심각한 경고음을 울린다. 유가 급등에 따른 수입 측면의 인플레 압력이 최근 수년간 우리 경제의 저물가 기조에 적신호를 켠 것은 물론 교역 조건 악화에 따른 실질 구매력의 위축은 내수 악화로 이어지면서 당장 올 하반기 성장 향방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우리 경제 역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의 사정권에 들어선 것이다.특히 교역 조건 악화로 인해 지표경기(GDP)와 체감 경기(GNI)의 괴리가 심화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기업과 가계 등 각 경제 부문 간 경기 불균형, 나아가 빈부 격차 등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확대, 심화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물가 불안과 맞물려 그만큼 성장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고, 나아가 이와 같은 양상은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 전망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다행히 최근 정부는 성장 중시의 고환율 정책의 폐해를 경험한 뒤 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을 점차 물가 안정과 성장 충격의 완화로 옮겨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고환율 정책은 사실상 폐기하고, 되레 환율 하향 안정을 위해 과감한 개입에 나서고 있다. 나아가 한국은행은 기대 인플레 차단 및 유가 급등의 2차 효과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하지만 국내외 금융 불안이 지속되는 데다 실질소득 악화 등 취약한 경제 여건을 배경으로 가계 부채와 중소기업 대출 부실화, 외화 차입 급증, 부동산 경기 향방 등과 관련해 각종 불안 요인들도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긴축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중·장기 안목에서 물가 환경의 질적 변화, 즉 고물가 시대의 도래에 따른 위험을 직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체감 경기 급랭에 따른 충격 효과, 특히 금융 안정상의 위험에 맞서 능동적인 리스크 관리도 절실한 시점이다.약력: 1968년 부산 출생. 91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94년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98년 와이즈인포넷 국제금융경제팀 팀장. 2007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