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비즈니스 부상한 탄소 시장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파는 탄소 시장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고수익을 챙길 수 있는 또 다른 황금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배출권 거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시장 원리를 도입한다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매년 1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A와 B라는 기업이 있는데,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이 9만5000톤으로 강화됐다고 가정하자. 이에 따라 A와 B는 각각 50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A기업은 톤당 10달러, B기업은 톤당 30달러의 감축 비용이 들어간다. 이때 배출권의 시장 거래 가격이 톤당 20달러하고 하면 A기업과 B기업은 배출권을 사고파는 게 서로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 감축 비용이 톤당 10달러에 불과한 A기업은 1만 톤을 저감한 뒤 절반을 시장 가격(톤당 20달러)에 팔면 감축 비용을 고스란히 회수할 수 있다. B기업은 톤당 30달러라는 고비용을 들여 이산화탄소를 줄이기보다 B기업에 5000톤의 배출권을 사는 게 훨씬 이득이다.사회 전체로 보면 어떤 경우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A기업과 B기업이 각각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든, 배출권을 사고팔든 1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드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배출권을 거래를 통해 각 기업의 부담은 훨씬 줄어든다. 그만큼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이러한 배출권 거래(ET) 제도는 청정개발체제(CDM), 공동이행(JI) 등과 함께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의 핵심적인 세 기둥이다. 교토의정서는 각 나라를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나라(부속서I 국가)와 감축 의무가 없는 나라(비부속서I 국가)로 나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부속서I 국가에 속하며, 이들에게는 매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제시된다. 그러면 해당 국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시 자국 기업들에 세부적인 감축 목표를 할당하게 된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유럽기후거래소(ECX)를 포함해 10개의 배출권거래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부속서I 국가 기업들은 할당량 대비 잉여분과 부족분을 여기에서 사고팔 수 있다. 이러한 ‘할당 베이스’ 거래가 현재 전 세계 배출권 거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비부속서I 국가로 분류돼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한국 입장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CDM이다. CDM과 JI는 감축 비용이 상대적으로 싼 나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이를 자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CDM은 부속서I 국가와 비부속서I 국가, JI는 부속서I 국가 간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CDM은 배출권 거래의 원리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선택하든 선진국을 선택하든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온실가스 총량에서 줄어드는 양은 동일하다. 그러나 기업들은 CDM을 활용해 비용 면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전남 여수 여천공단에 있는 정밀화학 전문 업체 휴켐스는 CDM 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이 업체는 지난 2006년 말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아산화질소(N₂O)를 제거하는 설비를 완공했다. 오스트리아 카본사가 130억 원에 달하는 투자비 전액을 대고 대신 배출권(CER) 판매 이익의 75%를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휴켐스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시설을 짓고 CER 판매 이익까지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휴켐스는 지난해 1월 아산화질소 제거 공정 시설을 유엔에 CDM 사업으로 정식 등록했고 지난해 처음 발생한 160만 CO₂ 톤의 CER를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 가운데 한 곳인 독일 EEX 시장에 내다팔았다. 휴켐스는 CER 판매로 매년 40억 원가량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현재 휴켐스와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국내 CDM 사업은 정식 등록을 완료한 것만 따져 18건에 달한다. 연간 예상 CER도 1687만 CO₂ 톤에 육박한다. 한국은 이미 인도 브라질 멕시코 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의 CDM 사업 유치국이다.그러나 사업성이 좋은 CDM 사업은 이미 외국계 자본이 선점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CDM 사업인 온산 아산화질소 감축 사업은 100% 프랑스 자본인 로디아에너지가 주도하고 있다. 이 사업의 연간 CER는 915만 CO₂ 톤으로 국내 전체 실적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다른 대형 프로젝트들도 선진국 업체들이 선점해 CER 판매 수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 때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에서 면제되는 바람에 오히려 유망한 사업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이에 따라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망한 감축 사업 대상의 60~70%가 이미 소진됐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의 저탄소형 설계 노하우와 관련 기술을 들고 중국 인도 등 개도국에 진출해 프로젝트형 CDM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부속서I 국가와 그렇지 않은 비부속서I 국가의 합작 사업만을 CDM 사업으로 인정했지만 2006년부터는 비부속서I 국가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독자적인 사업도 CDM 사업으로 등록할 수 있게 바뀐 상태다.국내 기업이 추진한 해외 CDM 사업 1호는 한국전력의 중국 네이멍구 풍력발전소 프로젝트다. 중국은 CDM 사업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글로벌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는 반면 청정에너지 기술이 뒤처진 중국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전은 중국 5대 국영 발전 회사인 다탕집단공사와 합작해 2006년 말부터 풍력발전을 통해 연간 14만 킬로와트(kW)의 전력을 생산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올 상반기 23만 kW 규모인 2단계 사업까지 완료되면 단일 풍력발전소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게 된다. 한전은 이 사업에서 4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으며 CER 판매로 얻는 수익도 같은 비율로 배당받게 된다. 2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한전은 연간 100만 CO₂ 톤의 CER를 얻게 된다. 현재 CER의 국제 시세가 톤당 20유로 안팎인 걸 감안하면 CDM 사업으로 연간 2000만 유로(약 280억 원)를 손에 넣는다는 계산이 나온다.해외 CDM 사업에 적극적인 곳은 한전뿐이 아니다. 포스코는 해외 조림 사업을 통한 배출권 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 등에서 해외 조림을 통한 CDM 사업의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에코프론티어와 울산화학은 중국 산둥성 지난에 있는 프레온가스 제조회사인 차이나플루오르테크놀로지(CFT)에서 CDM 사업을 벌이고 있다. 프레온가스를 생산할 때 나오는 수소불화탄소(HFC)를 포집해 소각하는 첨단 설비를 설치해 가동하는 방식이다. 에코프론티어와 울산화학은 이 사업을 통해 2014년까지 연간 425만 CO₂ 톤의 온실가스를 저감해 매년 400억 원대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