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IT의 만남

올해 출시된 현대자동차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에는 최첨단 정보기술(IT)들이 적용됐다. 차량 앞에 장착된 레이저 센서로 앞차와 거리를 측정해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로 엔진 및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mart Cruise Control)’을 비롯해 커브 길에서 운전대 각도를 인식해 전조등을 미리 차량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는 ‘어댑티브 헤드램프’등 운전 편의를 위한 기능이 적용됐다.17세기 후반 최초의 자동차가 등장할 때 모습은 마차를 본뜬 기계에 불과했고 20년 전만 해도 자동차에 들어가는 IT는 카오디오 수준이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운전 환경을 도와주는 다양한 IT가 접목되고 있다. 지금까지 영역이 분리돼 있던 자동차와 IT가 융합되고 있는 것이다.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2002년 차량 가격의 12% 수준이었던 전자 시스템 비중이 오는 2010년에는 4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빠르고, 멋진 디자인 못지않게 IT 성능이 향후 자동차 시장의 성패를 가를 핵심 기술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기존 자동차 성능에 못지않게 내 아이팟을 바로 연결할 수 있는 단자가 있는지 여부가 차량 구매에 중요한 척도가 됐다.자동차 업계와 IT 업계의 협력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올해부터는 그 협력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제품전시회 2008 CES에서는 기조 연설자로 릭 왜고너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이 나섰다. 지금까지 IT 업체나 인터넷 기업 대표들이 CES 기조 연설을 담당한 것과 달리 자동차 업체 대표가 나선 것이다.왜고너 회장은 “자동차와 IT는 컨버전스를 통해 진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자동차 안에 더 많은 IT가 들어가 10년 안에 무인 자동차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포드는 CES에서 소니와 내비게이션 및 지능형 오디오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밝혔다.현대·기아자동차는 오는 2010년 중반 북미 시장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개발한 차세대 카오디오 시스템을 내놓을 계획이며 향후 국내 및 유럽 시장에도 이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능형 내비게이션 및 멀티미디어 시스템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함께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혀 향후 개발하는 차량에 IT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이 외에 폭스바겐은 애플과, BMW는 인텔과 이동형 사무실을 구현한 차량을 개발하고 있는 등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가 윈윈 모델을 만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이전까지 자동차 부문에서 IT가 환영받지 못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 운전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IT를 자동차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에 접목되는 IT는 실제 운전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부터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인포테인먼트 분야가 급속히 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인포테인먼트란 ‘정보’를 의미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즐김’을 뜻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운전자에게 필요한 교통 정보를 포함해 차 안에서 영화, MP3 재생 등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이 중 내비게이션은 지난해 140만 대에서 오는 2008년 168만 대, 2009년 200만 대 규모로 당분간 높은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예전까지 국내 인포테인먼트 시장은 차량 구입 후 내비게이션을 추가로 장착하는 애프터마켓 위주로 진행됐지만 올해부터는 차량과 함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구입하는 비포마켓 비중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비포마켓이 커지는 이유는 운전자들이 범용 제품보다, 선 연결이 필요 없고 자신의 차량에 최적화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자동차 업체들도 수백만 원에 달하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가격을 100만 원대로 내려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였다.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트랜스폼에 장착되는 내비게이션 가격을 100만 원 이하로 낮춘 것을 시작으로, 다른 차종에도 가격을 낮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장착을 확대하고 있다.지금까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자체 내장된 콘텐츠 및 기능을 이용해야 했던 스탠드얼론형이 대다수였지만 앞으로는 HSDPA, 와이브로와 같은 휴대 인터넷 기술을 사용하는 네트워크형이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보인다. 휴대 인터넷을 사용하면 고속으로 이동 중에도 인터넷과 연결돼 차 안에서 다양한 정보와 오락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존 텔레매틱스가 휴대 전화망을 사용해 비싼 유지비 때문에 확산되지 못한 것과 달리 휴대 인터넷은 차량 내 인터넷 환경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SK텔레콤이나 KT도 차량을 중심으로 한 휴대 인터넷 사업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포화 상태에 이른 초고속 인터넷 시장과 달리 차량 안에서의 휴대 인터넷 구현은 충분한 잠재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자동차 산업은 IT를 통해 이전과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다.이 때문에 미래 자동차 시장은 기계적으로 제어하는 부분이 아니라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부분에서 얼마나 지능화된 기술이 적용됐는가가 핵심 경쟁력이 된다. 또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센서와 전자장비 시장도 새로운 산업군으로 떠오르고 있다.시장 조사 기관에 따르면 1980년 자동차 한 대당 내장되는 센서는 40개 이내였지만 2005년 120개가 넘어 오는 2010년에는 160개에 이를 전망이다. 일례로 지난 2005년 3000만 개 시장이었던 타이어 공기압 측정 센서는 올해 9400만 개, 2010년에는 1억400만 개로 매년 30% 가까이 성장이 예상된다. 초기 기계식으로 동작했던 센서도, 반도체 센서를 거쳐 지능화되고 있어 센서의 부가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향후 센서가 네트워크화될 경우 인터넷과 연결돼 차량 내부 정보에 맞는 조치와 기능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자동차 환경을 완전히 뒤바꾸는 혁명도 예상된다.SF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지금 당장 운전자 없이 목적지로 이동하는 자동차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자동차 업계는 현재 IT를 통해 빠르게 진화 중이다. 기아자동차 모하비는 전복 사고 발생이 예상될 경우 측면 에어백을 동시 전개해 승객을 보호하는 ‘전복 감지 커튼·사이드 에어백 시스템’, 차량 기울기가 달라질 때 전조등 각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전조등 각도 자동조절 장치’ 등을 갖췄다.쌍용자동차 ‘체어맨W’는 차량 전면과 측면 물체 감지 센서를 장착해 앞차와의 거리,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가·감속하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Active Cruise Control)’, 노면 상황, 운전자 특성에 따라 차체 높이를 제어해 주행 안정성 및 편의성을 높이는 ‘EAS(Electronic Self-leveling Suspension)’, 차량 통합 안전 시스템을 적용했다.폭스바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구안’은 자동 주차 시스템을 제공해 좁은 공간에서도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다. 보쉬와 협력해 구현한 이 시스템은 차량 앞뒤에 장착된 카메라와 초음파 센서를 통해 빈 공간을 인식하고 버튼만 누르면 운전대가 저절로 움직여 완전 자동 주차를 해준다.BMW ‘나이트비전’은 전방에 장착된 적외선 감지 장치를 통해 전방 300m 내에 있는 동물이나 사람 등을 탐지해 차량 내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를 통해 표시하는 기술이다. 온도 차이를 이용해 사물을 표시하는 나이트 비전 기능은 어두운 야간 주행 시 충분한 시야를 확보해준다.한국 닛산 인피니티 ‘EX35’에는 자동차 주위 360도를 차 안에 내장된 LCD 모니터에 표시하는 ‘어라운드 뷰 모니터’ 기능이 내장됐다. 차량 앞 그릴, 뒤 번호판, 좌우 사이드 미러에 어안렌즈가 장착돼 주차 시 편리하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