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교육 격전장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지역의 사교육은 대치동으로 대변되는 입시 교육만 있는 게 아니다. 특히 강남의 유아 및 초등학생에게 이뤄지는 사교육은 이제까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형태의 교수법을 서로의 장점으로 내세우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 강남 지역 학원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고 새 학원이 생겼다가 문을 닫는 게 이 지역”이라면서 “수많은 학원들 간에 벌이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콘텐츠밖에 없다”고 말했다.또 다른 학원 관계자는 “강남 지역 학부모는 오히려 타지역에 비해 입시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먼저 고등학교의 경우엔 지역 내에 특목고나 외고에 비견될 만한 명문고들이 즐비하고 대학은 ‘해외 유학’이라는 카드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강남 지역 유아 및 어린이 사교육 시장에서는 메가스터디, YBM 등 이른바 대형 학원이 힘을 쓰지 못한다. 한 지역 학원 관계자는 “강남 지역 유아 및 어린이 사교육은 이른바 ‘게릴라 전술’이 잘 먹힌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교육 트렌드에 맞추기엔 이들 대형 학원이 너무 굼뜨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또 영어 학원이나 입시 학원처럼 이렇다 할 밀집 지역도 없다. 압구정 청담 등이 대표적인 곳으로 꼽히긴 하나 학생들의 연령이 어리기 때문에 등하교의 편의를 위해 아파트 내 상가나 동네 상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동네 아파트 상가의 작은 학원이 대형 학원 체인의 컨트롤 타워인 경우가 부지기수다.그래서인지 강남 지역의 유아 및 초등 교육은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목동 등지와도 약간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처럼 그저 미술 학원, 음악 학원 등 일반적인 학원의 업태로는 경쟁력을 찾기 힘들다는 게 그 이유다. 수학 과학 등 ‘중요 과목’의 학원들도 시험 성적 위주보다는 학생 스스로 실험해 보거나 실생활과 연관 지어 공부하는 체험 학습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인다.일례로 어린아이를 둔 강남 지역의 어머니들 사이에서 ‘핫 아이템’으로 거론되는 플래뮤는 ‘아트 뮤지엄’ 교육을 표방하는 학원이다. 즉, 어떤 주제를 준 뒤 바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아이들 간의 토론 과정을 통해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 같은 과정 이후다.의자라는 주제가 주어졌다면 의자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디자인에서부터 모더니즘을 담은 현대의 의자까지 다양한 의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수업도 입학 시 레벨 테스트를 통해 수준에 맞는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된다. 강사진도 대다수가 해외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에 능통하다.재미있는 사실은 강남 지역에선 의의로 음악 학원이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 이유는 대다수의 어린 학생들이 음악은 학원보다 음대 학생이나 교수로부터 직접 과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독특한 교육과정을 통해 ‘좋은 학원’이라는 평가가 어머니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하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한 입소문을 타고 타지역에 빠르게 전파된다. 강남 지역에서 웬만큼 유명세를 탄 유아 및 초등 교육 업체들이 몇 년 만에 백여 개 이상의 전국적 체인망을 갖추며 세를 불려가는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실제 국내 최초로 미술 수업에 요리를 접목해 유명세를 탄 요미요미의 경우 창업 5년 만에 전국 130여 개 체인망을 갖췄으며 작년엔 코스닥 우회상장까지 마쳤다.물론 새로운 유아 및 초등 교육 프로그램이 강남 지역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한 유아교육학원 원장은 “사실 유아 및 어린이들 학원의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한 정보와 수요는 한남동 동부이촌동 등지의 강북 상류층 어머니들이 먼저다”라고 말한다. 최근엔 널리 알려진 영어 유치원 등도 지역적으로 보자면 외국인들이 많은 이태원에서 최초로 열렸다고 한다. 학원이 강남 지역에 있든 비강남 지역에 있든 간에 이들이 학원을 찾기 시작하면 이른바 ‘대박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지역이 중시되는 이유는 시장 규모 때문이다. 유아 및 성인 대상 중국어 교육 업체인 한우리GNS의 정재일 대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남은 서울의 부가 집중돼 있으며 최상류층을 제외하고서라도 평균 이상의 임금을 받는 부모들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부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 트렌드를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역은 강남뿐”이라고 덧붙였다.그 결과 유아 및 어린이 사교육은 어떤 식으로든 강남 부모들의 검증을 거쳐야만 성공할 수 있다. 타지역에서 시작된 학원이라도 강남이라는 ‘테스팅 베드’를 거쳐야 본격적인 세 불리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학원 관계자들은 강남 지역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어머니는 물론 가족 전부의 교육열이 높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교사의 질이 타지역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김희경 와이즈만 영재교육원 서초센터 원장은 “사실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비슷할 것”이라면서 “강남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짓바람’이 거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녀의 교육 문제를 상담하는 것은 물론 할아버지가 직접 전화해 교육과정에 대한 상담을 청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김희재 씨엠에스에듀케이션 원장은 “어머니들의 교육열과 정보력이 높아지면서 ‘강남 지역에만 있는’ 유명 유아 및 어린이 교육 학원의 사례를 찾기란 힘들 것”이라며 “굳이 강남과 비강남을 구분하자면 ‘교사의 질’일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강남 지역 유아 및 어린이 교육의 화두는 아마도 ‘영어’와 ‘창의력’일 것이다. 김희경 원장은 “사회의 트렌드가 영어와 창의력이다 보니 어린아이들의 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실제로 강남 지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학원들은 이와 관련돼 있는 학원이다. 특히 영어 교육의 경우 지역을 선도하던 리젠트어학원, 청담에이프릴학원과 더불어 분당에서 유명세를 탔던 아발론 교육이 강남 지역에 진출하면서 시장을 놓고 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아발론 교육은 원래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주대상인 학원으로, ‘스파르타’라고 부를 정도로 학습량이 많은 게 특징이라고 한다. 이는 기존의 강남식 교육에서 선호되지 않았던 교육 형태라 이례적이다.창의력 관련해선 수학을 시작으로 과학을 접목한 CMS 학원이나, 과학을 바탕으로 수학을 끌어들인 와이즈만 영재교육이 대표적이다. 특목고 등 입시와 관련해선 CMS가 약간 더 강세며 기본기의 경우 와이즈만이 보다 선호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 밖에도 보다 낮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방문식 창의력 수업인 프뢰벨이나 요미요미, 플래뮤 등도 인기다. 또 영어 유치원, 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중심으로 트윈클, 줄리스발레 등 발레 수업도 주목받고 있으며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폴리마그넷 학원 등도 강남 지역의 인기 수업들이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