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탐사 여행가 김지희

“이집트 피라미드를 가르치면서 한 번도 제 자신이 피라미드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속상했어요.” 김지희 씨가 처음 여행을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막 발령받았을 즈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그녀였기에 대학에서 사학과를 나오고 세계사 선생님으로 교직을 시작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생행로였다.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을 무작정 가르치기에는 역사에 대한, 인류 문명지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이 너무나 컸다. 결국 그 길로 여행 준비를 시작하고 방학이 되자마자 무작정 이집트로 향했다.그 후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그녀는 문명 탐사에 열중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등 세계 4대 문명은 물론 서양 문명, 비잔티움과 이슬람 문화, 마야, 아스텍문명, 잉카문명 등의 문명 발상지들을 탐사해 왔다. 남들처럼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몇 개국씩 가는 게 아니라 문명 발상지와 관련된 특정 국가에 집중적으로 여행을 갔다. 갔던 곳이라도 다시 가기 일쑤. 이 때문에 여행을 다녔던 기간에 비하면 51개국이라는 여행 국가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늘 카메라 2대를 가지고 여행을 다녀요. 6mm 비디오카메라와 슬라이드를 찍기 위한 카메라까지 꼭 들고 다니죠. 단순히 제가 직접 보고 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니까요.”단순히 보고 즐기러 가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 준비는 늘 그녀에게 커다란 숙제와 같다. “문명 발상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요. 그래서 영어로 써진 책들을 사서 직접 해석해 읽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도 하죠.” 여행을 위해 영어를 다시 공부했고, 여행을 위해 사진 촬영, 비디오 영상 촬영 및 동영상 편집 등을 배웠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실제로 체득하는 배움은 훨씬 더 크다.“사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가족들은 물론 주변 분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여자 혼자 몸으로 여행을 하다 불상사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나’라고요. 하지만 여행에서 제가 배운 건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같다는 거예요.”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녀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어 주었다.“한 번은 멕시코를 여행하던 중이었어요. 전 멕시코가 미국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가 통용될 줄 알고 아무런 준비 없이 갔는데 알고 보니 멕시코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라 스페인어가 통용되는 곳이더군요. 그런데 전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몰랐거든요.” 중남미의 마야, 아스텍문명 탐사를 위해 한 달 예정으로 간 곳이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식당에 가서도 메뉴판을 읽지 못해 그냥 번호로 찍고 나오는 것을 먹을 정도였지요. 그러다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영어를 하시는 분을 만났어요.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계속했는데 알고 보니 그 분이 멕시코 대학 영어과 교수시더군요.” 그는 여행을 온 그녀가 스페인어를 모른다는 사실에 걱정을 하며 2시간 동안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수첩에 그녀가 영어로 문장을 쓰면 그 밑에 스페인어를 써 주었다. 다행히 스페인어는 발음 나는 대로 읽기 때문에 2시간 동안 그가 가르쳐 준 스페인어만으로도 충분히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결국 그분 덕분에 한 달 동안 무사히 여행을 다닐 수가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스페인어가 통용되는 나라들에 가서도 많은 도움이 됐고요.” 이후 그녀는 여행 준비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한다.그 외에도 중국에 갔을 때 50년 만의 폭설로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기도 했고 아프리카 말리를 여행하던 중 차량이 고장 나 사막에 이틀 동안 갇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고마운 도움들을 받았다. “그렇게 여행에서 만난 인연들은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뒤에도 e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다시 이어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전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늘 혼자 떠나라고 권유해요. 아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그 사람들과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인연들을, 소중한 만남의 기회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에서 담아온 6mm 비디오카메라와 사진 자료들은 모두 수업에 활용했다. 직접 동영상을 편집해 만든 교재와 소중한 여행 경험담을 섞어서 살아 있는 영상 수업을 실시했다. 그러다 1997년, KBS 1TV의 ‘세상은 넓다’라는 다큐 프로그램에 시청자 참여 코너로 자신이 찍어온 여행 동영상을 보낸 것이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사실 문명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이에요. 쇼핑이나 편안한 여행 코스와는 거리가 멀죠. 그러다 보니 일반 여행객들은 잘 가지 않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 나라들을 여행하며 세계사와 관련된 스토리 있는 영상을 찍은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나 봐요.” 이후 그녀는 10년 넘게 ‘세상은 넓다’의 단골 패널로 출연하며 일반 대중에게도 세계 문화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해 왔다. 또 그 일이 계기가 돼 출판사로부터 여행 서적을 내자는 제의를 받았다.“원래부터 제 여행 목적은 제가 보고 배운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어요.” 문명 탐사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그녀의 상상 외로 많았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바람의 문명 1, 2(동양편, 서양편)’, ‘땅을 딛고 마야, 아스텍 문명 위에 서다’ ‘하늘을 마주하고 잉카 문명 위에 서다’ 등의 책들을 펴내게 됐고 그녀는 점차 문명 탐사 여행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올해만 해도 벌써 ‘김지희의 문명 여행기 1-문명의 숲, 중국을 가다’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No Where)(공저)’ 등 두 권의 책이 나왔다. 그뿐만 아니다. 각종 언론에 고정적으로 여행 칼럼도 기고하고 있고 청소년 문화센터 등에서 강연도 한다. 집필에, TV 출연에, 학교 수업에 하루도 제대로 쉴 틈 없는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이지만 그 틈틈이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등 세계 4대 문명과 마야, 아스텍, 잉카문명을 두루두루 탐사하고 여행기로 남기는 것, 그게 지금의 제 소망이에요. 단순히 수천 년 전의 문화유산에 대한 것들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몇 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 감동을 주는 문화유산들. 그 문화유산들의 오늘을 돌아보는 문명 탐사 여행이야말로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이야기하는 김지희 씨.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또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나’를 찾는, 세계문명의 유적지들을 찾는 진정한 탐사 여행을.약력: 숙명여대 사학과와 동대학원 역사 교육 전공. 현 서울 광영여자고등학교 국사, 세계사 교사로 재직 중. KBS 1TV ‘세상은 넓다’ 단골 패널. 저서 ‘땅을 딛고 마야, 아스텍 문명 위에 서다’ ‘김지희의 문명 여행기-문명의 숲, 중국을 가다’ 등 다수.김성주·자유 기고가 kart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