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김창수·탤런트 김학철 형제

“둘 다 솔직한 편이고, 한 번 아니라고 하면 끝까지 아니에요. 산뜻하고 화끈한 성격이 공통점입니다. 차이점은 한쪽은 문관(文官), 한쪽은 무장(武將)이라는 거겠죠.”자유선진당 김창수(53) 국회의원은 동생인 탤런트 김학철(49) 씨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렇게 소개했다. ‘태조 왕건’ 박술희, ‘대조영’의 흑수돌처럼 장군 역을 자주 맡는 동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학철 씨는 “예비역 병장이 졸지에 장군이 돼서 별을 달았다”며 형의 얘기를 받아친다.선이 굵은 얼굴과 호탕한 웃음소리는 두 사람이 형제라는 사실을 단박에 증명해 준다. 김창수 의원은 4형제 중 둘째, 김학철 씨는 막내다. 네 살 터울인 두 사람의 걸음은 뚜렷하게 다른 자국을 남겼지만 묘하게 같은 방향으로 길을 냈다. 언론인 출신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형은 영화와 드라마로 인기인이 된 동생의 덕을 톡톡히 봤다.“동생이 제 선거연설원으로 등록해 목이 쉬도록 대덕구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어요. 아이에서부터 아줌마, 아저씨, 노인들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했지요. 선거에서는 바람을 일으켜야 승리한다고들 하는데, 동네 꼬마들이 동생이 탄 유세 차량을 쫓아다니며 기호 3번을 외칠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선거 운동 막판 닷새 동안은 김학철 씨가 대전에 내려가 숙식을 하며 형을 도왔다고 한다. 충직한 캐릭터의 그가 대덕구에 뜨자 유권자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제 형이 당선됐으니 보답을 받을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덕 볼 생각을 하면 되나요. 형이 국회에 있는 동안 얼굴도 볼 겸 국회도서관에 자주 들러 책이나 봐야겠습니다. 틈이 날 때 정독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곤 하거든요. 사극이 정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고, 과거 역사에서 현재의 정치를 이끌 지혜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형도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지요.”김학철 씨가 책을 가까이 하게 된 데에는 형인 김창수 의원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파우스트’를 다 읽은 것을 자축하기 위해 구멍가게에서 국산 포도주를 사오라고 심부름 보냈던 둘째형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형 몰래 들춰 본 책에는 파우스트가 영혼을 저당 잡히는 부분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때 남은 강렬한 인상이 점점 문학과 연극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허우대가 훤칠하다’는 평을 받은 건 배우인 김학철 씨가 아니라 형인 김창수 의원 쪽이었다.“형이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아버지가 ‘이제 우리 집안은 살았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합격도 합격이지만 국립대니까 학비가 덜 들어서 더 좋아하셨지요. 형은 암담한 시절에 한 줄기 빛을 준 존재였고, 제게는 아직도 어렵고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그런 형조차 동생 김학철 씨가 하겠다는 일을 막지는 못한다. 그저 고집이 센 동생이 하겠다는 대로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동생은 어려서부터 자기주장이 강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면 골을 내고요. 한길을 파는 습성이 결국 오늘의 김학철을 만들었겠지요. 그 습성을 잘 아니까 집안에서도 배우가 된다는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김창수 의원와 김학철 씨 사이에는 선문대 학생지원처장 김학희 교수가 있다. 둘째가 정치학 전공에 기자를 하고, 셋째는 화학공학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막내는 연기자가 되었으니 한 집안에서 자식 농사를 참 고르게 잘 지은 셈이다.“우리 부모님은 평생을 부지런하게 사신 분들이었어요. 형편이 어려워서 셋방살이를 하는 동안에 두 분이 노점을 하시며 성실하게 집안을 꾸려나가셨지요. 한국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들 교육열은 높았습니다.”지금은 남부러울 것 없이 각자 일가를 이뤘지만, 형제 모두에게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김학철 씨는 동아연극상을 수상할 만큼 연극계에서는 알아주는 배우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TV와 영화로 발을 넓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를 하나둘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인기 탤런트가 될 수 있었다.“배우는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기를 잘 보내야 해요. 못 견디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내가 배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지요. 그렇게 노력한 날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촬영 사이사이의 짧은 공백기에도 대본을 늘 들고 다니며 역할에 몰입하려고 합니다.”형 김창수 의원의 공백기는 구청장 재선에서 물러났을 때 찾아왔다. 구청장 임기 동안에는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등 보람찬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할 일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무명이어서 유명해질 수 있다’고 동생을 격려하던 형은 ‘민심을 얻는 시간을 번 것’이라는 동생의 위로를 듣고 일어섰다.남다른 삶을 살아온 형제는 집에서는 각자 소박한 가장일 뿐이다. 김창수 의원은 자신이 낙선한 후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돌봤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언뜻 내비쳤다. 후보자와 당선자만큼이나 고된 자리가 바로 배우자라는 사실을 아는 때문이다. 김학철 씨 또한 늦둥이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만화영화를 보는 평범한 아빠다.“유별난 성격을 가져서는 연예계에 오래 있을 수가 없어요. 유장하게 긴 호흡을 가지고 배우 생활을 하려면 사생활이 소탈해야 지탱할 수 있습니다.”그 외에도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김창수 의원은 대중의 인기와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길은 결국 같다고 말한다. “동생은 대중이 가진 삶의 애환을 대리 체험을 통해 해소할 수 있게 연기하고, 저는 국민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각자의 무대에서 오래 빛나는 형제가 되겠습니다.”김 의원은 자유선진당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먼저 제시하고 제대로 된 비판 역시 놓치지 않는 야당이 되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 무대에서 그의 활약을 지켜볼 일이다.동생은 형이 삼국지의 유비와 같은 덕을 가진 정치인이 되기를 바랐다.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성심성의껏 대해야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가온다고 믿기 때문이다.“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시골의 병약한 노인이 제 손을 잡으며 인생의 유일한 낙이 주말에 ‘대조영’을 보는 것이라고 할 때 울컥하고 마음이 끓어오르더군요. 전파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고루 퍼져나가듯이 누구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정치를 형이 펼쳤으면 합니다. 형에게 자극을 받아 저도 좋은 연기자로 남겠습니다.”김창수(왼쪽) 1955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81년 조선일보 기자. 2001년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 2004년 대전시 대덕구 구청장. 2008년 자유선진당 18대 국회의원(현).김학철 1959년생.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1991년 동아연극상. 1996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2000년 KBS연기대상 남자조연상 수상. ‘야인시대’, ‘태조왕건’, ‘대조영’ 외 출연작 다수.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