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시장에 상품 기획 전반을 책임지는 머천다이저(MD)가 있다면, 온라인에는 상품 카테고리를 관리하는 매니저인 CM(Category Manager)이 있다. 온라인 오픈마켓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G마켓에서 남성패션 CM을 맡고 있는 상품기획팀 이종찬 씨를 만났다.이 씨는 축구 얘기부터 꺼냈다. 온라인 오픈마켓과 CM, 그리고 축구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는 대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무릎 수술을 받은 후 프로의 꿈을 접어야 했고 실업팀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실업팀에 갔다가 몇 년 후면 군대를 가야 할 텐데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운동 외에 다른 직업을 구하려고 하니 막막했습니다. 수업이나 강의 시간에 제대로 들어가 본 적이 없고, 달리 할 줄 아는 일도 없고…. 자부심이었던 운동이 콤플렉스가 된 순간이었죠.”군대와 직장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병역 특례 업체를 알아보기로 했다. 당시 정보기술(IT) 쪽이 유망하다는 말을 듣고 누나가 준 신용카드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속성 학원에 등록했다. 강의 내내 영어 단어가 나오고 생전 처음 보는 용어들이 쏟아졌다. 집에 가서는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오전반과 오후반 수업을 다 들었어요. 그 사이 비는 시간에 무조건 외우고 복습을 했지요. 2월에 수강을 해서 3월 시험을 봤는데, 정보처리기사와 정보산업처리기사 자격증을 땄습니다.”이때의 뼈저린 경험 때문에 이 씨는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공부하라고 강조한다. 똑똑한 사람이 운동도 잘하고, 운동선수 출신으로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그저 운동만 열심히 하라는 주변의 얘기를 믿었다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패의 충격을 맛보고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이 씨는 첫 자격증 취득 후 더 많은 자격증을 따면서 ‘하면 된다’ ‘운동보다 기분 좋은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운동만 한 그를 흔쾌히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몇 백 군데 업체를 돌아다니다가 십여 군데의 면접에서 떨어지고 G마켓에 지원했다. G마켓의 임원진은 이 씨를 ‘뭘 시켜도 잘 할 놈’으로 봤다. 그 판단은 적중했고 배송 지원 업무를 하며 군 복무 기간을 마친 그는 남성 패션 CM에 자원했다.“여성 패션 배송 상황을 관리하다가 여러 업체를 알게 됐어요. 패션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서 한번 해보고 싶다고 전무님을 찾아갔습니다. CM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디스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온라인상에서 옷이 잘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상품 기획도 하고 입점 업체를 만나며 샘플도 보고, 업체의 수준도 파악하는 상담도 주된 일이다. 주말에는 시장조사를 위해 백화점과 동대문 도매시장들을 찾아 다니기도 한다. 낯선 패션 용어가 있으면 따로 정리해 공부하며 익숙하게 만들었다.“오픈마켓 남성 패션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아서 겁이 날 때도 있죠. 하지만 운동이든 직장이든 지나온 일들에 후회는 없습니다.”이 씨는 사회에 나와 경험해 보니까 결국 운동선수 출신과 일반인들이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한 신입사원도 처음 하는 일에 부딪치면 실수하기가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 때문에 이제까지 오기와 끈기로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이 맞다. 원석과 같은 한 사람이 이 사회에 쓸모 있는 보석으로 다듬어지기까지는 지식이 경험을 통해 풍부해지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더 많은 끈기가 필요하다.이종찬G마켓 상품기획팀 매니저약력: 1978년 출생. 1997년 영등포공고 졸업. 2001년 단국대 정외과 졸업. 2002년 G마켓 입사.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