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심희진

“인테리어 상담을 하다 보면 주부들이 새집에서 오래 살 것이 아니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것 같아요. 몇년만 살 예정이니까 인테리어에 목돈 쓰기 아깝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이죠. 하지만 5년만 산다고 해도 얼마나 긴 시간이에요. 몇 달 예쁘게 보이기 위해 머리나 옷에 들이는 비용과 비교해 보면 삼시 세끼 밥값도 안 되는 돈으로 긴 시간 내 감성을 배불리 채울 수 있는 작은 투자예요.”심희진(35) 씨는 공간을 스타일링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집의 구조만이 아니라 가구, 소품, 패브릭까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실제로 살고 일하기 위한 공간, 또 매체를 통해 보이기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인 그녀가 하는 일이다.그녀가 스타일리스트가 된 경로는 흔치 않은 경우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주가 있던 그녀는 공예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추상적인 순수미술은 그녀의 희망과는 거리가 있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 학교가 싫어서 수업을 빼먹다 보니 6년 만에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던 때였어요. 그나마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종종 볼 수 있었으니까 학교 대신 복장학원 같은 곳도 찾아다니고 그랬습니다.”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아동 미술 지도를 했다. 방문 과외를 하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녔는데 학생인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친해진 후부터 실내 인테리어에 관해 한두 마디 조언을 하게 됐다.“여기에 어울리는 소품은 뭐가 좋겠다, 커튼을 이런 스타일로 바꾸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식으로 주부들에게 도움을 주며 시작됐어요. 저도 재밌고 주변의 반응도 매우 좋았어요. 그래서 ‘트위니’라는 이름으로 커튼, 러그, 쿠션 등을 파는 패브릭 인터넷 쇼핑몰을 열게 됐지요.”2001년 당시는 아직 인터넷 쇼핑몰이 요즘처럼 활성화되지 않은 때였다. 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독특한 안목을 가진 쇼핑몰로 입소문이 나고 그녀는 한 유명 잡지의 기자로부터 여덟 쪽짜리 화보 스타일링을 의뢰받게 된다.“블로그가 늘어나고 쇼핑몰들이 많아지면서 제가 스타일링한 제품들을 그대로 베껴 만들어 더 싼 가격에 파는 일이 발생했어요. 인터넷에서 판 멀쩡한 제품의 속을 뜯어서 비교해 가며 품평을 올려놓은 네티즌도 있었고요. 쇼핑몰을 접고 본격적인 스타일링에 뛰어들었습니다.”이렇게 인터넷에서 명성을 얻어 오프라인 진출에 성공한 신화의 주인공은 그녀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극히 드문 성공사례의 주인공인 셈이다.많은 이들에게 각광받는 심희진 스타일은 한마디로 ‘언밸런스 인 밸런스(Unbalance in Balance)’다. 부조화의 조화라고나 할까. 그녀는 전체적으로 질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지만, 어느 한 부분에 반전이 있는 집을 추구한다. 집안의 균형을 잡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예를 들어 집 뒤쪽에 있는 보이지 않는 베란다에 남보다 더 치중해요. 보통 인테리어를 할 때 소홀하기 쉬운 곳이지만 집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주부에겐 세탁기 돌리고 쓰레기 치우며 열 번도 더 들락날락거리는 공간이잖아요. 페인트칠에 노랑과 빨강을 사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정성을 들이지요.”인테리어에는 의뢰인과 스타일리스트 양쪽이 만족하는 교감도 중요하다. 얼마 전 증축을 마친 분당 구미동의 한 이층집은 안주인이 모아놓은 가구에 어울리게 공간마다 다른 느낌을 불어넣었다. 또 40대 중반의 의뢰인 남성이 아내보다 더 의욕을 보이며 진행했던 작업도 기억에 남는다. 바닥은 하양, 천장은 검정을 쓰고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고급 자재만을 사용해 완성도가 높은 인테리어가 나왔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문의가 들어올 정도로 대표적인 작업이 됐다.“의뢰인과 마음이 잘 맞아 제 의도대로 진행되면 사후 관리까지 하게 됩니다. 지나다가 소품 하나를 봐도 그때 그 집에 잘 어울리겠다 싶으면 직접 갖다 주기도 해요. 반대로 의뢰인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인테리어가 애초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한 집은 뒤도 돌아보기 싫죠.”심희진 스타일처럼 멋진 인테리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컬렉션’을 추천해 줬다. 한 가지 색깔을 기준으로 가구나 소품을 하나하나 모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색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기준이 되는 색으로 통일하는 가운데 배색이 잘 될 것 같은 몇 가지를 덧붙여 나가는 식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처음 스타일링을 의뢰하는 분들은 지나치게 모던하거나 극단적으로 클래식한 인테리어를 요구해요. 그래야 ‘인테리어를 제대로 했다’는 느낌이 난다는 고정관념이 머리에 꽉차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인테리어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야 해요. 무엇보다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나답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부디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인테리어를 힘겹게 마치고 과시하기 위해 집들이를 하며 남들 사는 모양을 질투하느라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소신껏 꾸민 후 시각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인테리어라는 설명이다.이런 소신에 따라 지난해 이맘때 자신의 집도 리모델링을 마쳤다. 분당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로 독립하기 전에는 집과 작업장이 분리되지 않았었다.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불편하고 예쁘기만 한 집’으로 꾸며 놓고 일을 했다. 뜻하지 않게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 남편과 한창 뛰어놀 두 아들이 피해를 봤다.“남편 서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값비싼 의자가 놓여 있었어요. 아이들에게는 소파에 흘릴까봐 음식도 먹지 못하게 했고요. 그동안 가족들의 구박을 받던 가구들은 제 스튜디오에 가져오고 남편 서재에는 값도 싸고 누울 수 있는 긴 의자를 들이고, 거실은 아이들이 공놀이도 할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그녀는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이 머무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집을 지향한다. 집도 사람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쉽게 질리게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집은 고유한 성격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현명함을 잃지 않는 사람과도 같다고 강조한다.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