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씨름선수 이용호 이승호

“으랏차차!!!”지난 6월 5일 문경체육관에서 열린 문경단오장사씨름대회 거상급(90kg 이하)의 장사 타이틀은 이용호 선수에게 돌아갔다. 첫 장사 타이틀 획득에 소속팀인 수원시청과 응원을 나온 가족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동생 이승호 선수의 감격은 유달랐다. 형 이용호 선수보다 한 달 앞선 지난 5월, 안동장사씨름대회에서 거상장사를 차지했던 이승호 선수인 만큼, 그리고 그 누구보다 형의 실력과 노력을 잘 아는 만큼 동생 이승호 선수의 감격은 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형 못지않았던 것이다.두 사람은 2남 2녀 중 셋째와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두 살 터울의 형과 아우는 최고의 친구였고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씨름에 먼저 입문한 건 형 이용호 선수.“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체육대회의 씨름대회에 우연히 나갔는데 그 경기에서 1등을 해 버린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씨름부 감독님 눈에 들어버린 거죠.” 씨름부에 들어오라는 씨름부 감독의 권유가 있었지만 마냥 놀기 좋아하는 초등학생에게 운동부는 썩 끌리는 대상이 아니었다. “씨름을 하지 않으려고 씨름부 감독님을 피해 도망 다녔는데 결국 씨름부 형들과 씨름부 감독에게 얼굴 도장이 찍혀서 빼도 박도 못하고 씨름을 하게 되었죠.(웃음)”(이용호)동생 이승호 선수의 씨름 입문 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와 함께 학교에 있는 씨름부에 구경하러 갔다가 감독님의 눈에 띄었죠. 큰 키를 눈여겨보신 것 같아요. 집에까지 찾아오셔서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씨름을 시작하게 되었죠.”(이승호)이후 늘 같은 학교 같은 씨름에서 함께 뛰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계속 꾸준히 같은 길을 걸어왔다. 형이 학생부 전국대회들을 휩쓸고 지나가면 이어서 동생이 형이 없는 빈자리들을 채워 나갔다.보통 같은 종목을 뛰는 형제 선수들 중에는 간혹 형이나 아우의 명성에 가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형제는 그야말로 ‘난형난제’라고 불릴 정도로 어느 한 명 뒤지지 않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해 왔다. 이 때문에 언제나 두 형제는 스카우트 1순위 표적이었고 결국 대학에 이어 실업팀에 이르기까지 같은 소속팀에 몸담게 됐다.두 형제는 지금까지 같은 팀에서 같은 체급(90kg이하 거상급)으로 활동해 왔다. 이 때문에 연습 경기나 공식 경기에서 종종 경기를 벌일 때가 있었다. 정통파 들배지기인 형과 다리 기술과 허리 기술, 그중에서도 밭다리와 잡채기를 주로 사용하는 동생의 대결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 일쑤다. 형제들도 다른 그 어떤 경기보다 은근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연습에서는 제가 조금 앞서요. 5판에 3판 정도 이기죠. 실업팀에 오기 전엔 5판하면 전승하거나 아니면 1패 정도였는데 동생이 몇 년 사이에 실력이 늘어 요즘엔 쉽게 이기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연습 때는 제가 조금 앞서는 정도로 이깁니다.” (이용호)“대학교 때까진 제가 일방적으로 졌지만 실업팀으로 오면서 실력이 비슷비슷해졌어요. 그러니까 형, 안심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할 걸? 곧 따라잡을 거니깐.(웃음)” (이승호)“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한테는 안 져. 누구보다 너를 잘 아니까. 게다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얘기도 모르냐?(웃음)” (이용호)이렇게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 두 사람 다 형제 대결에 있어 다른 사람과의 시합보다 더 신경이 쓰인단다. 하지만 무조건 ‘너한테만큼은 질 수 없다’는 라이벌 의식만은 아니다. 두 형제가 모두 다쳐 슬럼프를 겪어 봤고 또 그 부상과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상대방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해왔는지 바로 곁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형 이용호 선수는 고등학교 때 무릎 수술을 받았고 동생 이승호 선수는 대학 시절 어깨 부상 때문에 1년을 쉰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두 형제 모두 훌륭하게 자기 자신을 극복했다.“형제 선수라는 점이 우리에게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아요. 누구보다 가깝고 또한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인 셈이죠. 서로에게서 얻는 힘이 커요. 게다가 서로 라이벌 아닌 라이벌이 되어서 실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되죠.” (이용호)“단점이라면 둘 중 한 명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면 혹은 성적이 좋게 되면 그렇지 못한 한 명이 주위에서 받는 기대감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정도죠. 또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는 점이겠지만 서로 의지도 하고 경쟁도 하고 라이벌 의식도 느끼면서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이승호)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냉철한 평론가가 되기도 한다.“저는 동생보다 힘이 좋지만 동생은 순발력이나 결단력이 저보다 훨씬 뛰어나죠.”(이용호)“씨름 선수로서 형은 최고예요. 그래서 형은 제가 기필코 따라잡아야만 하는 대상이기도 하죠.”(이승호)이용호 이승호 형제 선수는 씨름판에서 ‘미남 장사’로 통한다. 각각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탄탄한 근육질 몸매, 게다가 준수한 외모까지 갖춰서 두 사람이 모래판 위에 올라서면 ‘그림이 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래서 씨름판 일각에서는 은근히 이만기 강호동 최홍만의 뒤를 잇는 ‘스타’의 재목으로 이들 형제를 꼽는 이들이 많다. 사실 씨름의 인기는 이제 예년과 같지 않다는 것이 정설. 돈과 명성을 위해 많은 씨름 ‘스타’들이 모래판을 버리고 격투기 링 위에 섰다. 그래서 씨름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다 우리 씨름계가 고사되는 건 아닌지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 형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씨름에 관심을 갖는 것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형제 씨름 선수’, 거기에 더해 이제는 ‘형제 씨름 장사’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형제’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부담도 가지게 되련만 의외로 두 형제는 담담하다.“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죠. 우리를 통해서나마 더 많은 분들이 씨름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그래서 두 형제 장사의 목표는 ‘결승전에서 맞붙는 것’이다. 서로의 샅바를 쥐고 진정한 최강자를 가리는 묘미도 묘미지만, 그런 자신들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씨름을 보아주길 원하기 때문이다.“우리 형제 씨름꾼으로 인해 씨름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용호)“많은 관중이 있는 경기장에서 함성을 들으면 경기를 하고 싶은 게 제 작은 바람이에요.(웃음)” (이승호)그래서 이들 형제는 오늘도 모래판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자신들의 노력이, 씨름을 향한 애정이 언젠가는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그날이 올 것임을 믿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씨름의 황금기가 도래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