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진주 찾기 - 주식시장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 증시의 조정이 길어지고 있다. 작년 10월 고점을 기록한 이후 근 8개월째 지지부진한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르고 내림이 반복되는 것이 주가의 속성이고, 지난 2003년 이후 5년 동안 나타났던 장기 상승에 따른 피로를 더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단기적인 주가의 움직임만을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호들갑을 떠는 일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지금쯤은 그동안의 주가 상승을 가능하게 했던 동력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만일 지난 5년간 주가 상승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거나, 주가를 끌어올릴만한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면 주식시장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꺾을 필요는 없다.필자는 최근 5년간의 주가 상승을 가능하게 했던 논리들이 이제는 주식시장에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변수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라는, 지난해까지 없었던 새로운 근심거리가 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2003년 이후 진행됐던 강세장은 일단 종결됐다고 봐야 한다.지난 5년간의 강세장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크게 네 가지다. 저금리와 한국 증시의 저평가(밸류에이션 메리트), 가계와 기업의 양극화, 주주 자본주의 논리의 확산 등이 그것이다.사상 초유의 저금리가 주가 상승의 원인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과거 한국은 늘 금리가 높아서 문제였고 은행 문턱이 높아서 고민이었던 나라였다. 그렇지만 21세기 들어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저금리를 경험하게 된다. 은행의 대출 세일이라는 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들어보기 힘든 단어였다. 여기에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더해지면서 전 세계적인 저금리 상황이 나타나게 됐다.저금리는 주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주식과 부동산 등 전통적 투자 자산뿐만 아니라 원자재, 미술품, 골동품 등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심지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채권이라는 대단히 위험한 자산도 급등했다. 적어도 2006년 중반까지는 그랬다. 저금리 체제의 정착은 풍부한 유동성 공급을 가능하게 했고, 이런 환경 하에서 건실한 자산이나 위험한 자산이나 별 구분 없이 급등했던 것이다. 돈 쓰기가 쉬웠기 때문에 안전한 자산과 위험한 자산을 구별하는 분별력조차 희미해졌던 셈이다.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런 안일한 대처의 결과물이다.아무튼 과거에 나타났던 절대 저금리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한국의 시장 금리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물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강한 긴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리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과거와 같이 은행 이자로 생활할 수 있는 고금리 시대가 오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절대 저금리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한국 증시의 절대 저평가 메리트도 거의 희석되고 있다. 2005년 말까지만 해도 한국 증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장 중 하나였다. 한국보다 주가수익률(PER)이 낮은 나라는 태국과 브라질 등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였고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은 미국 등 선진국의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적어도 국가 간 비교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절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것이다.그렇지만 이젠 이런 상대적 저평가 메리트는 크게 희석됐다. 현재 한국 증시의 PER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낮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 됐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졌기 때문에 한국 증시가 가졌던 절대 저평가 메리트는 크게 희석됐다는 판단이다.또한 내부적인 환경도 주식의 밸류에이션 멀티플 상향에 부정적이다. 금리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은 채권 대비 주식의 상대적 메리트를 떨어뜨린다. 기업들의 재무 구조가 개선됐기 때문에 금리 상승이 기업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밸류에이션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저평가 메리트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기는 어려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2003년 이후의 강세장을 가능하게 했던 세 번째 동력은 양극화였다. 2003년 이후의 강세장은 기업과 가계의 양극화 강화 속에 나타났다. 기업이 강해진 것은 총제적인 자본 효율성 제고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자본 효율성의 제고는 글로벌한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넓게 보면 동서 냉전 종결 이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원리가 광범위하게 이식(더 넓은 시장과 더 광범위한 생산 기지의 확보)돼 왔기 때문일 것이고, 한국 경제로 시야를 좁혀보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돌입 이후 시장의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한국 경제가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결과적으로 국민 경제 내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졌고 시장에서 표현되는 기업의 가치로 볼 수 있는 주가는 경기 사이클과 큰 상관없이 상승해 올 수 있었다. 반면 가계가 누리는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고용의 증가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자본주의 분업 체제에서 노동이 소외되는 것은 추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동화의 진전과 글로벌 아웃소싱의 확산은 노동비용을 낮춰 자본의 효율성을 높여왔다. 여기에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증가로 인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상장사의 고용 인원은 2001년 이후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지난해 말의 고용자수 98만6000여 명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의 92만1000여 명 대비 채 10%도 늘어나지 못한 수준이다.또한 노동조합 조직률은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7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추락해 있다. 청년세대의 취업난은 88만 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플레이션은 비자발적인 소비 축소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경제 행위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주식시장이 직면해 있는 리스크는 지난 십수 년간의 세계화, 시장주의의 확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던 가계의 희생을 더 이상 요구하기 어렵다.오히려 경기 후퇴 국면에서 버틸 수 있는 내구력이라는 측면에서 가계보다 기업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여러 사안에서 기업의 양보를 요구하는 일련의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동조합의 저항이 됐건, 정부의 가격 규제가 됐건 주주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광범위한 도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감내해야 할 또 다른 리스크다.마지막으로 주주 자본주의 문화의 확산도 2003년 이후의 강세장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주주 자본주의는 주주뿐만 아니라 채권자, 직원, 지역사회, 소비자 등 다수 이해 관계자들의 균형을 맞추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대척되는 개념이다. IMF 이후 한국 증시는 미국식의 자본시장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서 주주 자본주의적 요소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특히 자사주 매입의 확대는 놀라울 정도인데 2003년 이후의 강세장에서 가장 강하게 주식을 매수했던 투자 주체는 주식형 펀드(투신)도 외국인도 아닌,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다. 그런데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2005년 이후 정체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든 임계치까지 도달해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반면 신규 공급(IPO, 유상증자) 규모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신규 공급 규모보다 컸다. 그렇지만 2007년부터는 신규 공급 물량이 자사주 매입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적 요인 접목에 따른 긍정적 효과도 이젠 희석되고 있다는 생각이다.여기에 과거에는 없었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가지는 위상이 ‘디플레이션 수출국’에서 ‘인플레이션 수출국’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물가 부담은 하반기에도 주식시장을 억누르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다만, 절대 저금리 메리트가 희석됐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고금리 시대로의 복귀는 아니다. 밸류에이션 메리트는 희석됐지만 IT 버블 국면 등에서 경험했던 터무니없는 고평가 부담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양극화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기업(시장) 중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 수익률은 낮춰야 하겠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업종이나 종목별로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하반기에는 내수보다는 수출주가 좋을 것으로 보인다. 내수주들 중에서는 경기 비탄력적인 종목군으로 관심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업종 대표주가 업종 내 2~3등 주식보다 양호한 수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유가증권시장이 코스닥시장보다 나은 수익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내수보다 수출 관련주들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환율 효과 때문이다. 하반기에는 원화의 절하세(원·달러 환율 상승)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적 요인은 원화 약세를 지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신규 공급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적자로 반전되고 있고 구미권 금융 회사들의 유동성 위기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도로 귀결되고 있다.달러의 신규 공급보다는 수요 요인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때문에 원화 가치가 높아지기는 어렵다. 이런 환율 환경에서는 내수의 구매력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지만, 수출 관련주들은 원화 절하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원화 절하 시에 이익 개선 민감도가 가장 높은 섹터는 IT와 자동차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 등이 상대적으로 나은 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내수주 중에서는 경기에 비탄력적인 종목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경제학적 관점에서 열등재에 속하는 필수 소비재 종목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음식료 업체가 대표적이다. 라면과 같은 열등재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더 많이 팔릴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경기 둔화에 반응해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을 품목이다.이런 관점에서는 농심과 CJ제일제당 등과 같은 음식료 대표주가 좋아 보인다. 또한 경기가 나빠져도 고소득층의 소비는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백화점 같은 종목은 가계 내 양극화의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업종 내 2~3위 종목보다는 업종 대표주가 상대적으로 나은 수익률을 올릴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가격 결정력이 높고 경기 하강 국면에서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내구력이 높은 업종 대표주가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김학균·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 애널리스트©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