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하반기 경제 전망

지난 6월 25일 한국은행이 한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8년 2분기 소비자심리지수를 조사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1분기에 비해 무려 19포인트나 하락한 86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2000년 4분기(86) 이후 최저치다. 전 분기 대비 하락 폭으로는 1997년 4분기(24) 이후 최대다. 특히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한 지수는 전 분기에 비해 44포인트나 하락한 52로 곤두박질쳐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이미 ‘한겨울’ 속인 것이다.한국은행은 소비자심리지수의 하락은 물가 상승과 고용 부진 등으로 향후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절대 엄살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향후 경제를 어둡게 본다. 물가는 예상보다 치솟을 우려가 높은 반면 경제성장률은 기대보다 낮을 것이란 전망이다.하반기 경제를 어렵게 하는 최대의 변수는 물가다. 석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6월 물가가 5월(4.9%)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해 5% 이상의 물가 상승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은 무엇보다 고유가를 꼽을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6월(6.1~6.25) 두바이유의 배럴당 평균 가격은 127.01달러였다. 지난해 평균가인 68.43달러보다 거의 두 배나 오른 것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오름세를 이어가 피해를 키웠다. 고유가는 기업의 원가 상승을 일으켰고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철광석 석탄 곡물 등 대부분의 원자재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인플레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인플레이션은 먼저 소비 부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상반기 국내 내수 소비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4.1%에서 4분기 4.6%로 꾸준히 높아지던 민간 소비 증가율이 지난 1분기에 3.5%로 뚝 떨어진 것이다. 주식시장의 위축도 소비 부진의 이유로 지목된다. 지난해는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적지 않은 자산 효과가 발생, 소비 증가를 이끌었지만 올해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10% 증가할 때마다 내수 소비는 0.2%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고용 악화도 내수 부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중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8만 명가량 증가한 데 그쳐 3개월 연속 20만 명을 밑돌았다. 이는 27만8000명에 달했던 지난해 4분기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고물가에 신음하던 상반기 국내 경제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수출의 힘이 컸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수출 부문에서 가격 메리트가 발생한 덕이다. 하지만 하반기 수출 시장은 상반기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삼성경제연구소는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8.0% 증가한 수출이 하반기엔 10.7% 상승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지난 1분기 7.6%에서 4분기엔 5.0%로 2.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의 부진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때문이란 이유다. 그동안 아시아 경제는 미국 경제로부터 디커플링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미국 경기 위축이 심화되면서 디커플링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이러한 국내외적인 악재는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외의 경제연구소들은 일제히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먼저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전년 동기 대비 3.8%로 내려설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 둔화, 고용 부진에 따른 내수 회복 지연 등을 이유로 들었다. LG경제연구원은 상반기 5.3%이던 성장률이 하반기엔 4.0%로 주저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당초 5.2%에서 3.8%로 낮춰 잡았다.하반기 경제가 급속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분명 무리다. 그렇다고 희망을 잃을 필요는 없다. 하반기로 갈수록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바라보고 있다.우선 국제 유가가 급격한 오름세를 멈추고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국제 유가가 200달러 이상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예측 기관도 없지 않지만 그 정도의 급등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게 시장의 컨센서스다. 그동안 고유가 현상을 주도한 투기 수요가 감소하고 달러화 약세가 잦아지면서 유가가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이유다. 고유가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도 유가 하락의 이유로 꼽힌다.실제로 미국이 금리 인하를 멈추는 등 달러화가 강세로 바뀌는 모습이어서 고유가가 멈출 것이란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두바이유 평균 가격을 100.54달러, 현대경제연구원은 100달러, 에너지경제연구소는 105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150달러에서 최정점을 찍은 후 점차 하락해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으로 평균 110~120달러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면 인플레도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가 급속히 내림세를 보이지는 않겠지만 증가율은 현격히 줄어들 것이란 설명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상반기(4.1%)보다 0.3%포인트 낮은 3.8%로 예상했다.글로벌 달러화 약세 속에서도 오름세를 지속하던 원·달러 환율도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LG경제연구원은 하반기 평균 원·달러 환율을 988원(6월 25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35.3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먼저 정부가 성장 우선에서 물가 안정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수출 활성화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지만 인플레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환율 안정에 나서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폭이 감소하고 하반기 외국인 투자 자금의 재유입도 환율 하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연구원은 설명한다.기준금리는 한동안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높이자니 경기 둔화가 걱정되고 내리자니 인플레 현상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어 쉽게 금리를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경기 상황에 따라 금리를 조정할 것이라고 밝혀 금리 변동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삼성경제연구소의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현재 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불안은 부동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원자재 가격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적이고 순환적으로 나타나 전망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특징이 있지만 카드 사태 때를 돌아보면 2년 연속 소비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10년 불황설까지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2~3년 후 경제는 5% 내외의 성장률을 보였다”며 “이번 위기를 지나치게 확대, 우려하기보다 이번 상황을 경제 운용과 구조를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